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행동의 진짜 동기를 알까?

in #kr7 years ago (edited)

선요약: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각하지 못하는 정신 활동이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음 보이는 실험/연구 결과들이 있다. 우리 행위의 진짜 이유 (예컨대 왜 웃는지, 왜 지금 산책하러 나가고 싶은지 등등) 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정신분석학은 경험주의 과학의 장악력 확장에 따라 비과학으로 놀림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학의 기본적 가정은 우리에게 일상적으로도 매우 친숙한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바로 무의식적 정신 활동이 존재한다는 가정이죠. 정신분석학이 칼 포퍼를 위시한 과학철학자들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경험과학을 표방하는 심리학 학계 내에서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언급할 수 없는 뭔가가 되어버린 탓에 "무의식" 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도 덩달아 다소 금기시 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용어를 쓰는 것이 다른 어떤 말을 쓰는 것 보다도 더 적절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들인지 곧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있을까요? 어떤 분은 퍽 자신만만하게 나는 내 마음을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실 거고, 어떤 분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많든 적든 어느 정도는 우리 스스로 의식적으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예컨대 내가 화가난 건 사건 A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세월이 흐른 후 돌이켜 보니 사실은 조건 B 때문에 화가 났던 거였다든지,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은 하게 되지요.

바로 그런 상황이, 예외적인 특수 상황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것이라는 게 정신분석학이라는 영역을 만들어 낸 프로이트의 생각이었습니다. 정신분석은 바로 이 생각을 그 이론의 기초로 삼아 만들어진 활동입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얼마나 타당할까요? 정신분석을 공격한 많은 경험론자들의 요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무의식적 정신 활동이라는 것은 의식적으로 지각되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것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타인이 관찰할 수도 없고, 의식되지 않는 정신 활동이 그 정의이니 본인에 의해서도 관찰될 수 없다. 그러니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고, 경험과학의 분과로서 자격이 없다." 요컨대, 환자 X 가 어떤 행동 A 를 하는 이유는 무의식 속에 이러저러한 생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라는 식의 설명은 검증될 수 없고 반증될 수도 없으니 과학으로 다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관찰이 어렵기 때문에 무의식적 정신 활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무의식적 사고 과정이 충분히 있음 직함을 보여주는 두 가지 연구 사례를 이 글에서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으면서 부디 즐거운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1. 분리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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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에는 뇌량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대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신경들이 놓여있습니다. 위의 그림에 밝은 보라색으로 표시한 곳입니다. 이 부분을 자르게 되면 대뇌 좌반구와 우반구의 직접적인 연결이 거의 다 끊어지게 됩니다. 심각한 간질을 앓고 있어서 그냥 두었다가는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는 환자들에 한해서, 이 뇌량을 자르는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간질은 뇌 내에서 모든 신경들이 발작적으로 신호를 뿜어냄으로써 발생하는데, 뇌량이 절단되어 있으면 이 신호의 폭발이 전체 뇌로 번지는 걸 막고 최초에 폭발이 발생한 반구 안에 갇혀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간질 증상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고양이 뇌의 뇌량을 절단하고 어떤 일이 생기는 지 관찰하는 연구를 했던 로저 스페리 Roger Sperry 의 학생이었던 가자니가 Michael Gazzaniga 는 스페리와 함께 뇌량이 절단된 인간을 연구하게 됩니다. 뇌량 절단술을 받은 간질 환자를 관찰하여 뇌량 절단이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 살펴보는 연구였지요.

먼저 시각적인 연구가 있습니다 (Gazzaniga,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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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각 신경은 대략적으로 위 그림에 표시된 바와 같은 꼴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각 선들은 외부의 빛 정보가 어떤 길로 대뇌 후두엽까지 전달되는지 보여 줍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사야에서 왼쪽에 해당하는 영역의 빛은 안구의 오른쪽 망막에 들어가며, 이 정보는 대뇌 우반구로 전달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른쪽 시야의 시각정보는 안구의 왼쪽 망막을 거쳐 왼쪽 반구로 전달됩니다. 우리가 우리 얼굴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모니터를 두고, 모니터의 중앙에 점을 하나 찍어둔 다음 그 점에 시선을 고정하면, 모니터의 오른쪽에 나타나는 그림은 좌반구에, 모니터의 왼쪽에 나타나는 그림은 우반구에 전달 되게끔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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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량이 절단된 환자의 경우, 좌반구와 우반구에 들어간 정보가 다른 쪽 반구로 전달되지 못하겠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두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몸의 오른쪽 절반은 대개 좌뇌에 의해, 왼쪽 절반은 우뇌에 의해 컨트롤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오른 손의 움직임은 좌뇌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은 대부분의 인간에게 있어 좌뇌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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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과 같은 세팅에서, 환자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물어보면 Ring 이라고 대답합니다. 자, 모니터의 오른쪽에 있는 것은 좌뇌로 전달된다고 했었죠? 그리고 좌뇌에는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고요. 그래서 환자는 Ring 이라고 "말"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적절한 물건을 '왼' 손으로 잡아보라고 하면 환자는 Key 를 잡습니다. Key 는 모니터의 왼쪽에 표시되고 있고, 이 정보는 우뇌로 전달되겠죠. 왼손은 우뇌에 의해 컨트롤 되구요. 그래서 왼손은 Key 를 잡습니다. 환자에게 왜 Key 를 잡았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더 생생한 장면을 이 동영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더욱 드라마틱한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이 번에는 환자에게 헤드폰을 씌웁니다. 왼쪽 귀에 들리는 소리는 우뇌로, 오른쪽 귀에 들리는 소리는 좌뇌로 전달됩니다. 왼쪽 귀로 웃기는 농담을 들려주면 환자는 웃는데, 왜 웃냐고 물어보면 방금 당신이 들려준 농담이 웃겨서라고 대답하는 대신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예컨대 "당신네들이 매일같이 나를 테스트하러 오잖아요. 얼마나 희한한 삶입니까?" (Dietrich, 2007, S. 114) 라고요. 우뇌로 전달된 언어적 정보도 어떻게 해독은 되지만 (앞에서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거의 끊어진다고 했었는데, 뇌의 다른 부분, 예컨대 중뇌를 경유한 연결 등은 남아있습니다) 의식화 될 정도로 충분히 다뤄지지는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왼쪽 귀로 일어나서 걸으라는 말을 들려주면 환자는 실제로 일어나서 걷는데,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목이 말라서 콜라를 가지러 간다" 고 대답합니다. 적절한 설명을 창작해 낸 것이지요.

