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의 사마의와 제갈공명이 보낸 여자옷 암호화폐 거래의 엉덩이 무겁기
진 고조 선황제 사마의(晉 高祖 宣皇帝 司馬懿, 179년 ~ 251년 8월 5일)는 중국 삼국시대 조위의 관료이자 서진의 추존 황제로, 자는 중달(仲達)이며 하내군 온현(溫縣) 사람이다. 조진 사후, 위나라의 군대를 이끌어 그의 최대의 라이벌인 제갈량과의 치열한 지략싸움 끝에 결국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냈다. 명제 사후 실권을 장악하여 서진 건국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사마의는 하내(河內) 온현(溫縣) 효경리(孝敬里) 사람이다. 아버지는 경조윤을 지낸 사마방으로, 사마의는 그의 둘째 아들이다. 형은 사마랑이며, 셋째 아우는 사마부이다. 사마의는 유년기 때부터 총명하여 대략(大略)을 지녔고, 식견이 넓었고 유학의 가르침을 가슴깊이 간직했다(伏膺儒教)고 한다. 후한 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늘 천하를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최염은 사마랑에게 말하길, “당신의 동생(사마의)은 총명, 성실하고 결단력 있고 영특하니 그대보다 낫다”고 했다.
201년에 사마의는 상계연(上計掾)으로 천거되었다. 조조가 사공이었을 때 사마의를 불렀으나 병을 핑계로 사양했다. 조조가 승상이 되었을 때 사마의를 다시 불렀는데 거절한다면 가두겠다는 엄포를 놓았고 사마의는 이를 두려워해 문학연에 취임했다. 조조의 아들 조비와 교제하여 황문시랑(黃門侍郎), 의랑(議郎), 승상 동조속(丞相 東曹屬), 그 뒤에는 주부(主簿)로 전임했다.
조조는 사마의가 마음 속에 큰 뜻을 품고 있음을 알아채고 그리 신임하지 않았다. 조조는 사마의가 낭고상(狼顧相)이란 소문을 듣고 사마의를 오게 하여 고개를 돌려보게 했는데,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얼굴이 똑바로 뒤를 향했다. 또 조조는 세 마리의 말이 한 구유(槽:조씨의 曹와 음이 같다)에서 먹이를 먹는 꿈을 꾸어 이를 매우 언짢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세 말은 훗날 위나라를 멸망의 길로 들게 하는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조는 조비에게 “사마의는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될 사람이 아니다”라며 항상 경계할 것을 충고했다. 조비는 사마의와 평시 도움을 주고 받았었는데 조조의 말을 듣고 이 때문에 그를 멀리하였다. 사마의는 조조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하급 관리의 직무를 밤을 새며 보고 가축을 기르는 하찮은 일까지도 기꺼이 함으로써 조조를 안심시켰다.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굴복시켰을 때 사마의는 유엽과 함께 유비가 점령한 지 얼마 안 된 익주를 칠 것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익주의 민심을 달래고 군을 정비한 유비가 한중을 점령하여 조조에게 큰 우환을 안겨다주었다. 우금과 방덕 등이 관우에게 대패하고 관우의 기세가 중원에까지 뻗치자, 조조는 하북으로의 천도를 검토했다. 이때 사마의는 장제와 함께 “천도한다면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니 인근의 백성들이 크게 불안해 할 것입니다. 손권과 유비는 겉으론 친밀하나 안으로는 소원하니 손권을 달래 관우의 후방을 기습하면 번성의 포위는 자연히 풀릴 것입니다”라고 건의했고 조조는 이를 따랐다. 결국 손권은 여몽으로 하여금 형주를 쳤고 결국 관우의 목을 베었다.
위나라의 태자중서자가 되어 진군, 오질, 주삭과 함께 태자 조비의 신임을 받았다. 조비가 후한으로부터 선양받아 위나라의 황제가 되었을 때, 상서(尙書)로 임명되었다. 224년 무군대장군(撫軍大將軍) 가절(假節)로 전임되어 급사중(給事中)과 녹상서사(錄尙書事)의 벼슬이 더해졌다. 조비의 사마의에 대한 신뢰는 매우 두터웠는데 사마의에게 이르길, “짐이 동쪽에 있을 때는 그대가 서쪽을 맡고, 짐이 서쪽에 있을 때는 그대가 동쪽을 맡으시오”라고 했다. 조비가 죽을 때 사마의, 조진, 진군을 불렀고 황태자 조예에게 조서를 내려 말하길, “이 세 명의 신하와 틈이 생기더라도 결코 의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예가 황제가 된 후 무양후로 이봉되었고, 표기장군이 되었으며, 태화 원년(227년)에는 독형예이주제군사를 겸했다. 맹달의 모반 의도가 노출되자, 서신을 보내 맹달을 안심시키는 한편 주둔지인 완에서 맹달이 있는 상용성까지 급히 행군하여 8일만에 도착하였고, 16일 만에 성중에 배반자가 생겨 성을 함락하고 맹달의 목을 서울로 보냈다.
