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in #krsuccess3 days ago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2024).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꿈속은 원래 낯설고 희한하지만 평소의 낯섦과는 사뭇 다른 생경한 꿈을 꿀 때가 있다. 잠에서 깬 직후 왜 이런 꿈을 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개는 전날 봤던 영화 때문이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영화 속 이야기와 이미지가 나의 뇌신경세포가 가공한 세상에서 이리저리 변형되고 겹쳐진다. 아무 영화나 그렇지는 않다. 보는 동안 깊게 몰입하고 감탄했던 영화들만 그런 꿈을 꾸게 만든다. 다음 날 꿈에 나타나는 영화. ‘좋은’ 영화를 가늠하는 나만의 기준 중 하나다.

‘룸 넥스트 도어’를 보고 나서도 복잡하고 기이한 꿈을 꾸었다. ‘좋은’ 영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담긴 액자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소품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 전체가 호퍼의 그림 같다. 화면을 지배하는 붉은빛과 초록빛의 대비는 호퍼의 그림처럼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불치병에 걸린 마사(틸다 스윈튼)는 절친 잉그리드(줄리안 무어)와 함께 마지막을 맞이하는 여행을 떠난다. 둘은 서점에 들른다. 마사는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고르지만 죽기 전에 다 못 읽을 거라며 책을 다시 내려놓는다. 이 영화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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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종이책을 선물 받을 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이 책을 어디에 두지. 마음껏 책을 놓아 둘 작은 공간 하나 없는 비좁은 집. 음. 난 역시 가난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