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행전 Reboot] 태양의 시대
비행기는 태양의 도시 상공에 들어서서는 자연스럽게 날개를 접고 기차로 변용되었다. 마법사는 선로에 부드럽게 안착하는, 이제는 하루카 열차로 변용된 그것을 창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다시 돌아왔구나. 7년 만의 마스터 회의네.'
하루카 열차는 태양의 도시의 뜨거운 선로 위를 차갑게 내달렸다. 마법사를 가둔 얼음이 계속 녹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차가 지나간 선로 위로 뜨거운 수증기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열차는 중앙역을 그대로 지나쳐 동쪽으로 더 달려갔다. 그리고 길이 120미터, 33개의 목조 기둥으로 이루어진 대회장 뒷마당 플랫폼에 도착하자 멈춰 섰다. 플랫폼에 내려선 마법사는 뒤돌아 자신을 내려준 하루카 열차를 바라보았다. 언제 적인지 모를 30주년 기념이라는 로고가 열차 상단에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그때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사를 낚아채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마법사님, 이제 오시면 어떡합니까? 타이밍의 마법사가 도착하시기 전에는 대회를 시작할 수 없다는 걸 잘 아시면서. 아이고 이거 얼음이 다 녹지도 않았네."
팔짱을 낀 누군가는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다른 마법사였다. 마법사의 팔을 잡자 주르륵 물이 흘러내렸다.
"전들 어쩌겠습니까? 빙벽에 갇혀 있었는데."
"그러게, 소식은 들었어요. 마법사들이야 다들 겪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요. 이 뜨거운 도시에서도 아직이라니."
타이밍의 마법사라고 타이밍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주의 때를 읽을 수 있을 뿐. 마법사는 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얼음 빙벽에 갇힌 신세에, 그걸 몰라 묻는 게 아닐 마중 나온 마법사를 그저 답답한 눈으로 바라만 보았다. 마중 나온 마법사는 마법사의 얼음에 둘러쌓인 팔을 잡아끌며 어서 대회장에 입장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마법사들은 모두 마법사로 불리지만 아무도 서로 헷갈리지 않는다. 같은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으므로.
목조로 지어진 대회장에는 이미 천 명의 마법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고 정중앙에는 대 마스터 空海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무대 경사를 따라 도열한 마법사들은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나란히 서 있었는데, 마치 관중석 없는 무대처럼, 도열한 마법사들만으로 공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들의 손에는 모두 트럼펫이 들려 있었다. 태양의 시대의 시작을 세상에 선포하여야 하므로.
살금살금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려던 마법사가 삐거덕 소리를 내자, 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던 대회장의 분위기가 깨져나가며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던 마법사들이 땡하고 얼음 놀이에서 놓여나듯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며 마법사를 환영하기 시작했다.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치며 늦은 마법사의 합류를 모두가 환영했다. 드디어 완전체가 된 것이다.
"마법사님! 아직 얼음이 다 녹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태양은 어디로 가지 않으니까요. 아침이면 언제나 우리를 찾아오지 않습니까, 늦어도 해는 반드시 뜬답니다!"
도열한 마법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플랫폼에서 나눈 두 마법사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 크게 외쳤다. 그러자 또 다른 마법사가 연이어,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마법사는 함께라고 외치자, 도열한 마법사들은 모두 어깨를 걸고 마법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깊고 넓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깊고 넓어도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깊고 넓어도
마법사들의 노래는 물결처럼 퍼져나가 공간을 일렁였다. 파동이 점점 심해지자, 지축이 흔들리고 공기의 입자들이 파열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마법사의 합류로 드디어 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마법사님, 이리 오십시오. 아시다시피 이번에는 태양의 마법사들이 모였습니다. 태양의 시대 선포식이니까요. 타이밍의 마법사가 오셔야 시작을 할 수 있는데, 이제 오셨으니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다른 천 명의 마법사들이 꽤나 오래 기다리긴 하셨습니다만. 어쨌든 소감은 한마디 하십시오. 빙벽에 관해서도요."
대 마스터 空海는 마법사에게 한마디를 청했다. 그리고 마법사가 갇혀있던 빙벽에 대해서도. 모두가 이유를 알고 있지만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다.
