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드롭: 사기와 마케팅의 경계를 묻다
2014년 2월,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여러 알트코인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 아이슬란드에서는 암호화폐가 널리 쓰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만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됐다.
발두르 프리그자 오딘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한 개발자가 아이슬란드 국민 33만 명 모두가 앞서 6년 전 발발한 금융위기 이후 시행된 자본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오로라 코인(auroracoin)을 만들고 전 국민에게 한 사람 당 31.8개씩 코인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에어드롭”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일단 배포하는 과정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고, 에어드롭 실험은 이내 실패로 끝났다.
오로라코인의 가격은 출범 이후 처음 몇 주간 1000% 이상 급등했다. 잠깐이나마 세상에서 세 번째로 가치가 높은 암호화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봄이 되자 어느 순간 코인을 받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코인을 현금으로 바꿔 처분하기 시작했다. 코인 가격은 속절없이 폭락했다.
2014년 중반이 되자 오로라코인은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없어졌다. 프로젝트는 폐기됐다. 그러나 실패를 교훈 삼아 사람들이 던진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오로라코인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코인을 만들고자 진정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오래 갈 수 없었던 정교한 사기극에 불과했을까? 2018년을 사는 우리는 에어드롭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다. 암호화폐 세상의 모든 에어드롭 관련 자료만 모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웹사이트도 있을 정도다. 특히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월렛 업체 블록체인(Blockchain)이 스텔라 루멘스(XLM) 토큰 1,400억 원어치를 에어드롭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당 사이트는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됐다. 엄청난 액수의 에어드롭을 두고 이런 식으로 무상으로 암호화폐를 배포하는 것이 암호화폐 사용을 촉진하는 건설적인 방법인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사기극에 불과한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커뮤니티 개발이 암호화폐 프로젝트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즉 누가 개발 자금을 댈 것인지, 그리고 자금을 댄 사람이 그 대가로 수익의 어느 정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다.
네트워크 강화인가 사기극인가
블록체인의 CEO 피터 스미스는 스텔라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스텔라는 무엇보다 확장성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주력해 왔으며, 생태계 전반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루멘스 에어드롭은 안전하고 쉬운 방법으로 신뢰받는 새 암호화폐 자산을 테스트하고, 사용해보고, 거래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뒀다.”
스텔라 개발 재단의 공동 창립자 제드 맥칼렙은 스텔라를 커뮤니티용 툴로 확장시켜 자산을 발행하고 새로운 가치교환 모델을 설계하려는 네트워크 상의 시도를 높이 샀다. 맥칼렙은 블록체인사가 관리하는 거의 3천만 개에 달하는 월렛을 활용하여 “네트워크의 이용성을 대폭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를 비판하는 이들은 여전히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이 월렛 사용자를 단기간에 늘리고자 기만적인 방법을 채택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사용자들의 신원을 쉽게 파악하고 이를 통해 개인정보 풀을 만들어 이를 활용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비트코인 어드바이저리(Bitcoin Advisory)의 창립자 피에르 로차드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공짜” 사기에 정말 주의해야 한다.
1. 즉각 자신과 친구들을 위한 토큰을 미리 채굴
2. 가격을 높이기 위해 미리 채굴된 토큰을 서로 거래 (거래량 부풀리기)
3. 개인투자자들을 “공짜 토큰”을 미끼로 끌어들임
4. 개인투자자들이 토큰에 막 모여들어 가격이 오르면 그때 싹 토큰을 팔고 떠나버림
화폐 브랜딩
이 글에서 한쪽 편을 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일단 에어드롭을 해당 토큰을 더 널리 쓰이게 하려는 일종의 커뮤니티 공략법이나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보는 것이 논의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마케팅도 없이 새로운 토큰을 사람들이 열심히 써주리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화폐는 널리 쓰이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런데 화폐가 널리 쓰이려면 비용을 들여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화폐는 브랜드가 있다. 심지어 법정화폐도 예외가 아니다. 화폐라는 브랜드의 성공은 교환 수단이나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화폐의 가치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알려 널리 쓰이게 하느냐에 달렸다.
법정화폐는 정부가 경제의 건전성을 촉진하는 복잡한 마케팅 과정을 간접적으로 실행한다. 정부의 목표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자국민(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이 법정화폐를 사용해 거래하고 가치를 저장하게 하는 것이다.
