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워킹 데드 해방일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시몬 스톨조프
1990년생,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세계적인 디자인 및 혁신 컨설팅 그룹 IDEO의 디자인 리드로 일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퇴사욕구와 인정욕구 사이에서 좀비화한 요즘 직장인을 위한 일 철학"
당신은 뭘 하는 사람입니까.
일을 빼놓고는 스스로를 설명하기 난감해진 시대,
삶의 중심에서 일을 끄집어내는 법.
저자는 노동 문화와 관련된 최신 경향을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일 생활을 제안하는 글을 쓰며,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설계하는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이 그의 클라이언트다.
오늘날 직업이 종교의 역할을 대체하는 경향을 가리켜 '워키즘Workism'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저자는 일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깨닫고 자신보다 앞서 워키즘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이 책은 전직 구글엔지니어에서 미슐랭 스타 셰프, 지친 교사, 알래스카의 카약 가이드 등 3년 동안 100명 이상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산이라는 착각에 관하여
직업이 삶의 바탕이자 핵심이라는 착각에 관하여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착각에 관하여
나의 가치가 실적으로 결정된다는 착각에 관하여
친밀할수록 좋은 직장이라는 착각에 관하여
오래 일하는 만큼 일을 잘하게 된다는 착각에 관하여
사내 복지는 무조건 좋다는 착각에 관하여
위로 올라가야만 성공이라는 착각에 관하여
일과 조금 멀어져도 괜찮다는 진실에 관하여
비슷한 내용일지라도 어떻게 표현하고 스토리를 입히느냐에 따라 그 컨텐츠는 달라지는 법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직장인 하나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부분이 인상에 남는다.
나의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갖고 있는 직책 및 내가 하는 일은 나의 정체성 중 하나이다.
나는 아빠이고, 남편이고, 아들이고, 책을 읽는 사람이고, 운동을 하는 사람이고, 무슨 무슨 취미가 되었든 특기가 되었든 그것 또한 나의 정체성들 중 하나이다.
직장인이라는 정체성 하나만을 나의 정체성으로 정의하게되면, 직장을 떠났을 때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
우리가 더 적게 일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어쩌다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나.
우리는 살면서 온갖 활동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누군지가 '돈을 어떻게 버는지'로 결정된다.
생계가 삶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점점 더 국제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바쁘게 일하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성행하고 있다.
일 문화와 관리 체계는 빅맥과 리바이스 청바지만큼이나 대표적인 미국의 문화 수출품이다.
화이트칼라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직업이 종교적 정체성과 비슷해졌다.
그들에게 직업은 급여와 더불어 삶의 의미, 공동체, 나아가 목적의식까지 부여한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 신앙에서 의미를 찾듯이 일에서 의미를 찾는다.
지난 20세기 동안 일은 하기 싫은 짓에서 하나의 지위로 높아지더니, 자기 실현의 수단으로까지 진화했다
일이 늘 충만감을 안겨주리라는 기대가 오히려 고통을 불러올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일에 대한 '집착적인 열정'은 높은 비율로 번아웃과 일 관련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 아주 높은 기대감이 실망의 운료가 된다는 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일이 자기 실현의 길(꾸준히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충족감을 주는 수단)이라고 기대하면, 그보다 덜한 상태가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한테 있는 최상의 것을 일에 줘버리고, 그 나머지를 가정에 갖고 온다.
에너지를 몽땅 직업적 삶에 쏟아버리면, 우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른 정체성들(이를테면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 이웃, 친구, 시민, 예술가, 여행자 같은)은 성장을 위한 영양소를 얻을 수 없다.
(...) 의미는 우리한테 부여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여느 창조 행위와 마찬가지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일이 아닌 활동에 투자할 시간과 실제로 그러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모두가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쓰거나 전문직을 선택할 능력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거는 기대만큼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다.
일을 삶 위에 두기보다는 삶을 일 위에 두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간단한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바로 여러분이 하는 일이 여러분 자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목적의식, 정체성을 가져다주는 바탕이 되었던 종교 기관이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하지만 종교 기관이 쇠퇴하더라도 소속감과 목적의식, 정체성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는 그대로이므로 사람들은 이를 채워줄 다른 곳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에 교회보다 낫다고 여기게 된 곳이 바로 사무실이다.
