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북통일과 월드컵 우승만 보면 된다.

in #kr7 years ago (edited)

드디어 오늘이다. 남북정상회담 말이다.

나는 92학번 이다. 87, 88년 민주화 항쟁의 최루탄 연기가 사라져갈 무렵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한 92년 말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요즘들어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는 행운아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오는 모든 과정을 경험했고 특히나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첫 세대이며, 개인적으로 축구팬인 나에게는 월드컵 4강이라는 감동도 특별했다.

내가 인터넷을 접하고 처음 했던것은 마이클 조던의 사진을 내려 받는 것이었다. 당대 최고의 NBA 스타였던 마이클 조던이 농구 골대를 향해 우아하게 날아가는 사진을 내려받아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두었던 신기한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진을 어딘가로 부터 받아서 프린트 한다는 것은 아날로그 시대였던 당시로서는 정말이지 신비한 마술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띠띠띠띠~ 띠리리~ 하는 소리를 따라 접하는 한국의 PC통신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채팅을 했다. 전화가 오면 끊어지긴 했지만 밤을 새워 들여다 보던 파란 화면은 지금도 잊지못할 추억이다. 일주일여가 지난 비디오를 대여해 한국의 드라마를 봐야만 했던 당시로서 실시간으로 한국과 무엇을 한다는것은 초등학교 시절 집에 처음 전화기가 들어왔던때의 놀라움 이상이었다.

어린시절 처음으로 전화기가 개통되었을때, 외숙모는 전화기 받침대와 수화기 커버를 뜨개질 해서 선물했고 동생들과 나는 오는 전화를 서로 받으려고 다투었다. 지금은 전화기로 전세계 뉴스를 읽고, 사진을 찍고, 스캔을 하고, 채팅을 하고, 음악을 듣는다. 사전이 되기도 하고, 통역도 해주며, 은행 입출금을 하고, 쇼핑을 하고 결제를 한다. 물론 동생들과 다툼없이 전화를 걸고 받는다. 참으로 SF소설같은 삶이 아닌가.

지난해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 당하고 나서 20년 넘게 알고 지낸 선배에게(이 선배도 대단한 축구팬이다) 내가 건넨 말은 '이제 남북통일과 월드컵 우승만 보면 정말 볼거 다 보는 것' 이라는 말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환희도 벌써 16년 전이다. 일생을 축구팬으로 살아온 나에게 2002년 월드컵의 환희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차범근, 최순호, 김주성등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들을 보며 자랐지만 월드컵 4강이라는 것은 마라도나나 베켄바우어 같은 외국의 판타지 스타들을 갖춘 팀만이 가능한 일이지 언감생심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 여기며 살았다. 그것은 현실이라기 보다는 관념적인 것이어서 2002년 당시에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일생 최초로 관념이 현실이 된 사건이랄까...

그리고 2018년, 이제 오늘 드디어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다. 1992년 대학을 들어가서 통일이라는 말이 실재 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의 통일이란 '우리의 소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원래 소원이란 이루어지지 않기에 소원이 아니던가. 하지만 대학엘 들어가고 많은 사람들(실제로는 대부분 '백만학도'라 불리우던 전대협 학우들만)이 통일을 위한 '투쟁전선'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아... 통일이 진정 학생들의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치기 어린 자신감을 갖기도 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언 25년이상이 흐르고 진짜 손에 잡힐 듯 현실감있는 통일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89년 임수경을 북한에 보냈던 임종석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서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인가.  임종석이 누구인가 그시절 우리가 결사보위(?)했던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의장님이 아니신가. 물론 89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임종석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만 일삼는' 대학에 들어가면 절대 닮지 말아야 할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대통령을 보위하며, 어쩌면 통일의 초석이 될 남북 정상회담의 최고 실무자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날로그 전화기를 보며 신기해 하던 초딩이 인공지능이 이세돌을 이기는 것을 지켜 보았다. 차범근과 메르데카컵에 열광하던 초딩이 월드컵 4강을 목도 했고 이제 관념적인 구호로서의 통일을 외치던 대학생이 실제로 남북통일을 지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디지털의 신세계를 경험했고, 민주화의 결실을 목도했다,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보았고, 남북통일의 기적이 눈앞에 와있는 듯 하다.

이제 내 꿈은 월드컵 우승, 하나 남은 것인가?

오늘 저녁은 시원한 랭면에 소주나 한잔 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려 한다. 이제 40대 50대가 된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학우들이여! 이 아니 즐거운 인생인가.

- 미국에서 짐 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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