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생활기] 비행기 티켓에 이름과 성이 바뀌었다?

in #kr6 years ago

남편 회사에서 비행기표를 보내주었다.

티켓을 받고, 이름 스펠링을 확인하고,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해외이사 때 보내지 못했던 짐들을 가방에 꾹꾹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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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본 멕시코시티

출국 당일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배웅하러 나오신 시어머니.

티켓 발권 후 인사와 작은 담소를 나누고 출국하려 했으나 계획은 계획일 뿐. 내 생에 이렇게 정신없는 작별(?) 인사는 처음이었다.

나의 일정은 아시아나 뉴욕행(경유), + 아에로멕시코 멕시코시티행이었다. 여행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여권과 인쇄한 비행기 티켓을 항공사 직원에게 건넸다.

"이름과 성이 바뀌셨네요. 한국에서는 발권해드리지만, 미국 경유하실 때 혹은 멕시코 도착해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멕시코법인 직원이 나의 이름과 성을 바꿔서 기입한 것이었다.

"외국 여행사 사이트에서 구매할 경우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갑자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만약에 입국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더니,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어서... 설명을 잘해야..."

결국 그들도 '모른다'였다. 하긴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일단은 설명을 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발권 진행을 계속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티켓 보여주세요."

남편 회사에서 보내준 건 편도 티켓뿐. 내게는 비자도 편도로 들어와야 하는 자료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편도로 가는 티켓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남편이 주재원이어서 들어가는 것이고, 들어간 후에 비자를 발급해준다고 했다 라고. 하지만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미국 경유하실 때랑 멕시코 도착했을 때, 돌아가는 티켓이 없으면 굉장히 복잡해지실 거예요. 안전하게 입국하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티켓을 사시길 권장합니다."

다시 한번 땀이 주룩 났다.

내 평생의 최악의 비행이었다.

나는 부모님, 시어머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먼저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앉아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찾았다. 금방 해결될 것 같던 비행기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는 왜 이리 눈에 안 들어오는 건지. 게다가 환불이 불가능한 티켓을 사면 안 되는지라 꽤 힘들었었다.

나에게 공항이라는 곳은 참 낭만적이었다.

적어도 예전엔.

여행을 가는 사람들의 설렘, 보고픈 사람을 위한 마중, 작별을 위한 배웅의 슬픔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옛 노래 중에는 공항의 이별이라는 노래가 있고, 요즘 노래에는 아이콘의 airplan 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에서도 알 수 있듯 공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이별'이다.

인생의 1/3 가량을 살면서 나는 늘 '남겨진 사람'이었다. 공항에서 친구들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혼자 몇 날 며칠을 울던 때가 생각났다. 슬픔은 남겨진 사람의 몫이라는 나만의 정의가 생긴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나는 지금과 같이 '떠나는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떠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에 비해 덜 슬프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나의 경우엔 그랬다. 남겨졌을 때의 슬픔이 희미해졌을 법도 한데, 그 바랜 슬픔보다 떠나는 슬픔이 조금 덜하게 느껴졌다.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향수와 그리움이 짙을 뿐 슬픔과는 조금 달랐다.

게다가 처음 '떠나는 사람'이 되어 감정을 살피려 했더니 예상치 못한 비행기 표에 얽힌 사건 때문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출국심사를 하기 위해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내밀었더니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 악몽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름과 성이 바뀌었네요. 확인 도장을 받아오세요."

나는 노트북이 든 꽤 무거운 보스턴백에 있었다. 마침 백팩 지퍼가 고장이 나서 가지고 온 가방이었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발권받은 아시아나로 다시 가서 도장을 받아서 출국하였다.

나는 지금 멕시코시티에 있다. (한국에 돌아오는 티켓은 남편이 대신 사주었다. 그리고 이름 바뀐 것은........... 미국도 멕시코도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하하하. )

멕시코에 도착하고 나서야, 제대로 인사 못한 부모님과 시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벌써 그리웠다. 아직은 어색하고 생소한 멕시코시티보다 익숙한 한국이 그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슬프진 않았다.

나는 이번에야 비로소 남겨진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악의 비행에도 분명 교훈은 있었다.

비행기 표를 누가 사든 간에, 이름과 성의 스펠링과 위치를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홍/길동 인지 길동/홍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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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으셨어요..타지에서 이런 곤란한 상황 너무 싫죠 ㅠㅠ
어쨌거나 무사히 도착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

(사실.. 두세달 전에 쓴 글을 늦게 올리느라^^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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