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6(토) 거란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당나라가 멸망한 후에
936년에 거란의 도움을 얻어서
산서성 태원에서 나라(후진)를 세웠던 석경당은
유명한 개봉시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죽고 왕위다툼이 벌어졌는데
거란의 허락을 받지 않은 황제가 즉위했다.
곧바로 거란이 남하해서 후진의 새 황제를 응징했다.
그러자
옹황제翁皇帝께서 옛정을 돌이켜 조금이나마 노여움을 푸시고,
신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어 선조의 제사를 끊지 않으신다면,
온 집안이 다시 태어난 듯한 은덕을 입고,
일문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마음에 품을 것입니다.
비록 바라마지 않으나 감히 바라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용서를 빌고 만나기를 호소했다.
그러나 거란의 군주가 외면했는데
그에 대한 기록이 아래에 있다.
황제는 거란契丹의 군주가 곧 도착할 것이라 여겨
태후太后와 함께 나가 맞이하려 했다.
장언택張彦澤이 먼저 표를 올려,
거란契丹 군주의 지시를 받들어 보고하기를:
"이전에 네가 상국을 조회하는 것을 허락하려 했으나,
신료들이 '어찌 두 천자가 길에서 서로 만날 수 있겠는가!'라고 아뢰었다.
이제 네가 차고 있는 칼을 하사하니, 그대의 마음을 위로하라."
거란이 10세기 초에 황하남쪽 개봉시까지 점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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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gr.with (74) 6 day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