이 사례에서 제가 요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행동의 진정한 원인이나 동기를 의식적으로는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뇌량 절단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있긴 하지만, 만약 프로이트가 말했던 대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억압되는 생각들이 무의식속에 있다면, 그리고 이것들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뇌량이 절단된 환자들의 경우와 비슷하게 우리가 우리의 결정이나 행동의 진정한 이유를 모른 채 그저 의식 차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게끔 만들어진 그럴듯한 다른 설명이 진짜 이유라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보이는 또다른 연구를 살펴봅시다.

2. 뇌내 전극 삽입술

파킨슨 병 환자들은 병이 진행될수록 점차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어느정도 완화하기 위해서 뇌 속의 특정 부위에 일종의 금속 침 같은 것을 삽입한 후 지속적으로 주기적인 전기 자극을 가하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이 시술을 받은 어느 파킨슨병 환자에게서 일종의 특이한 부작용이 발견된 바가 있습니다 (Bejjani 외, 1999). 논문에 따르면 그 환자에게 심어진 전극들 중 하나에 높은 진동수의 전기 자극을 흘려넣자 십 초가 채 되지 않아 환자는 표정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삼사분이 경과하자 눈물을 흘리며 "나는 삶에 완전히 지쳤어요... 더이상 살고싶지 않아요... 모든 게 쓸데없고, 나는 무가치해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어요..." 라고 호소합니다. 일종의 급성 우울증이 발생한 것입니다.

전기 자극을 중단하면 다시 수 분 내로 완전히 멀쩡한 상태로 돌아옵니다. 방금 전 극도의 우울 상태에 빠졌던 것의 반동인지 약간의 조증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도 온전히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환자는 자신이 우울한 진정한 원인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삶에 지쳤다, 나는 무가치하다" 와 같은 생각에 빠져들고, 이것들이 우울함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죠. 저는 이 발견이 우울증이 확실히 어떤 사건적 원인 없이 순전히 생리적 문제만으로도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글의 논지에 해당하는,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 의식적인 '나' 가 무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제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나요?

나는 나의 마음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 가 하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나에대해 모를 때, 나는 나를 의식하는 나와, 의식되는 나로 나뉩니다. 물론 '나' 는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의식하는 나' 겠지요. 더 정확히는, 외부의 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아울러 인식하고 있는 내가 '나' 로 불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 '인식하는 나' 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도 틀림없이 내 정신의 일부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더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식할 수 있다면 어떻게 손을 써 보기라도 할텐데, 인식하지 못하니 속수무책인 거지요. 바로 이런 정황을 가리켜 프로이트는 인간이 사실은 자기 스스로의 주인이 아니라고 ("Der Mensch ist nicht Herr seiner selbst") 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의식하는 '나' 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 는 많은 경우에 나의 행동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예컨대 공부를 하려고 한다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특정 식단을 지키려 하지요.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나 자신이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순탄하게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의식하는 나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 정신 영역 사이의 괴리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또, 나는 내가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욕망을 따라가는 삶이 순탄치 않고 오히려 내게 고통을 주는데도 삶의 방향을 돌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의 저편을 알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Bejjani, B.-P. et al. (1999). Transient Acute Depression Induced by High-Frequency Deep-Brain Stimulation.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40, 1476-1480. DOI: 10.1056/NEJM199905133401905

Dietrich, A. (2007). Introduction to Consciousness. New York: Palgrave.

Gazzaniga, M. (1967). The Split Brain in Man. Scientific American, 217(2), 24-29. DOI:10.1038/scientificamerican086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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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무의식에 대하여 경험과학적 입장에서 논증하려는 시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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