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나는 부러진 나무가 아니라 등굽은 소나무일까
#2018년 6월8일 마약일기
김성훈 <씨네21>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기수 후배라서 그런지 ‘선배’라는 깎듯한 호칭으로 날 부르며 “꼭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사코 무슨 일인지는 말 안한다. 영화 매거진 만드는 후배 기자가 대체 나에게 할 얘기가 뭐가 있을까.
지난 겨울에 경순 감독이 찍는 국가보안법과 한국 사회 문제(애국자게임-지록위마)를 다룬 영화에 ‘인터뷰이’로 출연한 적 있다. 아직 개봉은 안한 영화인데, 혹시 그것 때문에 날 보자고 하는 건가? 그런데 난 마약 때문에 해고되어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데. 기자를 만나는 게 부적절할 것 같다. 넌지시 문자로 물었다.
“지금 제가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일을 아시고 문자 주시는 건지요?”
“네 선배 알고 있습니다.”
“그럼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시는건지요.”
“뵙고 말씀 드릴게요.”
“그럼 제가 오늘 오후에 국가인권위원회 아는 분이랑 약속이 있어요. 인사동 근처에서 뵈어요.”
약속을 잡고 나갔다. 정확히는, 내가 좀 늦었다. 버스를 그만 방향을 잘못 잡아 타는 바람에 늦어버렸다. 마약을 해서 머리가 둔해진건가, 최근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둔해진건가. 아니면 나는 원래 둔한 사람인가. 버스 방향을 잘못 타고도 30여분이나 지나서 그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요즘 잦다.
김 기자는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나를 방긋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인사동 초입의 한 둔탁한 바위같은 것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보낸 거예요?”
“아이. 선배. 그거는 말씀 드리기 어려워요. 근데 선배한테 꼭 가보라고 시켜서요.”
아무래도 직접 나서기 힘든 <한겨레> 선배가 시켜서 보냈나보다. <씨네21>과 관련이 깊은 한겨레 선배중 하나인가? 궁금하지만 말 안해준다니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선배. 앞으로 생계 때문에 어려워지실 것 같아서요.”
그렇다. 지금 내 가슴을 가장 짓누르는게 생계 걱정이다. 앞으로 부모님을 어떻게 봉양해야 할까. <한겨레>에서 10년을 일했는데도 변변찮게 모아둔 돈이 없다. 그게 내 가슴을 짓누른다. 그런데 생전 본적 없는 친구가 내 후배랍시고 나타나, 내 생계 걱정을 해주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스팀잇(steemit.com)이라는 사이트가 있어요. 여기에 글을 연재하세요. 글을 쓴 만큼 독자들이 자유롭게 가상화폐로 후원금을 주는 곳인데요. 잘만 하면 한겨레에서 받던 월급만큼 버실 수도 있을 거예요. 선배가 계속 기자로서 활동하시면서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면서 누가 이걸 꼭 알려주라고 저를 보냈어요. 아직은 한국에 많이 안알려져 있으니까 선배가 시장을 선점하세요.”
이 정신에 무슨 벌써부터 글을 쓰고 수익 창출을 하겠나. 하지만 이런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 바쁜데도 이렇게 찾아와주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다. 그래.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할지 그게 정말 큰일이다. 어쩌면 스팀잇이라는 공간이 ‘글장이’인 나에게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까. 약간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다.
먹고살아가야 할 것을 자꾸 생각해내어야만 마음이 편하다. 이래서 쌍용차 해고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친 걸까. 당장 굶어죽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당장에 먹고 살길이 막혔다는 그 상실감과 막막함이 죽을만큼의 고통이구나. 살아있으면서도 관짝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다.
<씨네21> 후배 기자와 헤어진 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만났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분이었다. 그가 나를 위로해주겠다며 불렀다. 이제는 제법 높은 자리에 계셔서 나같은 사람을 안만나줄 것 같은데. 만나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다.
식당에 들어가 막걸리 몇잔을 들이키니 금세 내 얼굴이 불콰해졌다. 사무총장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는 한센인들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을 오랫동안 맡아온 인권 변호사이다.
“허기자님 얘기를 듣고보니 마약 중독자들이 과거 한센인들과 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사회적으로 오해와 편견이 심해서 제대로 사회 생활을 할 기회가 박탈된 채 산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한센병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걸린 것처럼 마약 중독도 본인이 좋아서 된 게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가 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뭐 당장에야 국가인권위원회가 마약중독자들의 문제에 나서지는 않을 거다. 마약 문제가 우리 사회에 시급한 사안도 아니고. 다만 국가인권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굽이굽이 굽은 소나무가 더 보기 좋은 것처럼 인생의 굴곡이 심한 허 기자께서 더욱 멋진 기자가 될 것입니다.”
막걸리에 취해 정신이 좀 혼미했지만 웬지 저 말만은 기억하고 싶어졌다. 그래. 나는 소나무다. 늙어서 껍질이 다 벗겨지더라도, 그렇게 보기좋게 굽어져 가자. 어쩌면 내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내어야만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부러진게 아니라, 굽은 것 뿐이다.
사무총장은 나와 헤어진 뒤 2차 약속이 있다며 청운동 쪽으로 갔다.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민변 변호사들과의 모임인 듯 했다. 가서 내 안부들좀 잘 전해주시면 좋겠다. 그곳에 김의겸 선배가 있다. 나는 이제 그앞에 나타나기도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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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하지만 스티밋은 모두가 지지부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