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23 조국과 대중의 타락, 한국의 비관적 미래
이번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조국의 등장이다. 조국의 등장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조국 현상을 통해 대중이 타락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기득권 세력의 타락은 흔히 있어왔다. 기득권 세력이 타락하면 대중이 이를 바로 잡았다. 그런데 대중이 타락해버리면 개혁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한국은 그런 상황에 빠져 들고 있는 것이다. 한번 이런 방향으로 접어들면 다시 바로잡기가 매우 어렵다.
대중의 타락은 현재 한국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이슈가 무엇인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조국을 지지한 대중들은 윤석열을 단죄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이 윤석열을 단죄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많았다. 그 중에서 유독 조국을 선택한 이유 그 자체가 대중이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가족이 지나친 탄압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안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일반인이 최고급 연예인을 걱정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SKY 대학에 들어간 사람치고 조국처럼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하면서 조국을 옹호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대중이 타락했다고 진단한다. 조국을 지지할 수는 있다. 만일 조국이 나름대로 의미있는 정책을 내놓았다면 충분히 지지할 수도 있다. 범죄자라고 해서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은 언감 생심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SKY 대학에 부정입학한 재력가인 조국이 저지른 편법을 눈감아 버린 것이다. 순전히 그가 윤석열로부터 너무 많은 수사를 받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시골 구석에 사는 자신들의 자식들은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대학에 부정입학했다면 당연히 불길같은 분노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 분노야 말로 대중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윤석열이 밉다고 하더라도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못하는 대중은 역사적 생명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선택적 분노는 분노가 아니다. 윤석열에게 분노했으면, 이재명에게도 분노해야 하고 조국에게도 분노해야 하는 것이다. 선택적인 분노는 대중이 완전하게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선택적 분노와 타락은 문재인 정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은 진보정치세력의 기반을 붕괴시킨 장본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의 타락은 호남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제는 세대로 확산되었다. 전반적으로 40대와 50대가 타락했으며 이들은 한총련 세대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노년층과 청년층의 정치적 지향이 달랐다. 앞으로는 20-30대, 40-50대, 60대 이상으로 정치적 지향이 나뉠 것이다.
한국사회가 비관적인 것은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40대와 50대가 타락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타락한 세대들은 한국의 미래를 비관하게 만드는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20대와 30대인데 그들도 40대-50대의 몰상식함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은 있으나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대로 잡아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학창시절부터 오로지 취직을 위해 목숨바쳐 보내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지금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은 60대 이상의 잘못이 아닌가 한다. 현재 60대 이상은 한국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를 살았다. 대충 공부해도 취업할 걱정이 없었고 좋은 시기를 보냈다. 좋은 시기를 살다보니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준비는 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들 처럼 살면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아래 세대들도 각자 도생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조국 현상 그 뒤의 이면을 보면 한국은 더 이상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다면 20대 30대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20대 30대는 점점 한계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고 이들의 분노는 축적되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청년처럼 식물이 되고 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