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존엄 위해 존엄사 결정

in #steemzzang17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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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2월 함경도 출생 원숭이띠 조순복 씨. 스물다섯에 평범한 남자와 결혼,
아들 딸을 낳고 주부로 살던 그녀는 예순다섯에 유방암 2기 진단을 받는다. 수술
후 10년간의 항암 치료 끝에 가까스로 완치 판정이 내려졌다. 기쁨도 잠시, 1년
도 지나지 않아 골반과 허리, 무릎에 광범위한 전이가 발견돼 말기암 판정을 받
았다.

모든 암은 통증을 유발하지만 뼈로 전이된 암은 불시에 찾아오는 뼈의 통증은 칼
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고, 항암 치료로 각질화돼 벗겨진 피부의 가려움증은 펄
펄 끓는 물로도 가라앉지 않아 마약성 진통제로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마저
내성이 생겨 통증이 가시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잠을 자다가도 비명이 터져 나오는 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죽음을 상상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상상했고, 딸에게 의견을 구했다. 처음엔 무조건 말리기
만 하던 딸도 어머니를 차츰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고르던
어머니는 어느 날 "나도 스위스 갈까?"라고 말했다. 딸과 함께 본 스위스에서의
조력 존엄사를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

조력 존엄사, 조력 사망, 안락사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자발적 죽음의 방식은 전
세계에서도 허락하는 국가가 많지 않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미국의 몇 개
주에서 허용하고 있다.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는 곳은 스위스가 유일하다. 조 씨는
디그니타스에서 조력 사망한 여덟 번째 한국인이다.

조순복 씨의 딸이자 소설가 남유하 작가는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했다. 쉽지 않은 결
정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도왔다. 1998년 설립된 안락사 기관 '디그
니타스'에 메일을 보내 의사를 밝혔고, 회원 가입 후 필요한 문서와 병원 진단서 등
을 영문으로 번역해 보냈다. 2023년 7월, 디그니타스로부터 그린라이트가 내려졌다.
디데이는 10월 31일로 결정됐다.

하지만 조 씨의 몸 상태는 빠르게 악화됐다. 하반신 마비 증상까지 나타나 비행기
탑승을 못할 듯했다. 조 씨는 일정을 당기고 싶어했다. 8월 초로 날짜를 앞당겼다.
조씨는 친인척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남편, 남 작가와 함께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두 사람뿐 이었다.

남 작가는 일련의 과정을 매일 기록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할 때 고통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우리나라에도 조력 존엄사 제도가 생겨야 한다.
스위스 디그니타스에 회원 가입부터 조력 존엄사를 허가받기까지 절차가 까다롭고,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행복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자살은 엄청난 고통과 불확실성을
수반하고, 남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자살은 고립된 죽음이다. 혼자 떠나야
하는 거니까. 반면 존엄사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기에 큰 의미로 남는다. 어머니도
인사하고 떠날 수 있어 좋아하셨고, 우리도 행운이었다.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린다. 죽음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출생이 생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생의 마지막일 뿐이다.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

본문 이미지: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