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일기 날씨 : 맑은 듯
감자의 일기
날씨 : 맑은 듯
오늘은 땅 속에서도 기분이 좋은 날이다. 왜냐하면, 땅 위로 스며드는 빛이 평소보다 더 따뜻하고 환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은 듯하다. 정말로 맑은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감자니까. 땅 속에 묻혀 있는 내가 땅 위의 세상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빛의 온기와 흙의 냄새로 날씨를 느낄 수 있다. 오늘은 분명히 맑은 날일 거야. 그렇게 믿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내 옆에 있는 당근 형에게 물었다.
“당근 형, 오늘 날씨 어때요? 맑은가요?”
당근 형은 항상 땅 위를 쳐다보는 습관이 있어서 날씨에 대해 잘 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대답이 느렸다.
“음… 맑은 듯.”
“맑은 듯? 정확히는요?”
“글쎄, 구름이 좀 끼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햇빛은 확실히 느껴져.”
당근 형의 대답은 항상 애매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의 날씨가 맑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맑은 날은 기분이 좋아지니까.
점심 시간의 고민
점심이 되자, 땅 속 동물들이 하나둘씩 지나가기 시작했다. 지렁이 아저씨가 내 옆을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감자야, 오늘 기분 어때?”
“네, 아저씨! 날씨가 맑아서 기분이 좋아요.”
“흠, 날씨가 맑은 건 좋지만, 너무 맑으면 흙이 마르니까 조심해야 해.”
지렁이 아저씨는 항상 걱정이 많다. 하지만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너무 맑은 날이 계속되면 흙이 마르고, 나중에 비가 오면 흙이 굳어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지니까.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맑은 날씨가 좋긴 하지만, 너무 맑은 것도 문제인가?
그때, 갑자기 땅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땅 속 동물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누가 땅 위에서 뭘 떨어뜨렸나 봐.”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땅 위의 세상은 항상 신비롭고 조금은 무섭다. 나는 땅 속에 안전하게 묻혀 있지만, 가끔은 땅 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감자는 땅 속에서 자라는 운명이니까.
오후의 작은 모험
오후가 되자, 땅 속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땅 위에 구름이 끼었나 보다. 당근 형이 다시 말했다.
“감자야, 날씨가 변하는 것 같아.”
“변한다고요? 아까는 맑은 듯하다고 하셨잖아요.”
“날씨는 변하는 법이야. 땅 위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날씨가 변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맑은 날씨가 좋은 것만은 아닌가? 그때, 갑자기 땅 속에 물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오는 건가? 나는 당근 형을 돌아보며 물었다.
“비가 오는 건가요?”
“아니, 이건 단지 이슬비일 뿐이야. 땅 위의 세상은 이렇게 작은 변화들로 가득해.”
이슬비는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땅 속에 스며드는 물방울들이 나를 적시고, 흙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변화를 즐기기로 했다. 날씨가 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저녁의 평화
저녁이 되자, 땅 속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슬비는 그쳤고, 땅 위로 스며드는 빛도 사라졌다. 나는 당근 형과 함께 조용히 앉아 하루를 돌아보았다.
“오늘 하루 어땠어, 감자야?”
“좋았어요. 맑은 날씨도 좋고, 이슬비도 좋았어요. 땅 위의 세상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그렇지. 땅 위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해. 하지만 우리는 땅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나는 당근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땅 속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다. 여기는 안전하고, 평화롭고, 따뜻하니까.
밤의 꿈
잠들기 전, 나는 오늘의 날씨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맑은 듯했던 아침, 이슬비가 내린 오후, 그리고 조용한 저녁. 날씨는 변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나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오늘도 땅 속에서 행복하게 잠들었다. 내일의 날씨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맑은 듯, 흐린 듯, 비가 오든 말든, 나는 나대로의 하루를 보낼 것이다.
- 감자의 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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