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은 왜 이 모양이 됐나

in #politic7 years ago

제목이 이렇지만 전혀 조롱이 아니다. 나는 2007년에서 2016년까지의 한나라당-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집합적 역량이 뛰어난 단체였다고 판단한다. 언젠가 박상훈이 진보언론 지면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간의 역량의 격차는 그 의석수보다 더 난다’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판단이 옳다고 봤다.
 
 
즉, 이 글의 제목은 그랬던 그들이 어째서 이렇게 한 순간에 폭삭 주저앉았느냐는 물음이다. 이에 대한 답변의 시도는 지금의 정국이 어떤 것인지, 정치란 게 뭔지,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의 ‘능력’이란 게 뭔지 알아보는데 유용할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일년 반 이상 곰곰이 생각해왔고, 다음과 같은 대략적인 가설들을 세웠다.
 
 
첫째, 지금 한국당이 풀어나가야 하는 게임의 미션은 그들에게 익숙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내가 2017년 2월쯤 당시 한국당 당직자를 인터뷰해보고 세워본 가설이다.
 
 
그는 나와 정치적 견해차가 컸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볼 때 상황은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은 잘 지는 게 최대의 목표치가 아니겠느냐’라는 내 의견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런 선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에 임하는 정당이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볼 때 상식에 해당한다. 군소 진보정당들은 종종, 그리고 민주당조차 가끔 그 상식을 망각한다. 그들은 ‘도저히 1등할 수 없는 선거’라는 경험에 처해본 바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충분히 당선을 노려야 하는 선거, 혹은 적어도 그런 태도로 나서야 시민들에게 긍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선거전에서조차 ‘정당은 마땅히 선거에서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명제가 충분히 각인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것은 이들의 단점이다.
 
 
그런데 한국당의 장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환경이 반전되자 단점이 되어버렸다. 그 선거는 도무지 이기기 어려웠고 파산한 보수의 가치를 다시 재정립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선거였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선거를 하는 방법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았다. 당직자는 ‘우리는 사실 보수라는 말을 써본 적도 별로 없다. 보수는 당연히 우리는 지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도층의 지지를 노린다는 게 기본적 선거 전략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내게 토로했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몇 번이고 숙고해보면서 경험과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해보게 된다. 우리는 ‘큰 물’에서 논 사람들은 여타 상황에도 잘 대처할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 ‘큰 물’로 가는 이들의 능력치가 더 높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영역에서나, 담론영역에서나, 여타 업무영역에서나 경험해본 바는 ‘작은 물’의 경험이 없으면 ‘큰 물’에서 온 사람도 헤맨다는 것이다. 능력치가 호환이 되는 업무라면 ‘큰 물’에서 온 이답게 금세 장악하기도 하지만, 애초 다른 역량을 요구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의 경험과 역량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것일 게다. 어느 쪽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든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교훈이다.
 
 
둘째,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홍준표의 리더십은 성공이었으되, 일종의 ‘성공의 덫’이 되었다.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의 선거캠페인은 분명한 성공이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처음 발발할 때에 거의 잊힌 정치인었던 그가 한국당의 후보가 됐고, 안철수 후보를 앞질러 2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홍준표 대표가 ‘1등의 높은 공기’에 익숙한 대부분의 한국당 사람들과는 달리 그 동네에서의 언더독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언더독들일수록 전문가들 말을 경청하기 보다 자신에게 성공을 준 특정한 경험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전혀 다른 정치인 유형이지만 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몇몇 승부수에서도 그러한 고집을 느꼈다.
 
 
나는 홍준표도 그러한 덫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를 제끼고 2위가 되는데에 유리했던 그 전술(이조차 안철수가 정말 후진 후보였다는 운빨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이 보편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전술이라 착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한 파행은 최근의 모습에서 보이는 것이므로 상술하지 않기로 한다.
 
 
셋째도 다소 흥미로운 포인트인데, 나는 보수정부가 집권 10년 동안 형성한 ‘우익 시민단체’가 그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제정신을 차리는데 일종의 독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익 시민단체는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한 보수정부가 집권 10년 동안 일종의 ‘미러링’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의 돈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회하여 이른바 아스팔트 우익, 우익 시민단체 사람들을 지원하고 육성했다.
 
 
나는 진보적 시민단체 사람들은 전적으로 자발성을 가지고 있고, 아스팔트 우익들은 전적으로 동원된 것이란 식의 단순도식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러 방면에 투신하여 만들어낸 제반 단체들의 지반과 급조된 이들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보적 시민단체 인사들이 비록 민주정부 10년 동안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 일신의 영달이 아니라 ‘진영’의 미래를 위해 생각한 바가 있다면, 아스팔트 우익들은 그저 생계형으로 복무하거나 세상과 불화하는 자신의 급진성을 과시하는데 더 급급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스팔트 우익들은 과거 민주당의 큰 약점이라 볼 수 있었던 ‘자기들끼리 비분강개하여 침튀기며 흥분하는 운동권 정치’의 폐해를 한국당 내부에 복사하게 된 것이다. 자세히 적을 수는 없으나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불만과 문제제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
 
 
누가 봐도 반성해야 할 정국이었던 최순실 게이트 상황 전체를 음모론으로 몰아간 태극기세력을 한국당이 전적으로 껴안지도 쳐내지도 못하는 상황은 민주당에 비유하자면 ‘나에 대한 처벌은 국정원의 날조’라고 주장하는 이석기를 민주당이 선을 긋지도 완전히 동조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해당한다. 지지층이 넓어진다면 그게 더 신기할 상황이다.
 
 
유능과 무능이 이렇게 삽시간에 반전되는 이러한 상황이 우리하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무지하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 ‘너의 착각과 달리 새누리당은 원래부터 이 모양 이 수준이었던 거야’라고 단정내리는 이들보다 나의 이 분석이 훨씬 쓸모있는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politic #kr #krnewbie #kr-newb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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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석 글 잘 읽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또는 새누리당이 이렇게 된 것은 10년간의 집권을 지나오며 보수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는 애초에 몰랐다거나) 보수는 헌법과 법률을 지키고 발전의 속도에 있어 현실적으로 천천히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보수라고 자칭하는 자한당의 모습을 보면 그리고 박근혜로 대표되는 부패 정치인을 본다면 보수라고 불릴 수도, 불려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시민들도 멍청하지 않고 보수라고 소리치던 사람들의 부정부패를 보며 보수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보수도 떠나가고 중도층도 떠나고 남은 것은 흔히 태극기로 불리는 집단이 된 것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진짜 보수, 개혁 보수가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일단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