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싶었고, 안전하고 싶었다

in #kr6 years ago

"제가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었어요."

얼마 전 스터디모임에서 이렇게 말하고도 문득 스스로의 강박을 안다는 게 어색했다. 강박과 중독이라는 게 그저 담담히 거론할 종목인가. 모른 채 묶이고 알면서도 제 손으로 가두는 일이 아니던가. 아무리 그게 추억처럼 읽히더라도 마치 잘 헤어진 연애처럼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선선한 헤어짐이 있을까.

시간에 대한 강박은 스무 살 이후에 불현듯 찾아왔다. 대입 때조차 없던 조바심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갉아먹으며 사는 몸뚱이. 괴로웠다. 고단해도 움직이지 않으면 이대로 시간을 흘려 보내버리는 듯했다. 소위 '내일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오늘을 만들자' 주의였는데, 대개 문학적 비유로 통용되는 문구에 나는 멍청하다싶을 정도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건 그저 아깝다는 느낌, 그 이상이었다. 어찌보면 돈과 타협하며 최대치로 살아보려 애썼던 셈이다. 생계는 그것대로 유지하고, 아직 내 앞가림만 해도 용서받는 신분일 때 최대한 뭐라도 쏟아내고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보다 강한 시간, 그걸 쫓아 내달리며 가끔 참던 숨을 화폐로 들이쉬는 격이었다. 학생이라는 핑계에서 벗어나기 전에 멋대로 살아야 했다.

그게 자유나 반항이 아닌 강박, 의무였다. 그건 시간, 돈에 대한 발악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갈망에 가까웠다.

이제와 시간에 대한 강박이라고 포장하면 무엇하랴.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중요한 건 안전하다는 느낌이었고 그 안에서 내 욕망을 꺾지 않는 타협점을 정말, 미친듯이 모색하는 작업이었다. 내게 즐거운 일로 어느 정도 살림을 해결하면서 조금씩 안정감을 맡아보고 싶었다. 큰 돈이 아니라도 내가 기꺼이 투신할 직업에서 밥을 지어먹을 수 있는 사회인으로 방출되길 원했다.

만약 내가 홀홀단신이었다면 조금 더 가뿐한 인간이었을까. 나는 생각보다 훨씬 '성장'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아주 사소한 존재들을 기워만든 헝겊이불과 비슷하다. 몰아쳐도 된다는 선택지가 주어졌다면 나는 멈춤 버튼을 눌렀을 것이고, 가끔 몰아치는 강약조절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테다.

허나 인생은, 태어난 몸은, 내쉬는 숨은 선택의 자유를 늘어놓지 못한다. 같은날 스터디에서 나는 자유를 원한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자유는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아니다. 불행할 자유, 고통스러울 자유, 버릴 자유, 취할 자유, 저항할 자유, 수긍할 자유, 누추할 자유, 멈출 자유, 가난할 자유, 거부할 자유, 사랑하며 더불어 미워할 자유였다.

선택의 자유는 권력. 그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아직) 내 것이 아니다. 오늘 잠시나마 주말 오전을 널어놓는 자유를 범했으나 곧 처지를 깨닫는 시간을 거쳤다. 내 분수와 함께 잠시나마 잊고있던 '달아나는 시간'의 악취가 났다. 주제를 모르고 그 시간을 낭비한 혐의. 나는 선택의 여지를 잃은 채 또 위태로운 집안을 응시했다. 도처가 눈물이고, 거기엔 얼룩진 곰팡내가 피어난다.

상대적 박탈감도 사치라고 느낀다. 내가 그렇듯 모두에게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런 걸 비교할 에너지로 살아가기에도 급급한 현실이다. 차라리 남을 밟고 오르는 식이라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성미도 못되고, 애초에 나의 고통은 위기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투쟁에서 비롯한다. 최대한 아무도 버리지 않고 견디고 싶다. 이거야말로 진짜 사치다. 끝까지 욕망이 있는 동물로 생존하는 것 말이다.

매번 평범한 척 잊고 살면 찾아오는 악.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죽을 때 나는 절대 그 사람처럼 실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악착같이 버티고 한걸음이라도 디뎌서 애통한 생애를 벗어나리라 결심한다. 오늘 또 같은 색깔의 그림자가 부엌 귀퉁이 어디쯤에 아른거렸다. 그만둬라, 포기해라, 놔라, 도망쳐라, 무기력이 가장 편리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아빠. 근데 나는 정말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막노동을 해서라도 돈에 환장할 거야. 스스로 한심할 때 자조하지 않고 화낼 거야. 성에 차서 벌떡 일어나 뭐라도 해볼 거야. 죽이든 밥이든 뭐라도 지어먹이고 가슴을 치는 한이 있어도 다같이 살아남을 거야. 아빠를 너무 사랑하니까 아빠처럼 안 될거야. 미안하다는 말 앞에 '앞으로도'가 들어가지 않게 부서지도록 노력할 거야.

근데 대신 너무 지치지 않기 위해서도 고민할 거야. 내 환경과 내 수중의 잔돈 때문에 몰리며 살진 않을 거야. 필요할 땐 포기하고 어떨 땐 악바리로 살 거야. 그래도 가끔 너무 고되면 억지로 멈추기도 하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에게 털어놓기도 할 거야. 그리 길게 살진 않았지만 그냥, 혼자 다 담고 덤비는 거, 홀로 이겨내려는 거, 병이 돼서 주저앉게 되잖아. 나는 지금도 사랑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거야.

나는 조금 더 길게 살아보려 해. 이왕이면 선택지가 있는 척, 자유로운 것처럼. 오늘 또 돈 때문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난 좀더 오래, 잘 살아볼거야. 어쨌든 태어났잖아. 그것도 당신들 자식으로. 최소한 당신의 유전자를 받은 자손에게서 성공의 역사를 보게, 자유의 한 끗이라도 맛보게.

오늘은 뭔가 진짜 억울했지만 늘 그랬든 우습게 넘기고 내일 출근해서 제일...까진 아니라도 적당히 근사한 노동자로 살아낼 것이다. 마주치고 부딪히며. 그래도 스무 살 방향 없이 나를 해부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괴롬에는 질서가 있다. 그 지도를 따라 막막해도 달아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 내게 박힌 파편을 빼고 근육을 채워 그 상흔마저 내 몸뚱이가 되길 기도한다.

내일부턴 진짜 잘 살아야지 :) 오늘 보스베이비 봐서 흥미로운 하루였다!! 엄마의 안전이 되는 가족이 될테다. 힘들이지 않고 터덜터덜, 분명 해내리라 믿어보자.

-2017년 5월 28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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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자유, 취할 자유를 알아가네요. 정성글에는 추천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이런 글이 많이 나와야 될텐데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