일에 자신을 바친다는 것은 인생의 다른 의미 있는 면들을 잃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직업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주지 않는다.
만약 직업이 한 인간의 정체성 그 자체라면, 직업을 잃게 될 경우 무엇이 남겠는가.
내겐 꿈의 직업이 없다. 나는 노동을 꿈꾸지 않는다. - 케이시 해밀턴
오늘날 자신의 열정을 따라야 한다는 이상은 자명해 보일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았다.
'의미있는 일'이란 표현이 주류를 언어가 된 것은 고작 지난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을 '열정'이라는 언어로 덮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을 그 자체로서 여기지 못하게 된다.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정체성의 달걀들을 직업이라는 하나의 바구니에 전부 담아버리면 위험하다.
사람들은 늘 일만 하기 때문에 일하지 않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동시에 일하지 않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일만 한다.
우리는 주말을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대한다.
'재충전'과 같이 우리가 휴식과 관련해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에서조차도 쉼은 일로 복귀하기 위한 사전준비라고 가정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일하지 않을 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 이외의 것을 꼭 해야 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룻록 더 적게 일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더 많이 벌면 더 적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과로는 단지 일한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간들의 강도와 예측불가능성의 문제다.
저임금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일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다.
일을 적게 하는 까닭이 꼭 더 나은 노동자가 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더 적게 일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협력의 연결 지점일 수 있지만, 어쩌면 기업이라는 극장의 무대일 수도 있다.
열중해서 일하기 위한 최상의 장소일 수도 있지만, 직원들이 관리자들에게 자신이 성실하게 일하는 중임을 보여주는 장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과 개인 생활을 구분하는 것에 있어서 모든 노동자가 똑같은 선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의 노동자가 존재한다.
하나는 일과 개인 생활의 경계가 흐릿한 걸 개의치 않는 '통합자'이고, 다른 하나는 일과 개인 생활을 분리하려는 욕구가 강한 '분리자'이다.
(...) 일-생활의 어떤 배합이 최상일지 여러분 한 명 한 명에게 정확하게 알려줄 수 없다.
다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일과 건강한 관계 맺기는 그 관계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스스로 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대신 여러분의 고용주가 그 관계를 마음대로 정해버릴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리켜 성공했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하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받아들이길 주저한다.
'일이 우리 삶에 어떤 역학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보편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와 일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그러길 바라서도 안 된다.
일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중시하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생산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한, 더 많이 생산하려는 욕구는 더 적게 일하려는 나의 뜻을 늘 짓밟을 것이다.
일자리는 중요하지만, 생계 수단일 뿐 인생 자체는 아니다.
'그 정도면 괜찮은' 직업을 갖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고민할 때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일하러 가서, 돈을 벌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 결국 요점을 말하자면, 직업은 경제적 계약이다.
직업은 노동과 돈을 서로 교환하는 일이다.
그걸 똑똑히 이해할수록 더 좋다.
우리는 직업이란 단지 돈벌이가 아니라 소명이자 천직이며 열정이어야 한다고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회사는 일찌감치 일을 거래로 취급해왔다.
회사의 가치를 키워주는 직원은 고용하고, 그렇지 않은 직원은 해고한다.
이를 망각하면 착취당하기 쉬워진다.
나는 우리가 직업에 기대하는 의미를 집단적으로 재설정하기를 지지한다.
배우자가 우리의 사회적, 정서적, 지적 요구를 전부 충족시켜주길 기대하기가 비현실적이듯이, 직업이 자기 실현의 유일한 방법이길 기대하기도 비현실적이다.
그건 우리의 직업이 짊어지기로 되어 있는 짐이 아니다.
일과 가장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일하지 않고 있을 때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에 관한 종래의 기대에 저항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의 많은 요소들(의료보험 제도에서부터 경력 공백 기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이 가세하는 바람에, 일을 후순위에 두기가 대단히 어렵다.
더 적은 시간 일하거나, 안식 기간을 갖거나, 세계여행을 할 처지가 못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책에서 딱 한가지를 얻어간다면, 나는 그것이 '일을 후순위에 두면, 삶이 선순위가 된다'라는 교훈이면 좋겠다.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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