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 통장/노자규

in #story6 years ago

0원 통장

해저문 하늘에 반쪽짜리 달이
어둠에 누워
넌지시 떠난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산모퉁이 언덕 위에 있는 요양병원에는
노쇠한 세월을 지난
할머니가 트럭에서 내려서고 있었습니다

“엄마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요”
평생을 국밥집을 하며
설거지 통에 퉁퉁부어버린 손을 잡고는
아들은 그손을 쉬 놓지 못합니다

트럭 야채장사를 하는 아들의 손에
구멍 난 목장갑 위로
새 목장갑을 덧쉬워줍니다
“지난 간 날들은 죽은 날이니까 생각지 말고
밥이나 꼭 챙겨 먹어
이 어미 걱정은 말고 어이가... ”

“자리 잡으면 꼭 모시려 올게요”
돌아서 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엄마는 소리 없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살 수 있으려나,,,,”

아들을 보내고 돌아온 할머니에게
“할머니 귀중품은 별도로 보관하셔야 해요
가지고 계시다 분실하는 건 병원에서
책임지지 않아요 “

방을 배정받고 짐을 푼 할머니는
원무과에 찾아와서는

“내가 죽거나 사람을 못 알아보게 되더라도
울 아들이 찾아오거든
이것을 꼭 좀 전해 주구려 “

봄이 사그라진 듯한 접고 접은 봉투엔
생명보험증권이 들어있었습니다.

“ 여기가 현대판 고려장이지 뭐유
데리러 오는
자식은 8년 동안 한 번도 못 봤구먼 “
만장 같은 넋두리를
풀어헤쳐놓은 반장 할머니에게
애써 발뒤꿈치를 세워 보이려는 듯

“저는 자식에게 기대 같은 건 안 해요
기대하는 건 내 욕심인 거구...
그 대신
희망을 가져요.
그건 자식을 위한 거니까 “라며
마지막 웃음마저도
묻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저 기억하시겠어요... “

“아이고 그때 맨날 외상 하던 그 젊은이..”

“맞아요 할머니...

고학생이였든
젊은이가 이병원의 의사가 되었다며
"그때 밥을 왜 그리 많이 퍼주셨어요”

“두 그릇 주면
얻어먹는 거 같아 미안해지잖아,,,“

할머니의 속 깊은 마음을
15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의사는
두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말아주신 국밥은 최고였어요 “

노란 은행나무 그늘 아래로
퇴근하는 의사에게 부탁을해
힐머니는 오늘도 복권을 샀습니다

“다음엔 로또를 사세요 할머니”

“그럼 울 아들이 한 번밖에 안 오잖아
연금복권을 사야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얼굴 볼 수 있잖아,,,“

물살과 파도에 일렁이듯
가정을 잃고 혼자 떠도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서릿발 세운 지난날을 만나곤 하지만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월 앞에
자식 때문에 만 번을 찔려도
아픈 줄 모르는 게 엄마인가 봅니다

가을물 드는 너른 들녘
곡식 여무는 소리가 할머니를 불러서일까요
하나둘 켜져 가는 별빛 따라
병원 앞 주차장 공터에 나와 있습니다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매일 “
아들이
보고 싶은게로구나 우리 할머니“

“울 아들이 엄마 찾아올까 봐... “
오매불망 기다려지는 건 아들인데
보고 싶은 사람은...... “

말끝을 흐리시는 할머니는
소매 끝으로 젖은 눈시울을 닦으시며

“보고 싶은 사람은 엄마야... “

이별의 초인종을 가슴에 묻고
주소조차 없는 엄마의 마음은
우연을 끌어안고서
추억 한 봉지까지 꺼내어 보입니다

세월 담긴 엄마의 것인
얼룩진 통장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할머니 얼마나 돈이 많이 들었길래
통장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나와요 “

이제는 잔고가 0원이 되었지만
“ 이때가
울 아들 대학 등록금 보낼 때였거든”

“이건 우리 아들 중학교 갈 때인가
교복 맞춘다고 찾은 돈이고.
이건 김장할 때 배추값 보낸 거고... “

엄마의 지난 세월이
0원통장안에 다 담겨져 있었습니다

자식들 먹이고 키우느라
0원 통장이 되었지만
“이 통 장안에 내 자식들이 있고
지나온 내 삶이 있잖아 “

그래서
자식 없는 사람은 있어도
엄마 없는 자식은 없나 봅니다
그저 자식 위해서라면
직진밖에 할 줄 몰랐던 엄마는
까만 밤이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저 달처럼
엄마의 마음속에 자식은
지워지지 않는 저 달이 되었습니다

갸느린 어깨에 엄마라는 문패로
쌓인 무게에 허리는 굽어졌어도

“저 나무가 저렇게 서있을 수 있는 것은
뿌리의 인연을 놓지 않았어야.... “

늘 자식 위한 엄마의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더 먼 것을 보게 하니까요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 Capture+_2018-09-26-21-20-14.pngCapture+_2018-09-26-21-20-14.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