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선생님/노자규

in #story6 years ago

내가 더 선생님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http://m.blog.naver.com/q5949a/221370125774
“내가 더” 선생님

“선생님은 돈이 없어 굶어보신 적 없죠
다른 친구들은
다내는 월사금조차 못 내는 전
학교 다닐 자격조차 없잖아요
닥달하는 학교가 쥐구멍이라면 갈게요... “

늘 우리들에게
“ 사랑할 때도 내가 더 사랑하고
이해할 때도 내가 더 이해하고
양보할 때도
내가 더 양보하고 살아야 된다....... “며
야단칠 때나 칭찬하실 때도
“내가 더”를
강조하시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 사이에선
담임 선생님을
"내가 더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종수야 교실에 가봐
니 이름이 보름달처럼 떠있어.. “

다음날 아침 난 학교에 가질 않았다
어둠이 누웠다 사라진 골목길을 지나
신작로 옆 개울가에서
햇살이 키우는 기다림만으로 시간을 죽이다
학교 파할 시간에 맞추어 슬며시
서릿발 같은 가난이 덕지덕지 버티고 서있는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빈하늘에 떤 낮달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흘리던 눈물을
교복 소매자락으로 훔치고선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몸져누운 엄마를 소리쳐 부른다
엄마“ 엄마”

흔들리는 문풍지 사이로
바람소리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종수냐... “

“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한두 번이 아닌지라 결국 들통이 나고 말았다
장독 위에
머물던 어둠이 주저앉은 뒤
방안에선 날선소리가 터져 나온다

“낮에 선생님이 다녀가셨다”
너 커서 뭐가 되려고
학교도 안 가고 어디서 뭐하다 이제 들온 거냐”

“학교에
월사금 안 낸 애가 칠판에 나밖에 없단 말이야
창피해서 학교 다니기 싫어.. “

“그럼 말을 했어야지

“엄마 약값도 없으면서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곤 난 후
가난은 햇살처럼 문을 열고 들어왔고
아픔이 들어선 방에서 엄마와 나는
시린 고달픔을 이불처럼 덮고 지내야만 했다

"엄마 나 학교 안 가면 안 돼
복도에서 선생님들과 마주치면
죄인처럼 눈물이 나 “

엄마라서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 흔한 도시락조차
챙겨주지 못하는 어미라 한숨은
방바닥에 장판처럼
엄마와 한 몸이 되어버린 지 오랬어리라

천연스러게 떠오른 태양을 등에 업고
교실문을 열고 들어 선 나는
애써 칠판을
외면한 채 걸어가다 무언가에 놀란 듯
뒤돌아서 칠판을 쳐다봤더니
늘 문패처럼 걸려있던
임종수란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자리에 앉은 난
한참을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리며
“엄마가 월사금을 내고 가셨나
집엔 돈이 없을 텐데.... 어디서 빌리셨나
아냐 주번이
지우개질을 잘못해 지워 버린 걸꺼야 “

잠시 후 반장이
교무실로 내려오라는 호출 소리에
결국 올게 왔구나 혼잣말로 되내인 뒤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봉투를 꺼내
도착한 교무실

구석진 자리에 계신
"내가 더 선생님"에게
준비해온 봉투를 내어놓았다

“선생님요
저 엄마도 아프고해서
학교 그만 다닐랍니다.. “

한참을
흰 봉투에 시선을 두고만 있던 선생님은
결심했다는 듯 말을 뱉어놓았다

“종수야 그럴수록
내가 더 엄마를 사랑하고
이해해야 되는거야
아픈 엄마를. 위해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야 되는 거고....... “

“가난해서 숨 쉬는 것도 힘든 제게
공부는 사치니다
공장에 취직해 엄마 약값 버는 게
더 잘하는 일이건 같아요 “ 라고
헤아리기조차 힘든 말을 내뱉고는
저 혼자 가는
저 가을처럼 난 걸어가고 있었다

햇살이 잠시 쉬어가는 흔적을 남긴
한가한 거리를 지나
어제와 같이 별다를 것 없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엄마,,,“

그런데 아무런 대답이 없다
구멍 난
문창호지 따라 들고 낫을 시린 가난을
온몸으로 맞고 누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서걱거린 방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꼬박꼬박 챙겨놓은 약봉지만 있을 뿐
밀쳐진 이부자리와 늘 한 몸이었던
엄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다시 뛰쳐나온 그때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엄마의 모습

“엄마,,,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그 아픈 몸으로.. “

“요 앞 병원에 치료받고 오는 길이다”

늘 빈 광주리 늘어놓은 빨래줄만 휑한
우리 집에
뭔 돈이 있냐는 듯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건너
엄마는 말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셨다

계절이 한 계절을 지나
다음 계절을 불러오고 있을 때 까지
나는 학교를 나가지 않은 채
인근 철공소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해가 뉘적거리다
쉬 넘어간 시간 자리를 건너
집을 향하려는
내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더 선생님”

"종수야 고생이 많구나
그만 내일부터 학교 나오너라
평생 철공서 다닐 거 아니면
엄마를 위해 어떤 길이 옳은 건지
“내가 더 ” 생각해야지

"월사금도 못 내면서 더 다니기 창피해요"

"그런건 넌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

"내가 더 선생님"과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인
노을 꽃을 바라보며
고아로 홀로자라 독학으로
지금의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며
다시 난 교복과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기로 굳은 약속을 하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 위로
엄마는 건강이 좋아져 다시 생선가게를
하게 되었고
“이거 월사금이다 선생님 갔다 드리거라 “

다음날
어찌나 발걸음이 가벼운지
당당하게 나는 학교로 걸어갔지만
"내가 더 선생님"은 이미 병가로
휴직을 한 상태였다

“저 공납금 내러 왔는데요”

“학생 이름은”
“3학년 1반 임종수니다”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학생은 졸업 때까지
이미 완납이 되어있구나”

고개만 갸웃거리다
학교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한가한 달이 떠오르기도 전에
집으로 온 나는
"엄마 엄마가 내 월사금 냈어요”

“아니...
뭔 돈이 있어 미리 낼 수 있었겠니..”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나를 쳐다보셨다
“종수야 내 말 잘 듣거라
엄마가 이리 건강해진 것도
선생님 덕분이야
너 마음 아파할까 봐
알리지 마라 하셔서
지금껏 말을 못 하였지만
아마 공납금도 선생님께서 내주신걸거다 “

엄마의 그 말에
지금에서야 때늦은 반성문을 써 내려가며
제손는 이미
“내가 더 선생님”집
대문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사랑은 이별을 알지 못하나 보다
"조금 늦게 왔구나
널 무척 보고 싶어 하셨는데.."

"선생님을 뵐 수 있을까요"

"언젠가 네가
찾아오면 이걸 전해주라고 하셨어....."

“ 내 사랑하는 제자 종수야
.....
....
.....

..
“사랑할 때도 내가 더 사랑하고
이해할 때도 내가 더 이해하고
양보할 때도 내가 더 양보하고 살아가렴....... “

인생이란
오늘은 내 안에 있지만
내일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기에....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18-10-03-13-12-01-009_deco.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