[지금은독서중]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in #zzan4 days ago (edited)

IMG_2888.jpeg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p119)

이 책의 번역가는 이 소설을 번역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다고 밝혔다.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밝혔던 존 맥가헌의 말대로 독자가 암시를 눈치채고 진의를 파악하도록 번역하려다 보니 당연히 곤란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이 소설은 섬세하고 중의적인 의미가 강해서 마치 시와 같다고 한다. 바쁜 마음으로 급하게 읽으면 참맛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뜻이다.

펄롱이라는 주인공은 미혼모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기독교 분위기가 강했던 보수적인 지역이라 어머니의 가족들은 펄롱 모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들을 거둔 것은 혼자 사는 윌슨 부인이다.

펄롱 모자는 부인의 농장을 도우면서 살았다. 윌슨 부인은 펄롱을 학교에 보내주었고 교양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자립할 수 있는 기틀까지 마련해 주었다.

펄롱은 성실 근면하게 일하여 지역의 목재 및 연료 배달업체를 운영하는 다섯 딸의 아버지가 된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동전을 쥐어주는 인정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날 수녀원에 연료를 배달하러 갔다가 창고에 갇힌 여자아이를 구한다. 어린 그녀는 아이를 수녀원에 빼앗기고 복종하지 않아서 격리 되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큰 고객인 수녀원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했고 동네 사람들도 만류하나 그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수녀원에는 미혼모 또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들어온 불쌍한 여자들이 맨발로 청소하고 최소한의 식사로 연명하면서 세탁소를 운영하여 돈을 벌어 주고 있었다.

자신의 똑똑하고 예쁜 다섯 딸들을 바라보면서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면서도 펄롱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이미 세상을 떴지만 윌슨 여사가 아니었으면 자신도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것이다.
윌슨은 결국 수녀원으로 향했고 다시 창고에 갇혀 있었던 여자를 구출해서 데리고 나온다.

후기에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가 1996년에 문을 닫았는데 그곳에서 벌어진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의 실상이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기대할 것도 없다는 내용을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실천은 고금을 넘어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진짜 다시 읽어 봐야 하나 보다.
벌써 내용이 스물스물 사라지고 있다.


클레어 키건 / 홍한별 역 / 다산책방 / 2024 / 13,800/ 소설

Sort: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전광훈의 교회가 생각 납니다
종교가 사회의 악의 축이 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