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안/시즌2] Chapter2. 학업의 본질
"합격입니다. 축하합니다."
소년은 면접관의 합격 인사를 받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소년의 재능을 알아본 면접관의 실력이 엉터리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면접관은 속내를 교묘하게 감추고 소년에게 이상한 제안을 은근히 강요했다.
"그러니까, 학생은 실력은 좋은데 아직 직관어에 익숙지 못한 건 본인도 인정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상식어 반에서 수업을 시작하는 게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서 훨씬 수월할 거예요. 그게 상식이기도 하구요."
물론 상식어 반은 직관어 반에 비해 학비가 두 배였다. 면접관이라 쓰고 영업맨이라 읽는 게 맞을 그는 소년에게 은근히 상식어반에 등록할 것을 강요했다. 물론 영업맨으로서야 당연한 본분일터.
"저는 직관어를 배우고 싶어서 마법 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상식어 반에서 시작하는 건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닌 것 같아요."
"아, 물론 학생의 소망은 충분히 알겠어요. 많은 지망생들이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얘기를 하죠. 하지만 아직 직관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직관어로만 수업을 듣게 되면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되려 마법 학교 수업을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직관 이전에 먼저 상식이 중요해요. 상식에 기반하지 않은 직관은 허튼짓이 되고 말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학생? "
"하지만 직관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직관을 따르죠? 마법 학교의 핵심은 직관을 따르는 삶이라고 들었는데요?"
면접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소년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년이 좀처럼 자신의 영업에 넘어오질 않기 때문이다. 면접관은 책장에서 학교 소개 책자를 꺼내 오더니 학교 졸업생들의 찬란한 프로필과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다.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기라성 같은 마법사들의 이력이 소년의 눈을 현혹했다. 소년은 면접관이 책자를 넘길 때마다 점점 이 학교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신의 뇌를 휘감는 느낌을 받았다. 왜 아니겠는가. 마법 학교의 면접관 역시 마법사 일텐데.
"자, 보세요. 이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의 눈부신 업적을. 이건 거저 얻어진 게 아니랍니다. 우리 학교는 이미 업계 탑으로 정평이 나 있고, 수많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싶어 줄을 선다구요. 그간의 과정을 들어보니 학생은 자질이 충분하고, 훌륭한 마법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 보여 특혜를 주려는 거예요. 이렇게 학기가 시작한 뒤에 들어오는 경우는 매우 특별한 예외랍니다. 아무한테나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예요. 면접관의 직권으로 특별히 학생에게 기회를 주려는 거예요. 물론 마법의 원칙을 따라 선택은 학생의 몫이구요."
갈수록 교묘하고 능수능란해지는 건 의지를 흔드는 영업 방식이다. 선택을 보장하는 듯하지만 실은 보장되지 않는 결과를 담보로 현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마법사가 되겠다는 지망생들도 날로 증가하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마법 학교들의 신입생 유치 경쟁도 함께 치열해지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럭셔리 마법 학교로서 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학교와는 다른 차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의지로 미래를 붙들고 현재를 잇는 마법의 법칙을, 마법사 출신 영업맨들은 신비롭게 재해석한다. 물론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소년은 마음이 혼돈스러웠다. 사실 이 학교는 원래 입학하기로 했던 그 파산해 버린 마법 학교가 아니다. 파산한 학교를 새로운 교장이 인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년은 미심쩍은 마음에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이 새로운 럭셔리 마법 학교를 찾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선망하는 유명한 마법 학교였다. 교장은 위대한 마스터 출신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여러 평행 우주로 스카웃 되어 마법사의 커리어를 시작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소년을 파산한 마법 학교로 이끈 것 역시 직관이었다. 소년은 비록 파산했으나 자신을 기존의 학교로 이끈 직관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이 시작이자 전부이므로.
파산한 학교는 새로운 교장이 인수했다. 하지만 아직 그 교장이 어떤 사람인지, 수업은 어디서 듣게 되는지 아무런 통지도 소년은 받질 못했다. 계속 문의 메일과 메시지를 보냈지만, 마법 학교의 기존 교장은 자신은 더 이상 교장이 아니므로 새로운 교장에게 문의하라는 형식적인 답변을 반복할 뿐이었다. 물론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을 테니까.
'아, 어쩌다 파산을 한 거지? 거 참 불안하구만. 새로 인수한 학교는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그런 면에선 모든 게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 학교가 좋긴 한대. 게다가 이 힙한 거리에 럭셔리한 건물이라니. 직관어를 배우기에 손색이 없는 환경이야. 하지만 비용이...'
언제나 문제는 돈이다. 마법 학교 역시 빈부에 의해 환경이 결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럭셔리 마법 학교는 도시의 가장 화려한 명품 백화점 맞은편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들어가는 정문은 궁전의 그것 같고, 나와서 맞이하는 스탭들은 마치 고대의 사신들 같이 품위가 넘쳤다. 그뿐인가, 학교를 둘러싼 스트리트들은 각양각색의 화려한 상품과 콘텐츠들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패션쇼 런웨이를 걷는 이들처럼 개성이 넘치고 세련됐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디려는 소년에게 거리의 풍광과 학교의 분위기는 언젠가 꼭 이루고 말 자신의 미래를 즉시 현실로 가져다줄 듯 했다. 물론 마법사는 그건 그저 장사치들의 흑마법일 뿐이니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화려한 럭셔리 마법 학교의 위용을 보니 소년 역시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법 세계의 빈부는 능력의 차이일까? 상식적 현실의 반영일까? 소년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직관어를 배울 수 있는지 없는지였다. 직관어를 모르고서는 주문을 외울 수 없을 테니.
