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마부작침(磨斧作針)

in #krsuccess13 days ago

시선(詩仙)이라 불렸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어렸을 때 일입니다. 이백은 훌륭한 스승을 찾아 산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싫증이 나자 그만 산을 내려오고 맙니다. 한참 내려와 냇가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한 노파(老婆)가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이백이 노파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큰 도끼가 바늘이 되겠느냐고 이백이 다시 묻습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도끼가 바늘이 될 수 있다고 노파가 대답합니다. 이에 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라고 되뇌면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 끈기 있게 공부하여 시(詩)의 신선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선(詩仙)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백(李白)이 보았다는 노파의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바늘보다 비싸고 귀한 도끼를 가지고 수천수만 개의 바늘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단 한 개의 바늘을 만든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도끼의 강도와 바위의 강도를 모르는 노파라 하더라도 생업을 전폐하고 여생(餘生)을 도끼 갈기에 투자한다고 해도 도끼가 바늘이 될 수 없음은 노파도 알고 있을 겁니다. 노파 가족의 반대를 노파가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노파 이야기는 사실의 기록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백의 이야기에 노파 이야기가 들어갔을까요? 이백을 시의 신선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신화적 세계관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세계에서 신선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스토리가 필요했고,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한 중국인들이 이런 신화적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것이 아니라 도끼의 본성을 더 잘 살릴 수 있도록 담금질하고 숫돌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본성을 더 잘 살리기 위한 노력과 끈기라면 그 비유적 깨달음은 누구나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끈기와 노력의 결과가 도끼보다 못한 바늘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