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다. 지구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갯짓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곳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아주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나중에 엄청난 파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중산층의 건실한 가장이자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피는 효자이기도 한 나데르가 아내 씨민과 별거를 하게 된 상황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아내가 딸의 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이주하겠다고 선언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병석의 아버지를 외면할 수가 없어 아내를 따라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아내와 이혼 소송까지 불사했고, 결국 별거에 들어갔다. 아버지를 보살펴 왔던 아내가 홧김에 친정으로 가버리자, 나데르는 가정부를 고용한다. 그런데 이 가정부가 아버지를 혼자 남겨두고 멋대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나데르는 가정부를 집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된다. 어찌된 일인지 임신중이었던 가정부가 뱃속의 아이를 유산해 버렸고, 나데르는 기소된다. 그는 졸지에 살인 용의자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란 감독 아스가르 파르하디가 연출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우리가 흔히 중동 영화로부터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이를테면 전쟁의 피폐함이나 가난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는 거리가 먼 보편적인 일상의 세계를 담는다. 그렇다. 이란에도 중산층이 있고, 그들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티격태격 싸우며, 사회 계층간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문명화된 현대 사회의 어떤 곳에서나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그러나 보편적인 풍경으로부터 사건을 끄집어낸다. 이 영화에서 이란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코란 위에 맹세하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하는 것 말고는 거의 없다. 어쩌면 이 영화가 2011년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금곰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바로 그러한 보편성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딱히 이란이 아닌 우리 사회의 한 풍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묘한 설득력을 발산한다.
현대 사회의 단면을 툭 뽑아내 그린, 마치 하나의 풍속화 같은 이 작품의 함의는 매우 중층적이다. 몇가지 주제를 뽑아내라 한다면, 두 가지 키워드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비겁함’이며 또 한가지는 ‘계급 충돌’이다. 영화는 나데르의 주장과 가정부의 주장이 대립하는 법정 장면을 통해 진실이 편의적으로 왜곡되는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나데르는 홧김에 문 바깥으로 가정부를 밀쳐 냈을 뿐인데다 가정부가 임신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가정부는 그의 폭력 때문에 아이가 유산됐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영화 말미에 드러나지만 어쨌든 양측 모두 상황을 자기 편의에 맞춰 ‘비겁하게’ 해석하는 데 게으르지 않다.
이런 충돌의 이면에는 계급 사회가 지닌 뇌관이 존재한다. 언제든 사용자와 피사용자,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이해 관계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 말이다. 문제는, 아니 이 영화의 핵심은, 마치 배심원의 입장에 서게 되는 듯한 관객에게 양측의 입장 모두 이해 가능한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선으로, 누군가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상황, 그렇지만 분명히 갈등은 존재하고, 그 안에서 서로를 끝내 밀쳐 내거나 타협점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가 보여주는 세계는 극적 갈등을 만들어내는 편의적인 대립 구도를 거부하는 가운데 관객을 일상과 보편의 한 대목으로 끌어들이며 딜레마를 제시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리겠는가. 어쩌면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는 무력감이야말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가장 명징한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선악의 구분이 없는 부조리. 서로 대립하게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왜곡되는, 혹은 왜곡됨을 강요당하는 인간성.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서 그걸 읽어낸다면, 당신에게 이 영화는 꽤나 강력한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런 영화를 ‘재미있는 영화’라기 보다 ‘좋은 영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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