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는 자리돔철

in #kr4 years ago

제주도민 라이프

제주엔 여러 철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만 해야하거나, 맛봐야 하는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3월 중순부터는 고사리철입니다. 한라산 곳곳엔 이때부터 고사리를 캐는 도민들, 특히 할망들이 많습니다.
3월 말쯤에 제주엔 자주 비가 내리는 편인데, 이 때 오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도 부릅니다.
이 비를 맞고 고사리들이 많이 자라기 때문이죠.
고사리는 한라산 고도에 따라 생장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4월 말까지 늦게는 5월까지 캔다고 하는데요.
요즘 몇 군데를 다녀보면 이미 고사리들이 꽤 자라서 캘 수 없는 상태인 곳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고사리를 채취하는 분들은 좋은 포인트를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월부턴 5월까진 한창 자리돔 철이기도 합니다.
자리돔은 길이 15cm 안팎의 어른 손바닥보다도 약간 작은 생선입니다. 제주에서 가장 흔했던 생선이기도 합니다. 연근해에 살고, 과거엔 낮은 수심에서 뜰채로 떠서도 잡았다고 하네요. 그 옛날에도 옥돔은 귀하고 비쌌지만, 자리돔은 흔하고 저렴해 서민들에게 친근한 먹거리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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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돔 물회는 약간 뼈가 씹히는 오돌톨한 식감인데요. 육지 물회와는 달리 된장 양념에 무와 오이 등 야채들이 듬뿍 들어가고, 특히 고추장 베이스가 아니라 육수가 상당히 슴슴한 편입니다. 줴피잎이라는 제주식 허브를 약간 넣기도 하는데요. 동남아 요리의 '고수'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향신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줴피잎은 대개 따로 줍니다. 자리돔구이도 별미입니다. 굵은 소금을 팍팍 뿌려 굽는데요. 다른 생선보다 고소한 풍미가 더 강합니다. 아이들 식사로도 아주 괜찮죠.

자리돔으로 유명한 지역은 제주도에서도 주로 남쪽입니다. 제주도에서 가장 최남단인 모슬포(방어로 유명한 그 곳)와 서귀포의 보목포구가 유명하죠. 두 지역의 공통점은 앞에 작은 섬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목 앞엔 섶섬이 있고, 모슬포 앞엔 가파도와 그 유명한 마라도가 있죠. 자리돔이 얕은 수심에 산호초와 암초가 많은 바다에 주로 사는데, 제주도와 작은 섬(섶섬, 가파도) 사이가 자리돔이 살기 제격인 바다인 것이죠.

바다가 잔잔한 보목의 자리돔은 살과 뼈가 연하고, 해류가 거센 모슬포의 자리돔은 다소 크고 뼈도 더 억세다고 합니다. 모슬포와 보목의 거리가 불과 30킬로미터 정도인데요. 같은 종인 자리돔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게 신기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늘 같은 자리에 머무르기 때문에 '자리돔'이라고 합니다.

보목포구에 가면 요즘엔 고깃배가 들어올 때마다 자리돔 장이 열립니다. 저는 오늘 1킬로 조금 넘는 자리돔 스무마리를 만 오천원에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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