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이 필때면/ 노자규

in #story6 years ago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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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아내가 생일 선물로
사다준 운동화가 지금 내 앞에 놓여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나도 모르게
35년 전 11살 때의 영사기는
늘 그렇게 상영되고 있었다

어릴 적 코찔찔이
지석이 별명은 머리가 크고 동그랗다고
보름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늘 명랑하며 밝았던 그 친구는

“밤에 노래 부르며
소리 지르고 시끄럽게 하는걸
사자성어로 표현할 사람“

선생님의 질문에
다들 어려운 한자라
마주보고 쩔쩔매고 있을 때
“아빠인가”라는 소리에
우리 반은 웃음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 지석이가
며칠 학교를 결석하고 온 뒤부터
말수는 줄어들고 있었고
고개는 늘 땅을 향해
비에 누워버린 나무잎 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체육시간이라 교실은 텅 비워있었고
당번이라 청소하며 정리를 하던 난
자기 집이 부자라고 늘 자랑하는
친구의 새로 산 운동화를 보고 있자니
샘이나 그 운동화를 몰래 감춰
골탕을 먹이려 들고 있다
친구들 소리에 놀라
그만 지석이 가방에 넣고 말았다

학교는 난리가 났고 결국 지석이는
교무실로 끌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누레진 바지에
피멍이 들어 돌아온 지석이는
가방을 챙겨 말없이 집으로 가버렸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나는
열린 가슴을 다물지 못한 채
헐떡이며 지석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문 밖 아카시아
나무밑에 숨어 지켜보고 있을 때
몸져누워있는
아픈 엄마에게 죽을 쑤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난이 깃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사라져간 후
나의 시선은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루 밑에 벗어놓은
지석이의 체온이 머문
실밥이 헤어지고 구멍이 나 있는
그 운동화에....

지석이에 대한 미안함은
지워도 따라오는 그림자 처럼
날 따라 다녔고
그 그림자를 지우고 싶어
다음날
아껴뒀던 선물 받은 운동화를
몰래 현관 앞에 올려놓고
미안함을
지우지 못한 발자국을 따라
학교에 등교한 나는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지석이의 신발부터 쳐다보고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신발을 신고 학교로 온 것이다
의아해진 나는 방과 후
아카시아 나무 밑에 숨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
내가 준 신발은
몸 저 누운 엄마 대신
리어카로 연탄을 배달하고
돌아오는 동생이 신고 있었다

비워도 지워도 돋아나는
가난 앞에
운동화 하나도 마음대로 신지 못하는
지석이의 형편에 마음이 아파진 나는
엄마를 졸라 산 운동화를 들고서
또다시
지석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운동화에
행복한 미소 한 점도 같이 놓아둔 채
돌아선 나는
따스한 햇살 사이로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녹아진 것 같았다

다음날도
교실로 들어오는 지석이의 얼굴보다는
발을 먼저 본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같은 구멍 난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온
지석이
“이번에 누가 신었나..
남자라곤 남동생뿐인데 “

궁금해진 나는 그날도 몰래
지석이네 집 앞 아카시아 나무 밑에서
축대가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바라보고 서있을 때
큰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도둑질까지 해..”
이놈 이래도 바른대로 말 안 할 거니 “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아무 말 안 하지 “

살아있음이 짐스러운 고함소리와 함께
도둑질한 운동화는 필요 없다 며
던져버리는 엄마

마당으로 내동댕이 쳐진
운동화 안에서
튕겨져 나온 빨간 카네이션에
엄마의 가슴은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
지석이는 속에서 뭉게져 버린
울음을 터트리며

“내일 모레 어버이날에
아빠 산소 가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 운동화 사주려고 같이 손잡고 가다
돌아가신 아빠에게..... “

엄마는 우는 기석이를 품에 앉은 채
해산의 몸부림처럼
미안하고....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서 오해는 풀렸지만
결국 지석이는
몰래 놓아둔 운동화 때문에
선생님과 엄마에게 혼이 난 것에
더욱 미안했진 나는
“엄마 밥 많이...
반찬도 많이,.... “

짝지는 아니었지만
점심 도시락은
마음의 눈물을 웃음으로 지우며
늘 지석이랑 함께하고 있었다

마지막 5교시를 마칠 때쯤
쏟아지는 빗소리에 다들 창가로 몰려
정문앞에 엄마의 모습을
애타게 찾는 아이들 틈에 있다
돌아온 내책상에 놓여있는
우산 하나와 쪽지

“친구야 비 오는데 이거 쓰고 가...
그리고 운동화 잘 신을게.... “

비를 맞고
걸어갈 지석이를 찾아 난 뛰었다
다행히 내리는 비를 피해
슈퍼 앞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은 지석이에게 다가가
비에 젖은 초코파이를 건네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을 세워둔 채
난 지난이야기를 묻고 있었다

“왜 난 줄 알면서도 말 안 한 거니
그때 선생님한테 말할 수 도 있었는데.... “

품어내는 한숨의 크기가 마음인 것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지석이에게
“그건 내 그림자가 더 잘하거든...”이라며
난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넌 우리 반 반장이잖아
그리고
너희 아빠는 교감 선생님이시고..... “

그 말에 들어찼던 마음자리는
썰물에 빠져나간 텅 빈 갯벌이 되어버렸다

우리반 아이들은 지석이 에게
늘 바람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달아나는 달빛을 가르며 우유배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언제부터인가 아침 일찍 일어나
지석이랑 같이
우유배달을 하고 있었고
방학 땐
지석이는 밀고 나는 끌면서
폐지도 줍고 연탄배달도 하며
깜장 묻은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작은 행복으로 웃음 짓던 우린
따사론 겨울 볕처럼
늘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밑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주운건 우정이었고
연탄을 배달한 게 아니라
사랑을 퍼 나르고 있었으리라

나는 지금 아빠의 자리에 있다

“지석이도 아빠가 되어있겠지
지석이에겐 어떤 행복이 다가와 있을까,,,“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어니
언제나 빈자리 내어주던
그 친구가 이 밤 무척 보고 싶어 진다

우리는 살면서 다들
사랑에 빚을 지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난 또 하나의 행복을 선택하고 싶다
진정한 친구를 갖는다는 건
또 하나의 인생을 가지는 거니까....

(아카시아 꽃말/우정)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Capture+_2018-09-18-22-52-57.png18-09-18-22-53-33-058_deco.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