'아무리 좋아 보여도, 상식어 반에서 수업을 시작하는 건 상식적인 선택이 아닌 것 같아. 하루 종일 상식 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직관어를 배우겠어?'
소년은 학업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다. 거쳐 가는 학교가 환경이 어떠면 어떨까? 중요한 것은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겠는가. 하루 종일 상식어만 쓰다가 언제나 직관어를 배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상식어에만 익숙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의지가 새롭게 자라날 리 없다. 소년은 마법사들의 동료의식은 직관어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마법사의 말을 다시 되새겼다. 그때 띵동 하고 메일이 도착했다. 파산한 학교의 새로운 교장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이다.
'연락이 늦어 죄송합니다. 인수받은 명단에 학생이 누락되어 있었어요. 이번 주 금요일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당황스럽겠지만 새로 수업을 받게 될 학교로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건 현장에서 설명드리지요.'
새로운 교장의 메시지에는 새로 수업을 받게 될 학교 주소가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소를 보는 순간 학생은 기겁하고 말았다. 하필 학생이 가장 가고 싶지 않았던 동네에 학교가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아~씨, 여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동넨데.'
소년은 절망스러워졌다. 새로운 마법 학교의 위치는 치안과 환경이 좋지 않기로 소문이 난 동네였다. 학교는 소년이 원래 수업을 받기로 되어 있던 파산 전의 학교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도시 외곽의 슬럼가에 위치해 있었다.
'왜 하필 여기야. 그토록 여긴 가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소년은 떠나오기 전 마법 학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좋은 곳과 나쁜 곳을 구분했다. 마법사는 다 쓸데없는 짓이고 떨어져 내리면 직관이 인도할 거라고 했지만, 불안한 소년은 학교의 위치뿐만 아니라 거주해야 할 새로운 숙소의 위치를 고려하여 이 도시의 치안과 환경, 교통과 입주 요건을 집착적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학생으로서의 소년이 간과한 것이 있다. 아니, 미숙한 것이 있다. 분석은 상식적이고 우주는 직관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리고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집중했던 마음이 하필 학교를 그 동네로 움직였다는 결과를.
소년은 더욱 흔들렸다. 럭셔리 학교를 방문하고 나오자마자 새로운 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두 곳의 환경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고 있었으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떡하지? 이 동네만큼은 피하고 싶은데...'
그때 하늘에서 까마귀 전령이 소년에게 서류뭉치를 툭 던져주고 사라졌다. 럭셔리 학교에서 합격증과 함께 등록 서류를 보내온 것이다. 소년의 흔들리는 마음을 영업맨은 기가 막히게 알아챘으리라. 물론 등록 서류에는 청구서가 함께 들어 있었다. 두 배가 넘는 수업료는 물론, 모든 비용을 등록과 함께 완납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까지.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소년은 청구서를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결국 영업맨이 자신을 호구 삼으려 했다는 사실을. 서류에 적힌 상식어 반과 직관어 반의 현황에서 소년은 행간에 적힌 농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소위 명문 학교 신입생으로서의 자질을 평가받은 학생들이 입학하는 직관어반 클래스와 명성에 혹해 학교의 졸업생 타이틀을 따는 것이 목표인 어중이떠중이 지망생들을 위한 상식어반 클래스가 교묘한 명칭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수업료의 차이는 자질도 실력도 아니었다. 오로지 학업의 본질을 이해하는 이와 화려함에 현혹되어 그럴듯한 포장으로 자신을 위장하려는 이들의 부푼 꿈의 간극임을. 그리고 두 배가 차이 나는 수업료는 그 간극에 대한 마땅한 대가였다. 럭셔리 학교는 관대하고 후하게 간극을 존중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수익을 위하여.
'그럼, 뭐 비쌀 만하네. 간판값이 다 그렇지. 물론 내가 갈 이유는 없고.'
소년은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영업맨이 보내온 등록 서류를 북북 찢어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 무엇도 직관어를 배우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흔들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 낸 것이다. 물론 두 배가 차이가 나는 수업료를, 심지어 완납해야 한다는 조건은 소년의 지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소년은 깨달았다. 빈곤이 보여주는 선명함과 풍요가 부여하는 다양함이 의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 그래서 마법사님은 주기적으로 자산을 제로 세팅한다고 했구나. 그건 파산의 마법인가?"
어쨌거나 소년은 선명해진 마음이 뿌듯해서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졌다. 소년은 평소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의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적절한 사치의 타이밍이란 이런 것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학교는 수업을 받으러 가는 곳이지, 이력서에 그럴듯한 졸업 증명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야. 본질을 쫓다 파산할 수 있는 삶이 허명을 좇다 껍데기로 사는 삶보다 더 사치스러운 거야.'
소년은 태양이 숙성해낸 포도주 한 잔을 들이키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동네로 이동한 자신의 학교가 실은 선명한 포탈에서 자신을 초청하고 있음을 직관했다. 소년은 결심을 굳히며 럭셔리 학교의 영업맨에게 자신은 그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바로 영업맨에게서 답장이 왔다.
"Je te souhaite bonne chance pour l'avenir.
Notre école t'accueillera toujours.
미래에 행운을 빌어요!
우리 학교는 언제나 당신을 환영할 거예요."

_ [소년이안/시즌2] Chapter2. 학업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