복지혜택을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도 경제 활동을 진작하고 법정화폐가 더 널리 쓰이게 하는 일종의 에어드롭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책이 성공하면 정부는 시뇨리지 등의 형태로 직접적인 혜택을 볼 뿐 아니라 간접적인 효용도 얻는데, 화폐의 가치가 널리 인정돼 저축이나 소비 수단으로 해당 화폐가 쓰이면 유권자이기도 한 국민이 만족을 느끼고 정부에 호의를 갖게 되는 상황을 정부로서도 마다할 리 없는 것이다.
정부를 우회하고, 중앙은행이 시행하는 통화정책을 오픈소스의 탈중앙화 소프트웨어 프로토콜로 대체하는 암호화폐는 화폐를 알리고 사용을 촉진하는 책임도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주어진다. 다만 이것을 평등한 절차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항상 기득권과 비대칭적인 비용, 결과의 문제가 따른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에 일찌감치 눈을 뜬 얼리어답터들은 새로운 사용자를 더 많이 끌어모을수록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케팅 비용을 기꺼이 지급할 용의가 있었고, 새로운 가입자들에게 “비트코인 수도꼭지(bitcoin faucets)”를 통해 코인을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많았고, 일회성 개인 기부도 수만 건이나 있었다.
열정적이고 참여율이 높은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필요했고, 이 모든 활동에는 비용과 노력이 수반되었다. 디자이너들은 비트코인의 “B” 모양 로고를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만들었고, 결제 처리 서비스 비트페이(BitPay)는 201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축구 플레이오프 경기의 대회명을 상트페테르부르크 비트코인볼(St. Petersburg Bitcoin Bowl)로 명명하는 권한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에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데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마케팅 활동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사실에는 거부감을 느끼고, 블록체인과 에어드롭을 향한 많은 비난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누군가는 이득을 보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득의 크기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만약 익명의 비트코인 창립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알았다면, 얼리어답터와 사토시라는 개인을 한통속으로 바라보며 비트코인 홍보를 통해 누가 어떤 이득을 취하는지를 수상쩍은 눈길로 바라보았을 수도 있다.
또한, 비트코인의 가치를 높여 보유량이 높은 “고래”들이 이득을 얻는 것을 지속적으로 견제해 온 전통적인 경제영역 내 암호화폐 비판론자들의 주장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로차드 같은 얼리어답터이자 비트코인 지상주의자들을 위선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의 말도 일리가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신중하게 행간을 읽어야
물론 암호화폐 찬성론자들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코인을 홍보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코인을 홍보하는 행위를 기만이나 사기라고 비난할 때 그 근거로 홍보 덕에 코인이 널리 쓰여 누가 얼마나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원래 자산이 알려지고 채택돼 널리 쓰이게 되는 과정이 그렇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얼리어답터들의 사기극을 주의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실제로 나쁜 마음을 먹고 커뮤니티를 기만하려는 행위도 없지 않았다. 이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뉘앙스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암호화폐 유토피아론자들은 뉘앙스를 잘 고려하지 않는다. 행간을 읽지 않거나 못한다는 뜻이다. 수학적인 애플리케이션과 편견 없는 탈중앙화 오픈소스 프로토콜을 개발하면 사람들이 훌륭한 프로토콜을 알아서 쓰고 널리 퍼뜨려줄 것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론자들은 모든 마케팅과 홍보 활동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성공은 시끌벅적한 홍보보다 아이디어 자체의 힘과 반박할 수 없는 제품의 유용함에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수한 접근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매력적이다. 투르 디미스터가 블록체인의 루멘스 에어드롭을 비판한 다음 주장도 이러한 맥락 위에 서 있다.
“인터넷을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만 인터넷 사용량이 늘어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어떤 화폐가 더 널리 쓰이냐 마느냐는 에어드롭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는 철저히 통화 프로토콜의 이용성, 즉 해당 통화가 얼마나 유용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유의할 점은 화폐는 본질적으로 네트워크 상품이라는 것이다. 화폐의 이용성은 네트워크의 규모와 직결된다. 그리고 상품의 기능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되지 않으면 네트워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실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는 임계점에 다다르려면 우선 아이디어를 널리 퍼트려야 한다.
기업이 마케팅에 예산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용은 전통적인 의미의 광고 비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료로 제품을 나눠주면서 잃게 된 매출일 수도 있다. 일례로 닌텐도의 포켓몬고는 무료 모델로 수억 명의 유저를 끌어모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필자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매끄러운 P2P 경제를 향해가는 사회적인 진전을 가로막는 사기극이나 기업의 중앙화로부터 비롯되는 위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드롭 같은 특정 커뮤니티 개발 사업을 너무 조급하게 비난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필요한 홍보와 커뮤니티를 상대로 한 기만의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