태화 4년(230년), 사마의는 대장군에 임명되고 대도독, 가황월의 벼슬이 더해졌다. 그 해에 조진과 더불어 촉한을 공격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퇴각했다. 231년 제갈량이 천수를 공격했을 때 사마의는 조예의 명을 받아 장안에 주둔해 도독옹량이주제군사를 맡았다. 이후 역사상 유명한 제갈량과의 대결을 벌인다.
제갈량의 북벌은 227년부터 장장 7년 동안 6차례에 걸쳐 행해지는데, 1차 북벌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마의가 나섰고 총지휘한 것은 2번이다. 첫 대결은 231년으로, 조진이 죽은 뒤 촉군의 약점이 식량 보급에 있음을 간파한 사마의가 지구책을 쓰고 그 전략이 효과를 발휘해 촉한군은 퇴각했다, 그러나 장합의 진언을 무시하고 추격했다가 장합을 잃었다.
두 번째 대결은 234년, 제갈량은 장기전을 예상해 3년에 걸쳐 준비하는데, 오장원으로 출진한 제갈량에 대해 사마의는 또다시 지구전을 펼쳤다. 제갈량은 부인용 머리 장식과 여러 장신구들을 사마의에게 보내며 비웃었지만 사마의는 도발임을 눈치채고 편승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지고 온 사자에게 제갈량의 안부를 물었다. 이때 사마의는 수시로 촉한군의 진영을 염탐해 제갈량이 죽음에 임박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죽음을 안 사마의가 즉시 전군에 공격 명령을 내렸으나 제갈량의 목상을 보고 아직 살아있는 줄 착각하고 놀라 도망쳤다고 한다.
촉한군이 퇴각한 뒤 진영을 살펴본 사마의는 제갈량을 ‘천하의 귀재’라고 평가했다.
경초 2년(238년), 전년에 위나라에 반기를 들고 독립한 요동의 공손연이 토벌군 4만을 이끌고 출진했다. 연군이 요수에 의지하여 저항하자, 남쪽으로 도강하려는 체 하고 실은 북쪽으로 도강하여 연의 서울 양평으로 향했다. 연군이 쫓아오자 이를 세 번 무찌르고, 양평성을 포위했다. 당시 큰 비가 내려 진영의 침수가 염려되었으나, 버티고 비가 그치자 포위망을 완성하여 맹공격을 퍼부어 결국 성을 함락시키고, 15세 이상의 남자 7천 명을 죽여 경관을 세우고 연나라의 관원과 장수 등 2천여 명을 주륙했다.
후일 사마의는 그 아들들과 함께 위나라의 실권자인 조상 형제에 대항하여 고평릉의 변을 일으켜 성공하였다. 이로써 사마씨 일가는 위나라의 조씨 정권을 탈취하여 허수아비로 만들고 그 손자 사마염이 선양을 받아 국호를 진으로 고쳤다. 그 이후 사마의는 오래전부터 앓아온 지병을 앓다가 결국 죽고 만다. 진 제국 성립 후 사마염은 사마의에게 선황제의 시호를 올렸다.
www.upaper.net/homeosta/1009501삼국지연의 100회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懿曰:“連日晴明,蜀兵不趕,料吾有伏兵也,故縱我兵遠去﹔ 待我兵過盡,他卻奪祁山矣。”
의왈 연일청명 촉병불간 료오유복병야 고종아병원거. 대아병과진 타각탈기산의.
사마의가 말했다. “연일 맑으니 촉나라 병사가 추격하지 않고 우리가 복병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우리 병사를 놓아 멀리 가게 합니다. 우리 병사가 다 지나길 기다려서 그들은 기산을 빼앗을 것입니다.”
曹真不信。
조진불신.
조진은 믿지 않았다.
懿曰:“子丹如何不信?吾料孔明必從兩谷而來。吾與子丹各守一谷口,十日爲期。若無蜀兵來,我面塗紅粉,身穿女衣,來營中伏罪。”
의왈 자단여하불신? 오료공명필종양곡이래. 오여자단각수일곡구 십일위기. 약무촉병래 아면도홍분 신천여의 래영중복죄.
사마의가 말하길 “조진(자단)께서는 어찌 믿지 않으십니까? 저는 제갈공명이 반드시 두 골짜기를 따라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자단이 각자 한 골짜기 입구를 지키고 10일을 기약합니다. 만약 촉나라 병사가 오지 않으면 저는 얼굴에 홍색 분칠을 하고 몸에 여자 옷을 입고 병영중에서 죄를 굴복하겠습니다.”
真曰:“若有蜀兵來,我願將天子所賜玉帶一條、御馬 어마 :임금이 타는 말
一匹與你。”
진왈 약유촉병래 아원장천자소사옥대일조 어마일필여니.
조진이 말하길 “만약 촉나라 병사가 오면 나는 원컨대 천자가 하사한 옥대 한 개와 어마 한 필을 당신에게 주겠소.”
www.upaper.net/homeosta/1009503 삼국지연의 104회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卻說魏將皆知孔明以巾幗 女衣辱司馬懿,懿受之不戰。
각설위장개지공명이건귁여의욕사마의 의수지부전.
