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식당]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공기 식당
「 공 기 식 당 」
| Japanese Restaurant |
통인 시장을 찾았던 날.
상인들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시장통이었는데 옆으로 난 샛길에 들어서니 갑자기 한적한 골목길이 나왔다.
그 골목길 한 구석에 자리잡은 식당 하나.
공기 식당.
있는 듯, 없는 듯.
작고 무심한 모양새가 그 이름에 무척이나 걸맞는 식당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작기도 하고, 사람들이 다 가게 앞에 앉아 있어서 식당인 줄 몰랐다. 커튼이 내려져 있어서 내부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잘 보니 문 앞 빠알간 입간판에 오늘의 메뉴가 적혀 있었다. 버터 치킨 카레와 어니언 포크 카레.
단촐한 메뉴인데도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사람들이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이 작아 과연 우리까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온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검색해보니 '서촌 맛집’이라는 해쉬태그를 달고 여기 저기 얼굴을 내민 듯 했다.
오렌지 색 조명이 켜지고, 닫혀있던 커튼이 열리며 빛이 새어나왔다. 큰 유리창으로 보이는 식당 내부 풍경의 변화는 마치 무대 위의 막이 오르고 연극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줄 맨 끝에 있던 우리에게도 자리는 허락되었고, 작은 장난감 집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공기 식당에 입장했다.
밖에서 보았을 때에는 식당 안이 무대같았는데, 식당 안에서 보니 다시 바깥풍경이 하나의 장면으로 보인다. 정사각형 유리창이 주는 프레임의 느낌이 독특했다.
식당 안에는 짙은 갈색의 작은 나무 테이블이 대여섯 개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볼 수 있는 크기의 테이블 4개, 4인 가족이 겨우 앉을만한 테이블이 하나, 벽을 보고 앉아야 하는 길쭉한 테이블이 입구 옆에 한 개 있었다.
특이한 것은 문 옆에 행거가 있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주인의 옷가지와 가방인 것 같았다. 보통은 식당 내부에 일하는 분들의 물건도 보관하고, 잠시 쉬기도 하는 공간이 있을테지만 이 곳은 워낙에 좁은 한 칸 짜리 식당이라 저렇게 두었나보다 짐작했다.
쿨내 풀풀 풍기던 경고.
정. 숙.
좁은 공간인만큼 조금만 소리가 커져도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될 터였다. 다행히 저 경고는 우리가 식사를 마치기 거의 직전까지 잘 지켜졌다.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들어온 여대생쯤으로 보이는 네 명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한 테이블에서 나오는 소리가 커지니 그 옆테이블의 사람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되어 순식간에 공기 식당 안은 시장통이 되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식사를 마치게 되어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우리 자리 바로 위에 걸려있던 코끼리 커튼. 부엌을 가려주고, 경계를 지어주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부엌 바로 옆에 붙어있는 테이블이었다. 수저통 바로 옆에 일하는 두 분의 칫솔통이 보여 또 한 번 이 식당에 숨겨진 공간같은 건 없구나 싶었다.
사이좋게 놓여 있는 칫솔통.
그리고 식당에서 판매하는 커리 키링.
내가 억지로 부엌을 비집고 들어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그냥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풍경.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오픈 키친.
너무나 가깝고, 적나라하게 보여서 일부러 보는 게 아닌데도 뭔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분들도 익숙한지 저 안에서 스윽하고 메뉴판을 주기도 하고, 큰 신경은 쓰지 않는 듯 했다.
조촐한 부엌에 걸맞는 소박한 메뉴판.
매일 메뉴가 조금씩 다른 듯 하다. 뭔가 오늘 아침 급히 적어온 것 같이 보인다.버터치킨 카레와 어니언 포크 카레 모두 만원. 사이드 메뉴였던 치킨 난반은 4천원이었다.
세 가지 메뉴를 모두 주문한 뒤 난 가장 먼저 식기류를 살폈다. 미식가가 아닌 나에게는 사실 음식의 맛보다는 청결함이나 식당의 분위기가 더 중요한 편이다. 공기식당의 편안함과 함께 나를 기쁘게 했던 한 가지는 바로 깨끗함이었다. 세제 냄새 없이 반짝거리는 스푼. 물비린내 없이 투명하게 비치는 유리컵.
10분쯤 기다렸을까. 내 메뉴와 사이드 메뉴가 먼저 나왔다.
버터 치킨 카레와 치킨 난반.
