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온 편지/노자규

in #story6 years ago

하늘에서 온 편지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https://m.blog.naver.com/q5949a/221374133887
하늘에서 온 편지

항구에
드나더는 배라곤 한두척이 전부인
조용하고 쓸쓸한 시골어촌 마을엔
새벽을 지나
쨍한 햇살이 내려쬐는 오후가 되어도
오고가는건
지나는 바람과 동네 강아지가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빨간 우체통을 매달고
달려오는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외부에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소식통인지라 오트바이 소리에
집집마다 묶어둔 개들까지 짖어며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구요

“이장님
서울사는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씨유“

“이게 뭔일이데유
울아들이 편지를 다보내고...”

넌지시 고개를 불쑥 내밀며
“우리집엔 온건 뭐 없데유.”

그렇게 오트바이 소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간 자리엔
늘 텅빈거리에 넋나간 사람처럼 말없이
앉아있는 할머니가 한분이 계십니다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은 슬픔만으로
바다만 바라보며
눈물 고이는 세월의 기다림 만으로
살아가시는 할머니는 언제나 아들이 사준
낡고 헤어져 손가락이 나온 빨간
벙어리장갑과 털목도리를
늘 하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뭐 올게 있남유 ”라고
묻는 말에도
그냥 바라만 볼뿐 아무말이없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인사만 남겨둔채
달려나가는
오트바이 백미러 뒤로 보이는 할머닌
머물다 떠난 자리를
눈물로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겨울비가 내려서는
오후여서인지 배달할 우편물도 없고 해서
동네 사랑방인 조그만 슈퍼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뽑고 있을때
나물을 다듬던
주인 아주머니의 한숨소리가
커피잔에 어렸섭니다
“에이구..이를 어째..
아직도 배타고 나간 아들이 돌아올거라고
하루종일
바다만 저렇쿰 쳐다보고만 계신디야”

“누구말씀이세요”

“아 있잖아유 늘 오트바이 소리만 나면
나와 앉아계신 길동이 할머니 말이쥬”

아들이 풍랑에 쓸려 죽은후 정신줄 놓고
아들이 오려나 늘 저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과 함께....

때늦은 노을은 저녁인사처럼
고단한 하루위에 내려서고
넉넉한 햇살한줌이
골목 그늘위에 희망비 되어 내리든날
그날도 어김없이
이별의 문턱을 넘어 나와 계신
할머니에게 전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아들편지 기다리세요“
평행선을 그어놓은
그리움의 정거장을 건너
환하게 웃으시며

“그래유 울아들한테 편지라도 왔남유“

저도 모르게
아,,,,예 할머니 라며
고향에 홀로계신 엄마에게 보낼
제 편지를 대신 건내고 있었습니다

늘 가까이 두고픈
아들의 편지라는 소리에
얼굴엔 화색이 돌더니
“읽어봐요 뭐라고 했시유... "
두 눈망울은 희망으로 들어 차 있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아들이 되어
조목조목 읽어가고 있었고
중간 중간 할머니는
개어놓은 눈물의 시간을 지나
“이 어미 걱정이랑 말고
배 골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있었라고"
전해달라는
기다림에 지친 눈동자엔
묶어놓지 못한
그리운 아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네 할머니....
제가 꼭 전해드릴게요”
그렇게
길동이 할머니와 저는 잡히지 않는
그리움을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삶이 버거울 때 사랑이 필요하듯
할머니가 앉아계신 오동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 도시락도 같이 나눠먹으며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고 있었고
야쿠르트 한 병에 웃고 웃으며
손에 손 포개잡으며
점점 할머니의
아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할머니
좀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아드님한테 선물 뭐 받고 싶으세요
제가 말해드릴게요 “

할머니는 정으로 맺어진 고리 같은
구멍 난 빨간 장갑으로
낡고 헤어진
목도리만 매만지고 계셨습니다

“하하 우리 할머니 털장갑과
목도리가 받고 싶은 신거구만유”

다가갈 수 없는
삶의 끝자락에서 희망이 생겼다며
빨간 털실을 사달라고 부탁을 하시며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추운 바닷가에서 고생하는
아들에게 짜주시겠다며
행복이 피어나는 꽃처럼 웃고 계셨습니다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금방이라도
눈송이가 내릴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할머니의 아들이 되어
빨간 목도리와 장갑을
가지고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저 왔시유
아드님한테 택배가 왔구만유 “

오랜 지병이 계셨든 할머니는
그림자보다 무거운 몸으로
외로움과 고독이 늘어진 약봉지와 같이
골진 냉방에서 홀로 견디다
아들에게 전해줄
빨간 목도리와 장갑만을 놓아둔 채
저 하늘에 별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되는 것일까....

슬픈 이별 뒤에
아름다운 만남을 했을거라 생각하며
할머니가 밤을 새워가며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빨간 목도리와 장갑은
아들이 잠든 바다에 걸어주고선

작은 이별

큰 만남이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18-10-09-19-54-29-355_deco.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