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오면

in #upvulast month

9월이 오면

구월이 오면 김장을 준비하는 농군의 발길이 잰다. 들녘은 벌써 수확의 기쁨으로 분주하고, 마을 어귀마다 곡식과 채소를 실은 트럭이 오가며 계절의 무게를 전한다. 배추밭에서는 연둣빛 잎사귀가 포기를 이루고, 무밭에는 알차게 살이 오른 무가 땅속에서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한다.

이맘때 농부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이른 새벽,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분명한 리듬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노동의 걸음이 아니라, 한 해 농사의 결실을 확인하고 가족의 겨울을 대비하는 마음의 발걸음이다.

구월은 그래서 풍요롭고도 바쁘다. 논에서는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고, 과수원에는 사과와 배가 달콤한 향기를 퍼뜨린다. 마을마다 장독대 옆에 김장독 자리가 마련되고, 올해도 풍족하게 담가 가족과 이웃의 밥상을 지켜내리라는 다짐이 생겨난다.

돌이켜보면 구월은 단순히 계절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삶의 뿌리를 다져주는 시간이다. 땀방울이 곡식이 되고, 곡식이 다시 사람들의 웃음이 되는 순간. 그 한가운데서 농군의 발길은 잰 걸음이 되지만, 그 걸음이 모여 우리 모두의 겨울을 따뜻하게 지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