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리포트] 1. 수출 주도형 경제, 그 장대한 삽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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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yop님께 SP를 임대받고, #kr-economy, #kr-politics 등에 요즘 집중적으로 큐레이팅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라는 것과 정치라는 것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 같고, 평범한 서민들인 우리가 아무리 말해봐야 뭐 달라지는게 있겠냐하는 생각으로 '그냥 너 할거나 해' 하며 간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선거 시즌에 '집값을 올려준다'거나 '경제 대통령', '행복 대통령'이란 말에 혹해서 표를 주는 것을 보면, 어찌 보면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크고 중요한 정책이 바로 경제 정책이고, 이와 같은 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rothbardiansion님과 @rothbardianism 님이 연달아 박정희 시리즈를 써 주시면서 한국 사회에 뿌리박혀 있던 '박정희 신화'의 뚝배기를 제대로 후려갈기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박정희란 집권 과정의 쿠데타와 유신이라는 희대의 패악을 저질렀음에도 그놈의 '잘 살아 보세' 하나 때문에 신화급으로 격상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박정희 지지자들은 그 점에 집중하고, 반대파는 그 점을 중점으로 깎아내립니다. 프레이저 리포트 같은 것들이 주요한 사료로 쓰이죠.
좋든 싫든, 그의 생각과 행적을 잘 보여주는 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떻게 경제가 나아졌고, 왜 중공업 수출 주도가 되었고, 그 전에 무엇을 해 왔고에 대한 고찰은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한번 객관적인 사료와 지표를 중심으로 한번 한국 근현대사 경제 성장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번 훑어볼 필요가 생깁니다.
50년대 당시 우리 정부, 이승만 정부죠, 의 목표는 '자립경제'입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에서 저자가 언급한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이 의지할 데는 자기 밖에 없음을 알고는, 냉전으로 인해 주어진 대한민국의 엄청난 지정학적 영향력을 통해 판돈(미국의 원조) 모두를 싹쓸이하려는 포커꾼으로서의 기술을 이용하여 전세계의 패자로부터 자릿세를 뽑아냈다.
사료 하나를 더 봅시다. 1949년 4월 15일 처음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5개년 물동 계획안'에는 농업, 광업, 금속기계기구, 섬유, 화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생산 및 수급 계획을 세우고, 이를 ECA 원조로 조달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커밍스가 분석한 이승만의 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국 초기와 전후 복구 시기에 정권이 무리한 정책을 피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수출을 하겠다'라는 개념 자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래 표들을 봅시다.
노름은 Norm입니다. 당시 쓰이던 일본식 외래어 표기 탓에 나타난거죠. 한국과 비슷하게 비교할만한 평균적인 국가의 경제 비중 모델입니다. 모델에 비해 한국 수출(빨간 줄)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 표는 수입품을 성격에 따라 나눈 것입니다. 당시 공작기계나 공장설비를 직접 만들 수 없었던 한국 경제 체제 치고는, 소비재나 중간재, 원자재에 비해 투자재 수입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낮은 것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위 표에서 이승만의 생각과 목표는 '원조를 받아 일단 먹고 살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정리하면 아래 4가지 아젠다로 표시할 수 있겠습니다.
- 원조를 많이 받아 자립경제 건설
- 국내 소비를 국내 생산으로 충족
- 초과 수요는 해외 수입으로 해결
- 수출을 통해 번 돈으로 물자를 수입
그렇다는 것은, 장면 정부나 박정희 정부 어딘가에서 수출 경제로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교적 초기 박정희 정부에서 나왔던 사료를 봅시다.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행할 때에는 혁명공약에서 표방한 바와 같이 자주경제 재건을 위해 ‘자립화정책’을 추구했다. 5·16군사정변 세력이 국회를 해산하고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유원식 최고위원(쿠데타 당시 대령, 1961년 8월10일 준장 진급)이 최고회의 의장 자문위원이던 민간 경제학자 박희범 서울대 상대 교수와 함께 ‘내포적 공업화 전략’을 마련했다. 이들 자력갱생파이자 ‘급진파’의 경제 살리기 방안은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자주적 공업화 전략’이었다.
