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공부 #10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진리, 언어와 삶의 본래성 그리고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해석학적 경험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진리'는 의식 내부의 관념과 의식 외부의 객관적 사실의 일치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전통적인 진리 대응설의 관점이다. 이는 사물을 주도적으로 인식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중점을 두며,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철학은 이러한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진리가 인간에게 어떻게 근원적으로 발생하는지를 깊이 있게 통찰했다.
하이데거에게 진리는 단순히 명제가 참이거나 거짓인 상태가 아니다. 진리는 비은폐성, 즉 숨겨져 있던 것이 감춰짐을 벗고 환하게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현존재'로서 이미 세계 안에 존재하며,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고, 세계의 진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초기의 신학적 배경에서 후설의 현상학과의 만남을 통해 깊이를 더했고,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 존재(현존재)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진리 개념을 확립하였다. 특히 1930년대 중반 '전회'를 겪으면서 존재 자체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으며, 이는 언어의 역할에 대한 그의 독특한 이해로 이어진다.
하이데거에게 언어는 단순히 진리를 인식하고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는 존재 자체가 자신을 드러내고 거주하는 근원적인 공간이며, 세계가 인간에게 의미 있는 형태로 세계개시(世界開示), 즉 '열리는' 유일한 통로이다. 우리가 망치를 '망치'로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언어라는 틀을 통해서이다. 언어가 없으면 세계는 그저 무의미한 덩어리로 남아 우리에게 개시될 수 없다. 언어는 진리 그 자체를 창조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진리를 보여주는 유일한 '출구이자 원천'이다. 언어는 지혜와 같은 깊은 진리가 우리에게 드러나고 경험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이다.
이러한 진리와 언어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이데거는 인간이 어떻게 삶을 본래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길을 제시한다. 본래적 실존은 현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죽음을 향한 존재)을 직시하고, 대중 속의 익명성(Das Man)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선택하는 삶이다. 이는 단순히 물려받은 세계이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수된 세계이해에 대한 피상적인 경향성에 저항하며, 그 근원적인 의미와 가능성을 깊이 파고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실제적 존재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실현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반복'이라 불렀다. 이 '반복'은 과거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과거의 본래적 가능성을 현재에 되살려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미래로 투사하는 실존적 행위이다.
하이데거의 제자인 가다머는 이러한 그의 존재론적 토대 위에서 진리와 이해에 대한 사유를 더욱 확장했다. 가다머에게 진리는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 진리사건이며, 이는 우리가 텍스트나 전통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 즉 '지평융합'을 통해 발생한다. 가다머는 하이데거처럼 개별자의 실존적 결단을 강조하기보다는, 진리 사건이 역사와 언어라는 거대한 '전통과의 대화와 해석'을 통해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한다. 나의 현재 지평과 텍스트의 지평이 만나 대화하며 새로운 이해가 형성될 때, 진리가 우리에게 깨달음으로 드러난다. 결국 가다머에게 '본래적' 또는 '실제적' 존재의 실현은 전통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해석, 그리고 그 속에서 진리가 드러나는 '이해의 사건'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다머의 철학은 우리에게 '해석학적 경험'이라는 특별한 삶의 태도를 제시했다. 이 해석학적 경험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일반적인 행위를 넘어서는데, 그 본질은 '방법으로 포착될 수 없는 새로운 진리'에 다다르는 데 있다고 가다머는 설명한다. 즉, 객관적인 지식을 특정 방법론으로 얻는 것을 넘어선 차원의 진리를 경험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선입견이나 선이해, 즉 자신의 지평을 가지고 해석 대상과 만나고, 그 대상의 타자성이 우리에게 말을 걸도록 귀 기울인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우리의 기존 이해 지평이 해석 대상의 지평과 대화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결국 새로운 더 큰 지평이 융합된다. 이 지평 융합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해석학적 경험은 단순히 정보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존 이해 틀을 흔들고 확장하며 때로는 변형시키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이는 곧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과정은 본질적으로 언어적이며, 모든 의미는 넓은 의미에서의 언어를 통해 구성되고 드러난다.
하이데거의 '반복'과 가다머의 '해석학적 경험'은 모두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깊은 철학적 시도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반복'이 현존재의 본래적 실존을 실현하기 위한 실존적 행위이자 시간적 과정으로, 개별 현존재의 실존적 자기 형성 및 선택에 무게를 둔다면, 가다머는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진리가 '이해'라는 사건을 통해 관점의 융합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개인이 주체적으로 진리를 구성하는 것을 넘어, 진리 자체가 해석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더 확장된 지평으로 나타나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해석학적 경험'은 세계와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새롭게 이해해나가는 삶의 본질적인 방식이다.

언어! 하면 단지 소통의 수단이라 생각했는데...
언어를...
(1)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고 거주하는 공간(존재의집)
(2)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통로
(3) 깊은 진리가 우리에게 드러나고 경험될 수 있도록 하는 매개
등으로 설명한 점이 인상 깊습니다.
저에게 철학은... 쉽지 않은 분야지만,
흥미로운 분야이기도 하네요.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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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것저것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철학공부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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