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을 걷는다.

in #steemitlast year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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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을 걷는다./cjsdns

산이 많은 동네에서 살고 있는 내가 뜰이 넓은 동네에 마실을 왔다.
기분은 마실이나 실은 여행을 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른 새벽길을 두 시간이나 달려왔으니 실그렁 나서는 동네 마실은 아니다.

그런데 실그렁 나서는 동네 마실이라 했는데 실그렁이란 말이 있나 사전을 찾아보니 그런 말이 없는 것인지 안 나온다.
일단 그렇다.
특별히 할 일이나 꼭 만나야 할 사람 없이 바람이나 쐬지 하는 마음으로 나서는 마실이 싱그렁 마실이라 하자.

유포리 뜰이 참 넓다.
그 넓은 뜰에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익어가는 모습을 보니 내 것도 아닌데도 흐뭇하고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 넓은 뜰에서 영글어 가는 벼를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유포리 뜰은 대장골 마을 앞에 있는 뜰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대장골에서 포도 농사짓는 친구를 보러 왔는데 일 년 만에 또 왔다.
작년에 올 때도 서로 친구 정확히 말하면 군대 동기 훈호와 왔는데 올해도 역시 훈호랑 왔다.

실바는 데 바늘 간다고 어디 가자 하면 함께하기를 즐기는 친구라 부담 없이 이야기를 한다.
어제도 그렇다, 길준이 포도가 익어서 딴다는데 내일 갈까 하니 좋다며 갈 때 우리 집에 들러한다.
그래서 아침에 가락동을 들려서 같이 왔다.

반갑게 인사하고 건네주는 포도 송이를 받아 따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슬며시 나왔다.
길준이와 훈호 두 친구가 대화가 한창이니 동네 구경도 할 겸 풍광 좋은 가을 들판 걷기도 할 겸 나왔다.

대장골 마을을 한참 걸어 나오니 동 서쪽으로 늘어진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왼쪽은 송산 쪽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은 수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을 건너 뜰에 들어서니 우리 동네서 보기 힘든 풍경을 본다.

이렇게 풍성한 가을은 우리 동네에 없다.
우리 동네 가을은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어느 하나 풍성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없다.
있다면 그건 산과 강이 어우러진 수려한 풍광이다.
그 하나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고 싫증 나지 않는 풍광일 게다.
산 과 계곡 그리고 강물이 넘실대는 풍광이니 그것만 놓고 보면 세상에서 으뜸이 되리라

그러나 이렇게 배를 부르게 하는 넉넉함은 없다.
지금이야 쌀밥도 투정하는 세상으로 배곯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지만 옛날에는 정말 먹는 게 귀한 동네였다.
이렇게 큰 뜰이 없으니 더욱 그랬다.

그렇다 보니 오늘 마실 나오듯 친구 보러 온 것도 참 잘했고 잠시 시간을 내어 대장골 마을 앞 뜰을 걷는 것도 잘한 일 같다.
이렇게 뜰을 걸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냥 길어질 수 있다.
그리되면 전화를 해서 너 어디 갔냐고 물어올 거 같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야 한다.

그러함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군대생활 할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뜰을 한참 걸어 나오니 개천이 있다.
낚시꾼도 여럿 보이는데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옛날에는 이 개천에 서 길준이 친구도 많이 즐거웠겠다.
추억이 많을 거 같다는 생각이다.

그럼 그렇지 결국 전화별이 울린다

감사합니다.
2023/08/27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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