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115)

(1) 적의 전투서열(제2장 낙동강 남부 지구 작전 참조)

(二) 아군의 정황

적이 호남 방면을 예정보다 속히 석권함에 따라 8월 10일경 낙동강 교두보에 대한 제1차로 강력한 압력은 시도되었다. 이에 앞서 7월 중순 국련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이미 적의 심장부를 강타한 다음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계획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군 수뇌부는 이에 반대하여 당시의 코린스 육군총참모장, 샤먼 해군작전부장(해군총참모장 동직위) 및 반덴버크 공군총참모장의 3장군은 동경으로 급거 날아와 예의충천(銳意衝天)한 인민군의 후방을 충돌(衝突)함은 오히려 중공군의 참가를 유발하게 함에 불과하다고 당황히 중지시켰던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중공군 참전에 대한 의구(疑懼)가 절정에 달하였다. 한편, 모스크바의 10일 방송은 서울에서만 10만의 장정이 자진해서 의용군에 출진했다는 위협적인 보도를 하여 더욱 압력을 가했으며, 김일성도 8.15까지 부산을 점령치 못하면 군령을 받을 것이라고 부하를 위협하였다.

따라서 8월 하순에 들어서면서 대구방어전은 실제에 있어서 피아에 결정적인 전국에 돌입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극동공군의 초요새기는 총출동하여 제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99대의 T29는 850,000㎏의 폭탄으로 적의 전면적인 공세와 보급로를 마비케 하여 하루아침에 오유화(烏有化)시켰으며 이 전술적 폭탄에 이어 F35, F80 등의 전투기들은 호굴(壕窟) 속의 적까지 기총사격하여 아 지상군으로 하여금 전선 정리를 완료하게 하였다. 이로써 아군은 강력한 방어전 또는 대담한 유도작전으로써 적에 소모전을 강요하였고 작전의 주도권을 적으로부터 탈취, 총공격 작전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1) 아군 및 군련군의 전투서열

아군(제3장 낙동강 남부지구 작전 참조)

국련군

미 제1기갑사단 사단장 육군소장 호바트 R. 가이

제5기갑연대 연대장

제7기갑연대 연대장

제8기갑연대 연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