"네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얼음 빙벽에 갇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두려움이 우리 마법사들을 빙벽에 가둔다는 것을. 격납고에 방치된 비행기들,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항구에서 녹슬어 가는 배들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가장 많이 위협하는 자동차는 오늘도 매연을 뿜으며 도시를 질주합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다치고 죽어 나가지만 아무도 자동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무단횡단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비행기를 두려워합니다. 떨어질까, 추락이라도 할까 두려워합니다. 날지도 못하는 인간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두려워합니다. 그 몰이해에 부딪히면 어떤 마법사라도 빙벽에 박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가운 두려움은 심장을 꽁꽁 얼려버리지요. '떨어지면 어떡해?', '그러다 추락이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들의 두려움은 곧장 마법사들에게로 투사됩니다. 마법사들은 그들의 손을 잡아 활주로로 이끄는 이들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마법사들을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을 날게 할까 봐서요. 아니, 추락시키려고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생각하나 봅니다. 그럴 리가요. 마법사는 그저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뿐입니다. 비행기는 날고 싶다고 말하고 배는 대양을 항해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운명이니까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양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저도 오래전에 들었지만, 이곳에 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빙벽은 좀처럼 녹을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기후 온난화로 온 지구가 펄펄 끓는 이 한 여름에도 저를 가둔 두려움의 빙벽은.."
마법사는 목이 메는지 말을 중단하고 고개를 떨궜다. 다른 마법사들 역시 과거를 떠올리는지 대회장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때 어디선가 도열한 마법사 중 하나가 아주 낮은 소리로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마치 기상나팔 소리 같은 그 음조는 매우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워 마법사를 가두고 있던 얼음을 떼어내고 녹여냈다. 마법사를 가둔 얼음덩이들이 떨어져 나가고 녹아내리자,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물이 대회장 바닥을 까맣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연주가 점점 고조되자 마치 악보에 순서라도 기재되어 있다는 듯 마법사들이 하나둘 연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도열한 천 명의 마법사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대열에 합류한 마지막 마법사까지, 모두가 마법사의 노래를 트럼펫으로 합주하기 시작했다.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깊고 넓어도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깊고 넓어도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합주가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닫자, 갑자기 대회장 천장과 사방이 그대로 개방되더니 동쪽 하늘에서 짙은 어둠을 뚫고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대 마스터 空海가 태양과 함께 공중으로 떠오르며 태양의 시대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가득 찬 바다와 텅 빈 하늘에게 마법사들이 선포합니다. 오랜 세월 지속되었던 숲의 시대가 가고, 이제 태양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아울러 빙벽에 갇힌 채 한기와 싸운 모든 태양의 마법사들에게 자유를 선포합니다. 자, 이제 모두 날아오릅시다. 날아오르는 건 비행기만이 아닙니다."
대 마스터가 선포하자 태양의 마법사들은 날갯죽지 아래 감춰져 있던 날개를 활짝 펴고 모두 천사처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늘을 나는 건 비행기만이 아니다. 태양을 향해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고대로부터 태양의 마법사라 불렸다. 그들의 날개는 새의 날개를 이어 붙인 소년의 가짜 날개가 아니므로 녹아내리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홀로 떠 외로운 태양은 용기 있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늘 고대했다. 어떤 것이, 어떤 이들이 날아오를지 내려다보며 오매불망 기다렸다. 만물로 가득 찬 땅과 바다는 이미 창조된 것들을 품고 있지만, 하늘은 아직 창조가 완성되지 않은 빈 공간인 것이다. 텅 빈 하늘과 우주는 날아오르는 이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오직 태양만이 등대처럼 그들을 비추며 땅과 바다처럼 새로운 창조물들을 품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법사들의 선포로 이제 공식적으로 태양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누가 날아오를 것인가?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의 시대에 누가 두려움 뒤로 숨을 수 있을까? 두려움의 빙벽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마법사들은 이제 어떤 활약을 하게 될까? 사람들은 태양의 시대가 시작된 줄도 모르고 오히려 지진이 일어날 거라며 두려움 속으로 숨어들었다. 땅 밑은 안전할 거라며. 숲의 시대에 그늘 사이로 숨을 곳이 많았던 두려움은 이제 숨을 곳이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릴 테니까.
태양이 떠올랐다. 마법사들도 함께 날아올랐다. 도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천 명의 마법사들이 공중에서 동시에 태양을 향해 트럼펫의 마지막 연주음을 빵! 하고 터뜨리자, 거대한 파동이 태양에 부딪혀 쏟아져 내리며 천지가 요동쳤다. 지진이었다. 사람들이 깨어났다.
_ [마법행전 Reboot] 2장. 태양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