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사과·배상 없이 떠나기 싫다- 47년 포로, 25년 투쟁한 유영복의 마지막 소원
“북한에 끌려가 죽을 때까지 노동했던 국군 용사들이 있었다는 걸 역사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국제사회에 북한의 만행을 널리 알려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국군 포로 유영복(95)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1953년 6월 유씨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불과 50여 일 전이었다. 그는 북한으로 끌려가 함경남도 단천시에 있는 검덕광산에서 광산 노동을 했다. 숨조차 쉬기 힘든 지하 갱도에서 돌가루를 마시면서 일했다.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을 TV로 본 유씨는 두만강을 건너 한국으로 돌아왔다. 47년 만이었다. 귀국 후 그는 ‘귀환국군용사회’ 회장을 맡아 국군 포로 이야기를 알리는 활동을 했다. 2011년 회고록 ‘운명의 두 날’을 출간해 검덕광산의 실태와 북한 내 국군 포로들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지난 2020년과 2023년, 서울중앙지법은 유씨를 비롯한 국군 포로들이 북한 정권과 김정은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잇따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피고들에게 1인당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국내 사법부가 북한 정권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사상 배상 책임을 공식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배상금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국군 포로들은 북한과 연계된 민간단체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후속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경문협은 북한 영상물을 사용한 국내 방송사 등에서 저작권료를 걷어 북한에 보내온 민간단체다. 유씨 등은 저작권료를 북한에 보내지 말고 배상금으로 달라고 했지만, 경문협 측이 “북한 저작권자들의 돈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그러나 서울동부지법에서 1심(2022년)과 2심(2024년) 모두 패소했다.
현재는 대법원 판단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먼저 국군 포로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뒤, 추후 북한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씨를 포함해 살아남은 국군 포로는 이제 6명, 모두 90대다. 유씨는 “이 땅을 온몸으로 지켜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본문 이미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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