박희범식 내포적 공업화 전략은 외향적이며 개방적인 수출지향적산업화전략과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렇지만 자본이 부족했던 한국 정부가 이러한 내포적 산업화 발전 전략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으며 기업가와 관료가 반대한 탓에 계속 추진하는 것이 불투명해졌다.
한국경제 도약의 지렛대,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 신동아
63년 데이터를 잘 살펴봅시다.
군인들답게 행정이나 국가 경제를 경영하는데 무능함을 보였던 군사정부는 초기 장면 정부의 계획을 거의 베껴서 가져옵니다. 위 표를 보면, 사실상 이전 정부에서 만들어진 계획서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초기 개발 전략은 외자 도입을 통한 수출 전략이 아니라, 수입 대체를 통한 '자립경제' 노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미국의 원조는 급격히 줄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수입을 줄일 수 없었기 때문에 외환 보유고는 줄어만 갔습니다. 62년에서 65년까지 경제 정책의 시행은 그야말로 군사정부가 처음 국가 사령탑을 쥔 후 만난 '멘붕'상황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61년 6월에 환율 단일화를 했다가, 63년 1월에는 다시 이승만 정부 시절의 복수 환율제로 돌아가고, 64년 5월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후 65년 3월에 다시 환율 단일화를 실시하죠.
엄청난 혼란 속에서 경제가 휘청이긴 했습니다. 사회 혼란도 심했고요. 하지만 당장 원조가 끊기는 마당에 외환을 마련해보려고 무언가 발악을 한 흔적은 곳곳에 보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대박이 터집니다. 바로 수출입니다. 위 표의 63년 데이터를 봅시다. 원료별 제품(c)의 급격한 수출 초과달성이 보입니다.
삼화제철소 전경입니다. 이승만 시절에 푸시된 곳이죠
이승만 정권을 거치면서 전후복구의 붐을 타고 제철공업의 재건되면서 군소 제철공장들이 전국에 생겨나게 됩니다. 이승만은 당시 강원도 일대에 매장된 철광석을 활용해서 종합제철단지를 지을 생각을 하고 양양-삼척-묵호 일대에 종합제철공업단지를 세우겠다는 계획까지 세울 정도였죠. 무산되었지만요.
여튼 이 철강 산업이 어마어마한 효자가 되어버렸습니다. 60년대 당시 국내의 연간 수요는 20,000M/T(Metric Ton)에 불과했는데 생산 시설량은 34,000M/T였습니다. 잉여 생산품이 나간 곳은 바로 남베트남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전 미국은 한국과 베트남을 둘 다 소련의 압박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강하게 푸시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에 준 원조금으로 베트남은 한국에서 철강을 수입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부는 '요오씨 이거다!' 하고 부랄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가장 기대를 하지 않았던 7,8,9번 타자가 줄줄이 홈런을 날린 격이었죠. 성적이 좋은 선수에게 더 배팅을 했고, 정책은 수출 중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무언가 답을 하나 찾아낸 거죠.
물론 이 시기에 쌓은 이 실적은 박정희의 공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철강 산업이나 단판, 합판 공업은 이승만 정권이 수입대체 공업화 노선을 채택하여 꾸준히 경험치를 쌓아왔고, 미국이 남베트남에 쇼미더머니를 후려갈기며 돈을 때려붓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수입 대체라는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유연하게 잘 되는 녀석을 찾아보고 거기에 하드 배팅을 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몇 억불 수출이니 뭐니 하는게 뉴스에 오르내렸습니다.
박정희는 이후 수출 주도전략을 자신의 공이자 대표적 정책으로 내걸긴 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 하면 수출, 공업화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됩니다. 허나 이런 수출 주도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박정희는 수많은 디노미네이션과 과오투자 등으로 당시 경제를 뒤흔들었습니다.