버터 치킨 카레는 닭다리살과 캐슈넛 퓨레, 토마토, 버터를 넣어 만든 북인도식 카레라고 한다. 반숙 달걀 프라이가 밥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치킨 난반은 닭다리살 튀김에 타르타르 소스, 난반즈 소스를 함께 올려 나왔다. 일본 미야자키 현의 명물 요리라고 한다.
촉촉한 닭튀김을 짭쪼롬한 소스에 푹 찍어 먹으니 맥주가 절로 생각났다. 바삭한 한국 치킨과는 달리 치킨도, 소스도 느끼하기 직전까지의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느껴졌다. 많이는 먹지 못할 듯 하여 사이드 메뉴로 딱이었다. 식사를 마친 햇님군은 카레보다도 치킨 난반을 더욱 마음에 들어했다.
다음으로는 햇님군이 주문했던 어니언 포크 카레. 보기에는 나의 카레와 크게 다를 점이 없어 보인다. 역시 밥 위에는 서니 사이드 업 이불이 덮여 있다.
카레를 주며 식당 주인은 한 번에 다 비비지 말고, 조금씩 비벼 먹으라고 했다. 메뉴판에도 또 적혀 있는 걸 보면 꼭 지켜야 할 것만 같아 나는 말 잘 듣는 착한 손님이 되어 조금씩 카레를 비벼 먹었다.
말 안 듣는 손님, 햇님군은 카레를 사정없이 부었다…
카레가 거기서 거기지 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향신료의 향과 중간 중간에 씹히는 고기. 계란의 고소함이 나쁘지 않았다. 지금보니 밥을 담았던 접시가 저렇게 예뻤구나.
‘나쁘지 않았다’ 라고 해놓고 너무 싹삭 먹어서 창피하다.
'맛있었다’로 수정요망. :o
잘 보면 접시 위치가 또 바껴 있음. 햇님군이 내가 남긴 카레를 또 다 먹었다. 내가 자란 우리집은 다섯 가족이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지 못했다. 언제나 몇 조각이 남았었다. 우리 가족이 소식하는 편이라는 생각은 가끔 했지만 대식하는 햇님군을 만나고 나서는 완전히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햇님군과 함께한 지 7년.
이제는 나 혼자서도 교촌 소이 살살 한 마리 정도는 먹을만큼 양이 늘었다…..
햇님군을 소식으로 바꾸는 것보다 내가 대식가가 되는 게 훨씬 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밤이 된 듯 어두웠다. 손님은 끊임없이 채워졌고, 그들의 소란스러움이 불편해질 때 쯤 적당한 타이밍에 문을 나섰다. 문으로 버터향 섞인 카레 향기가 따뜻한 조명과 함께 흘러나왔다. 집에서 만든 카레 한 공기를 잘 먹고 나온 것 같이 배가 불렀고, 발과 마음은 공기처럼 가볍고 따뜻했다. 이래서 공기 식당인가.
맛집정보
공기식당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필운대로6길 20-18
이 글은 Tasteem 컨테스트
내가 소개하는 이번 주 맛집에 참가한 글입니다.
#tasteem-curation
안녕하세요. 테이스팀 서포터 jinuking입니다^^!
@songvely님의 퀄리티 높은
[[서촌 식당]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공기 식당]
포스팅에 감동받아, 테이스팀에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앞으로도 멋진 활동 기대합니다!안녕하세요 muksteem 전국 맛지도 등록 알림봇입니다. 본문에 있는 주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필운대로6길 20-18]로 본 글이 먹스팀 전국 맛집 지도에 등록되었습니다. (혹시 주소가 틀리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확인하러가기먹스팀 맛집 지도는 https://muksteem.com에서 이용가능하며, 새롭게 업데이트 됐습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약소하지만 보팅 하고 갑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내가 소개하는 이번 주 맛집 콘테스트에 멋진 맛집을 올려 주셨네요! 테이스팀 개발진도 @songvely님의 글에서 맛집을 알아가곤 한답니다. 고마워요! 저희의 사랑을 담아, 보팅을 남기고 가요.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길 바라며!
깔끔하게 다 비웠네요~
정말 맛있게 잘 드신것 같아요~ ^^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집이 많은데...
남자 혼자 저런 집 다니기에는
아직 얼굴이 그렇게 두껍지 못해서 구경만 하고 갑니다...-ㅅ-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스팀잇을 시작하시는 친구들에게도 널리 알려주세요.
저 여기 알아요 ^.^
서촌에 재미있고 멋진 장소가 많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