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1(화)역사단편311. 고대사의 이해를 위한 기초4 천문지리(1)
동북아시아의 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상식
그 네 번째 주제는 '천문天文'이다.
구글 검색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천문지도들이다.
동양철학이나 자연과학적 관점에서의 '천문'과
역사에서의 '천문'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먼저 밝혀둔다.
최초에 어떤 천재가 별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한이래
중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활용된 영역은
'권력'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확장되어 세계관으로 연결된거 같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법이니
최초에 대한 기록을 살펴본다.
"제왕세기에 이르기를,
'천지가 열리기 전에는 경계의 제도가 없었다.
삼황三皇이 숭상받던 시기였다.
신농神農이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며,
그 땅은 동서로 90만 리, 남북으로 85만 리이다.
<출처: 후한서, 권109 군국1>
기록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당시의 중국인이나,
이 책을 읽었을 1천년후의 미련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믿었겠지만
지나인들의 전설속 조상인 신농시절에 영토가
동서로 90만리는 대략 360,000km
남북으로 85만 리는 대략 340,000km라는 이야기다.
지구둘레가, 적도기준으로 약 40, 075k라고 하니
이 책이 쓰여진 3~5세기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어떠했으며
그들이 쓴 역사책에 기록된 '거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능히 추정할 수 있다.
후한서에 기록된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또 있다.
처음에는 경계가 없었다.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권력이라는 것이 실제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소위 경계라는 것이 필요해졌다.
눈 앞에 보이는 곳과
잠깐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정의하기 쉽지만
멀리 떨어진 곳을 정의하려면
뭔가 기준이 있어야 했다.
거기서 별자리가 등장한다.
우순시대에 세상을 9개로 나누었다는데
그 9곳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했고
춘추시대 이후에 있었던 여러 나라들의 위치도 알아야했다.
오늘날과 같은 지도책이 없던 시절에
가장 믿을만한 것은 역시 큰 변화가 없는 하늘의 별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순환하는 별
관찰가능한 하늘은 동서남북으로 그 끝이 있고 원형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세계관은 '분야설分野說'이라는 형태로 구체화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늘에 있는 별자리의 위치와
자신들의 행정구역을 연결시켰다.
결과물은 아래와 같다.
고대 지나인들이 생각하는 자기나라다.
중원지역을 중심으로
그 바깥에 위치한 지역들을
별자리와 12지에 결합시켜 사방의 행정구역을 분류했다.
그 중 남쪽은 오,월이었고
동쪽은 노나라, 제나라였다.
그리고, 가장 북쪽이 말썽많은 '유주幽州'
즉,
'두斗가 해亥에 위치한 것을 지금의 연燕 분야라 하였다."
두斗는 북두칠성을 의미하며, 해亥는 12지의 12번째다.
북쪽의 경계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 땅이자
우순시대 이래의 '유주幽州'땅
중국인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지역
바로 북방의 경계다.
유주가 북쪽 경계이니
그 상징인 '연燕'나라가 있어야 할 위치가 결정된다.
'연燕'나라는 '유주幽州'라고 불린다.
그것이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으로는
연나라의 수도는 '계薊'이며,
'현재의 북경'근처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우순시대이래로 현재의 북경근처가 대대손손
지나족의 땅이었다는 주장이다.
그 주장을 토대로,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을 공격하여 1천리니 2천리니 땅을 빼앗았고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점령하여 4군을 설치한곳이 한반도라는 것이며
요서와 요동이 현재의 랴오닝성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가장 북쪽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북쪽은 어디인가? 휴전선이다.
조선시대 가장 북쪽은 어디인가? 기록대로라면, 압록강-두만강이다
고려시대 가장 북쪽은 어디인가? 모르겠다.
남북시대 가장북쪽은 어디인가? 하얼빈 어디쯤이다
삼국시대 가장서쪽은 어디인가? 모르겠다.
왜 갑자기 가장 서쪽인가?
고구려의 가장서쪽이 당나라의 북쪽 끝이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영토가 쪼그라든 역사
패싸움에만 익숙하지 절대로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는 역사
그런 의식에 오염된 조선인의 세계관으로는
어쩌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대사의 단면이다.
<다음편 >
지나인들의 세계관에 대비한 조선인의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