幗(머리 장식, 부인이 머리에 쓰는 꾸미개 귁; ⼱-총14획; guo,guāi)
각설하고 위나라 장수는 모두 제갈공명이 베와 장식 여자 옷을 보내 사마의를 욕보임을 보고 사마의가 받고 싸우지 않음을 알았다.
衆將俱忿,入帳告曰:“我等皆大國名將,安忍受蜀人如此之辱!即請出戰,以決雌雄。”
중장구분 입장고왈 아등개대국명장 안인수촉인여차지욕? 즉청출전 이결자웅.
여러 장수는 모두 분노하고 장막에 들어가 고하였다. “저희들은 모두 대국의 명장인데 어찌 촉나라 사람의 이와 같은 모욕을 받겠습니까? 곧 출전을 청하여 자웅을 겨루고자 합니다.”
懿曰:“吾非不敢出戰,而甘心 受辱也。奈天子明詔,令堅守勿動。今若輕出,有違君命矣。”
의왈 오비불감출전 이감심수욕야. 나천자명조 령견수물동. 금약경출 유위군명의.
甘心 :①괴로움이나 책망(責望)을 달게 여김 ②또는 그런 마음
사마의가 말했다. “나는 감히 출전하지 않아서 달게 마음으로 욕을 받음이 아니다. 천자의 조서가 있어서 단단히 지켜 움직이지 않음이다. 지금 만약 가벼이 나가면 군주의 명령을 위반함이다.”
衆將俱忿怒不平。
중장구분노불평.
여러 장수들은 모두 분노하고 불평하였다.
내용을 보면 우리 속담에 죽은 공명이 산 중달 곧 사마의를 쫓아내었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사실 전투 내용을 보면 사마의는 승리하고 제갈공명은 패배했기 때문에 말이 안되는 내용이다. 제갈공명은 산을 넘어 쳐들어왔기 때문에 보급이 어렵고 지구전으로 시간을 끌면 반드시 이기는데 억지로 싸울 필요가 없었다. 즉 사마의가 겁쟁이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이용을 하고 또 여자옷을 보낸 모욕을 참는 대기만성형 인재였다.
사실 삼국지연의 내용을 보면 남녀 차별적인 내용이 나온다. 즉 기다리기만 하고 싸우는 용기가 없는 것을 여자에 빗대서 말을 한다.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주식투자나 비트코인등 암호화폐 투자 내용을 보자. 사실 남자보다 이런 투자, 투기는 여자들이 더 잘한다. 그 이유는 남자는 조급증이 있어서 엉덩이가 가벼워서 단타를 치고 조금만 이익보면 팔고 손해나면 손절을 하지만 여자는 꾸준해서 잘 주식이나 암호화폐를 보유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이익이 난다.
자료로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은 기대수익이 낮지만 안정성이 높은 펀드를, 남성은 다소 리스크가 있더라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을 투자처로 선호했다. 전체 남성 응답자 중 37.6%는 직접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여성은 28.4%에 그쳤다. 펀드 가입비율은 여성(45.3%)이 남성(38.8%)에 비해 높았다. 특히 30대 여성은 49.7%가 펀드에 가입한 상태라고 응답해 전체 중 가장 높았다. 반면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비중은 22.8%에 그쳐 가장 낮게 나타났다.
투자성향을 분석한 결과 여성은 작은 손실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투자행태도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5% 미만 투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보유 주식을 손절매하겠다고 응답한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적정 주식투자 기간도 1년 이내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아 리스크에 노출되는 기간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 위험에 민감한 만큼 기대수익률도 남성에 비해 낮았는데 주식투자로 연 5% 미만 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25.7%나 됐다.
반면 남성은 투자성향이 상대적으로 공격적이고 기대수익률도 높은 편이었다. 투자 손실이 10%는 되어야 손절매하겠다는 비중이 23.5%로 나타났다. 주식투자로 기대하는 수익은 여성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았고 연 20% 이상 고수익을 원하는 응답자도 22.7%나 됐다. 적정 주식투자 기간은 1~2년 이내라는 답변이 24%로 가장 많았다.
이 내용을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수익률이 떨어지는데 필자는 꼭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젠더 즉 여성형 보수적인 투자자가 오히려 수익이 더 높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 생각에는 암호 화폐의 경우 남성 투자자가 90%로 압도적으로 높다고 본다. 그래서 암호화폐 자체가 너무 출렁거리고 가격 변동성이 커지게 된다고 본다. 코인 컨퍼런스나 meet up등 행사를 가도 남성이 80-90% 여성이 10-20%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거래 싸이트에서 남 녀 성별에 대한 수익률에 대해서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
여성 여러분이 많이 암호화폐 투자에 참가해서 남탕을 만들지 말고 성별 비율을 맞춰서 현금처럼 비트코인, 이더리움등이 안정화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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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데... 오늘 그 기억을 되새기게 되네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삼국지는 어느분 번역을 읽으셨나요? 몽골 사진 리스팀했습니다
중학생때 읽은 거라 하도 오래되어서 어떤 분의 번역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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