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고통이다. 중생에게, 그리고 그걸 보는 붓다에게도. - 『잡아함』 제125경 「빈궁경」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리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려 이자가 늘어가는 것은 큰 고통이요,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빚 주인의 독촉을 받는 것은 큰 고통이며......
빚주인에게 묶이는 것은 큰 고통이라 하느니라.
[대정신수대장경] 권 1 , 614쪽 b면 수록,『잡아함』 제125경 「빈궁경」 中
불교는 세간을 등진 종교인가? 조선 성종 이후 조선불교라면 이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붓다가 수행하고 깨달아 전법하여 제자를 길러내던 약 2500여년 전 중인도 근방의 불교도들에게 있어 위와 같은 명제는 희론 嬉論, 쉽게말해 헛소리로 치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붓다는 크샤트리아 출신의 사문 수행자 중 하나였다. 브라만 계급의 비현실적 이상론과 거리가 멀고, 베다 전통의 제사주의와 일찍이 결별한 그에게 현실을 위한 필터는 애초에 없었고, 수행은 일상과 이상을 거닐며 구현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탁발을 위해 하루 한 번 마을을 거닐며 눈에 담았을 중생Sattva의 삶은 어쩌면 지옥이었테고, 그러므로 수행의 터전이었을테다.
돈은 고대와 현재에 있어 인간을 가장 속박하는 물건이지만,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물질일테다. 평생 욕망으로부터의 여읨을 추구한 붓다는 정작 돈을 버는 행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을 긍정한다. (예수님이라면 학을 떼었을) 대출도 ㅇㅋ. 단 , "법Dharma 답게 벌어서 쓸 것" 이 한가지의 조건만 이 모든 경제활동의 앞 머리에 붙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가 법을 펼쳤던 2500여년 전의 시공간에서조차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었던 모양이다. 『잡아함』의 소경중 하나인 「빈궁경」에는 재물을 빌리는 것도, 이자가 느는것도, 빚 주인에게 독촉받고 돈이 묶이는 것도 고통이라는 말을 붓다께서 내뱉을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를 뇌까리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 시대는 "빚 주는 자"를 비판하던 예수님도, "빚 짓는 고통"을 슬퍼하던 부처조차 없으니. 진정 우리에게는 신도 부처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자비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스티머(과 나)의 건투를 빈다.
3월의 시작을 아름답게 보내세요^^
@clayop님이 지원하시는 스팀마노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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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불교에 관련된 포스팅 너무 좋아요! 항상 명상하고 책 읽으며 부처님 말씀에 다가가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과연 제가 부처님의 말씀에 다가가고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지만... 노력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