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0(월)역사단편310. 고대사의 이해를 위한 기초3, '좌우左右'
동북아시아의 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상식
그 세 번째 주제는 '좌左' 와 '우右'다.
왜 이것이 주제가 될까?
좌左는 왼쪽
우右는 오른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되면 당연히 지명에 관심이 생기고
지명에 관심이 생기면, 지도를 찾아야한다.
지도를 배제한 역사이해는 불가능하다.
동서남북, 지리적 위치를 모르고 어떻게 역사기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제 본격적으로 '좌, 우'를 살펴본다.
기록을 본다.
흉노의 좌현왕左賢王은 동부, 우현왕右賢王은 서부를 관장했다.
사전을 보면
북쪽을 향하였을 때의 서쪽과 같은 쪽
이라고 설명해놨다.
맞는 말이지만, 근본을 모르는 설명이다.
좌와 우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천자는 남쪽을 향한다.'
북쪽을 향해서 볼때 서쪽이 아니라
천자가 남쪽을 향하기 때문에
천자의 왼쪽(左)이 동쪽이 되고,
천자의 오른쪽(右)은 서쪽이 되는 것이다.
사전의 설명은 억지로 꿰맞춘 것에 불과하다.
주변에 학생이 있다면 근본을 알려주시길 바란다.
이것이 사실일까?
지명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산서성 대동시의 서쪽에 두 개의 방어시설이 있는데
그 명칭이 '우위'와 '좌위'다
막연한 추측과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의 상세한 지도를 보면 아래와 같다.
'우위인 우옥현右玉县'과 '좌위인 좌운현左云县'이다.
지명의 상세한 유래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 위치가 그림과 같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수 많은 예가 있지만 하나를 더 살펴본다.
중국의 전한(=서한)시절에 수도는 '장안長安'이었다.
수도를 둘러싼 방어구역이 세 곳 있었는데 '三輔 (3보)'라고 불렀다.
'三輔 (3보)'는 京兆尹(경조윤)、左馮翊(좌풍익)、右扶風(우부풍)이다.
아무생각없이 역사기록을 읽었다면,
경조윤은 모르겠지만,
좌풍익은 왼쪽(=서쪽),
우부풍은 오른쪽(=동쪽)이라고 자연스럽게 추정할 것이다.
지도를 보자.
중앙아래쪽에 수도인 '장안長安'이 표시되어있고
우측에 경조윤,
북동에 左馮翊(좌풍익)
서쪽에 右扶風(우부풍)이 있다.
고정된 지명으로서는
'좌우左右'의 방위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역사기록을 읽을때,
어디로 이동했다는 내용과 연결이 되면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좌左' 는 동쪽이고,
'우右'는 서쪽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