물론, 미국이 목표로 했고 이승만과 장면이 매달렸던 원조 물자를 통해 수입 대체를 할 수 있는 자급 경제 달성 역시 옳은 답은 아니었지요.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은 군사정부의 초기 인력 풀이 충분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승만과 장면 정부에서 시행했던 정책이 그리 좋은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핵심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것은 당시 박정희 정부가 보여준 경제에 대한 대처라고 봅니다. 한 가지 목표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행착오 속에서도 성과를 보여주었던 수출 중심 산업으로 유연하게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고, 이를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의 정책 수행이 100% 옳다고는 절대 단언할 수 없습니다. 지독하리만큼 깊었던 정경유착의 굴레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멀쩡한 기업들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그가 집권 초기에 보여줬던 유연함이라는 면은 분명 그의 성과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뚤게 보면 군대식으로 빨리 빨리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요.
뭐 하나 끝내지도 않고 새로 글타래 뽑는 이 짓거리는 참 그만둬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일본 원조가 왜 있어야 했는지라던가, IMF 전후 이야기, YS의 대참사 등을 소소하게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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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다큐에서, 미국 정부가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남한의 경제를 발전시키기로 하고 수출을 증대시키는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한국에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개입을 노출시키지 않아서 수출 성과가 단지 박정희의 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 흥미진진한 내용이 기대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많지만 사실 '별 생각 없었다'가 의외로 유력합니다. 따로 정리하려 했는데 발제 감사합니다.
무려 세 명이 박정희를 재조명하고 있다니. 그래도 역시 거물은 거물인가 봅니다..ㅎㅎ 저도 박정희가 가졌던 유연성 측면에선 동의할 수 밖에 없네요. 많은 분들께서 언급하셨듯 그가 100% 무지했더라면 어찌됐든 성장은 할 수 없었을테니 말이죠. 오늘도 역시 믿고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실 박정희고 전두환이고 리더가 띨빵해도 주변에 머리 좋은 사람 하나 끼워놓고 신임을 주면 잘 한다는 이른바 '멍게'리더형의 성공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_-)
박정희의 경제정책에 공이 없다고 볼 수 없지만, 이전 정부의 경제정책을 자신의 정책처럼 과시하는 형태는 잘 못 된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이러면 외국인들이 카피 안 하겠죠.
과시...라기보다 시체의 산을 딛고 겨우겨우 과실을 따먹은거라 봐야하죠. 그나마도 박정희가 또 시체 산을 만들어둔걸 전두환 노태우가 따먹었지만(...
어릴적 학교 교실의 액자가 생각이 나네요. 그저 새마을운동과 못사는 나라를 잘살게 했다는 어른들의 말만 들고 흐려진 기억이었는데 이리 짚어주시네요.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이런 글이 좌파라고 비판받는다면 그 분은 여전히 쌍팔년도의 오래된 생각을 아직도 머리에서 지우지 못하신 정신이 늙은 사람일 뿐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어요. 좌우 논리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실증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박정희 라는 인물 정말 우리 근대사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인물이죠. 그와 한강의 기적간의 상관관계 속에서 말이죠.
사실 한강의 기적은 70년대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옳습니다. 박정희가 열심히 65년까지 삽질하다 노선을 바꾼 것은 원조를 미국에서 일본으로 바꾸고 욕을 드립다 처먹은거... -_-
결국 경제 정책도 코인 차트처럼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원료별 제품 떡상! 욧샤! (...)
모든게 그렇지요. 그래서 많은 시장주의자들은 정부의 개입 자체를 반대합니다....만
전쟁으로 다 줄초상난 집안에선 일단 정부가 뭐라도 해야 시장을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많은 생각을 들게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갈 길이 멉니다. 부끄럽네요.
하지만 지금은 IMF보다 더 힘들다고 하던데 ㅠㅜ 언제쯤 경기가 좋아질까요?
이건 전 세계적 현상입니다. 미국놈들이 에츄 하면 전 세계가 오들오들거리죠-_-;
다음 포스팅이 기대되어요.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면 속 뒤집어지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