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2 오늘날 국제정치와 한국정치를 보면서, 부르주아 국제주의의 붕괴와 한국 자본

카페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글로 적었다.

국제정치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했던 세상이 아니다. 현재 국제정치질서는 19세기 후반부의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오로지 힘이 국제정치 무대를 좌우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19세기 후반부는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21세기를 19세기 후반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양상은 별로 다르지 않다. 과거와 다른 것은 군사력이 상당부분 평준화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서구 국가들이 가차없이 정복전쟁을 감행했다면, 현재의 그 어떤 국가도 약소국을 군대로 점령하지 못할 뿐이다. 도덕과 이상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강대국도 함부로 침략을 해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예멘 후티다.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세상을 관찰해왔지만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국제정치의 움직임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일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릴때부터 학교에서 듣고, 심지어 대학과 대학원의 전공수준의 공부를 하면서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최근에 들어서야 왜 그런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조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보는 것과 그 뒤에 숨어서 세상을 움직이는 세력들이 어떻게 다른지 겨우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역사학을 공부하면 당대에 사는 사람들이 당대사를 가장 모른다는 이론이 있다. 책으로 볼 때에는 그런 주장을 머리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몸으로 알 것 같다.

몇년동안 국제정세와 한국정치의 흐름을 관찰해왔다. 국제정치 질서를 움직이는 힘은 우리가 잘 모르는 힘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최근에 들어서야 확신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국제정치질서와 그 국제정치질서를 움직이는 힘은 서로 다른 맥락으로 돌아간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국제정치질서를 움직이는지도 이제야 조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들어서는 부르주아 국제주의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르주아 국제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부르주아의 대표자들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이 아니라 그들을 뒤에서 움직이고 조종하는 세력들이라는 것도 비교적 최근에 알게된것 같다. 미국 자본주의 정상에는 록펠러 가문과 월스트리트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좌와 우를 넘나들면서 정치를 주므르고 장악한다. 미국의 개혁은 그들이 허락하는 수준과 범위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한국의 정치도 좌우할 것없이 자본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경향이 이미 30년은 넘은 것 같다. 노무현 이후 한국의 정치는 자본이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탄핵국면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은 한국 자본의 의중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국제정치적 변화는 이제까지 세계를 장악하던 그 힘이 이제는 더 이상 압도적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침략이라고 말하면서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 조금만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이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노정하는 제국주의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이윤율 저하의 경향에 시달린다. 미국과 서구가 우크라이나에 진출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은 흑해와 카스피에로 이어지는 자원,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흑토에 대한 이권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미국과 서구는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로의 진출과 자원확보 없이는 더 이상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정치의 기본적인 문법이 바뀔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하면 패권을 상실한다. 패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의미가 아니다. 패권이란 국제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가장 고가치의 전리품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과 서구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것은 19세기에 서구가 끊임없이 제국주의 팽창을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하나도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을 점령했다면, 이제는 러시아와 중국의 변방지역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것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제국주의적 팽창에서 실패하면 그 후과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미국과 서구는 영향력을 급속하게 상실하게 된다. 최근 미국과 서구가 보이는 갈등은 서로 피해를 적게 보겠다는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손실에 직면해서 서로 가는 길이 달라진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서구의 패권약화 및 붕괴만을 초래하는 범위를 넘어설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본주의적 국제정치질서가 무너질 가능성도 많다. 앞으로의 자본주의는 우리가 알던 자본주의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더이상 자본의 국제화는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은 국민경제안으로 그 범위가 축소될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경향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합리적이라고 하겠다.

우크라이나전쟁의 패배로 가장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국제화된 자본일 것이다. 물론 자본은 자신들의 피해를 대중들에게 전가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자본은 지금과 같은 부르주아 국제주의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탄핵국면도 결국 전세계적인 국제정치적 변화에 일정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제 한국에게 가장 강력한 위기와 도전이 될 것이다. 지나치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노무현 이후 한국정치의 주인은 한국의 자본이었다. 국민의힘은 자본의 노골적인 종복이었고,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은 위장한 자본의 종복이었을 뿐이다.

필자는 현재 한국의 자본이 내부적인 갈등과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측면에서 한국정치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역시 엄청난 저력을 보이고 있다. 전세계 선진자본국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파시즘적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국가이다. 이런 전력은 역시 역사적 경험과 역사적 주도세력의 건재에서 나오는 것 같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에는 샤스마와 죠슈는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강력한 국가권력이 국민국가와 국민경제를 지킬 수 있는 상황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 내생각이다. 한국의 자본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정치과정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하고 장악하고 싶어할지 모르나, 그렇게 되면 결국 한국은 스스로 붕괴하는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개헌으로 내각제 개헌을 하는 것보다 제대로된 정치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한다. 잠룡으로 불리는 한국 정치인중에서 국가급 지도자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한국정치의 비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