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5 이재명의 공화정 훼손과 전제정으로의 위험

법보다 중요한 것은 원칙과 가치이다. 법은 원칙을 지키고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법만지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법이 허용한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법이 정하지 않은 것은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도 위험한 것이다.

대법원에서 이재명에 대한 선거법 유죄파기환송 결정이 내려진 이후 이재명의 반응은 걱정스럽다.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중단하는 형사소송법을 만든다고 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탄핵한다고 하기도 한다. 대법원의 판결이 공명정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법원의 판결이 공명정대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정치인에 대한 재판은 특히나 정치적으로 흘러갔다. 재판관의 진영적 성격에 따라 판결이 오락가락했다. 심지어 대통령 탄핵심판에까지 법률회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대법원 판결에 법률회사가 영향을 못미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현재 법원은 완전하게 신뢰를 잃었다. 지금과 같은 법원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법원을 정치화하고 시녀처럼 부리는 것은 원래 보수정권의 특기였다. 그러니 이재명이 법원을 겁박한다고 해서 보수진영이 이재명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하기도 어렵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사법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을 나눈 것은 공화주의의 산물이다. 원래 군주는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다 가지고 있었다. 군주의 권력을 세개로 나눈 것은 부르주아 혁명의 결과이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 부르주아 혁명에서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제이다. 특히 미국혁명은 대중의 광기를 막기 위해 공화주의를 강화했고 그 핵심은 사법부에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간략하게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란 부르주아지의 민주주의이지 대중이 참가하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대중이 참가한 민주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 이루어졌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영미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고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에 가깝다고 하겠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의 순수한 이상적인 형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중민주주의 그러니까 인민민주주의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전제적인 성격을 띤다. 없는 자들의 이익을 지키고 확보하기 위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집중되는 양상을 띨수밖에 없다.

공화주의는 기득권과 부르주아의 이익을 옹호하기 지키기 위한 구상이다. 그러니 사실 우리 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이란 말그대로 따지면 프롤레타리아-부르주아 국가라는 이상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자유주의에 불과하다. 거기에 민주주의는 개념적으로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한국은 공화정에 입각하여 국가권력이 구성되어 있다. 입법, 사법, 행정 3권은 각각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 대통령도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사법은 특히나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사법부를 장악한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하겠다.

이재명이 조희대를 탄핵하고 나머지 대법관도 탄핵한다는 소리를 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공화국이라는 기본 가치와 원칙을 부정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뒤에서 대법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과 탄핵을 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사법부는 항상 영향을 받는다. 이재명도 권순일 대법관을 매수해서 무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 매수조차도 걸리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정은 3권 분립이라는 대원칙에 입각해서 유지된다.

필자는 현재 한국의 공화정이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다. 공화정 위기의 가장 큰 원인제공자는 사법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의 사법부 훼손시도를 공화정 파괴의 결정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화정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재명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응은 정확하게 공화주의 원칙의 붕괴와 파괴를 의미한다. 입법권으로 사법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다. 그렇게 되면 이미 대한민국은 공화정이 아니라 전제정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파시즘이라고 보는 것이다. 파시즘도 단순하게 말하면 전제정이다. 한국은 엄밀하게 말해 전제정의 초입에 들어가 있다고 하겠다.

민주주의가 전제적인 양상을 띠는 이유는 기득권의 이익을 타격하기 위해 강력한 정치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전제적 행태는 오히려 보수 우파적인 정책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재명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는 매우 유사하게 히틀러가 걸었던 길이라고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정치신문이 이재명의 행태를 비판하고 나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내란종식 이후 그 과실을 이재명이 가져가면 다시 기득권과 손잡은 파시즘이 득세하는 세상이 된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남북관계 개선시도에 적극적으로 지지하다가 그 이후 비판으로 돌아선 이유도 파시즘적 태도가 명백하게 들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자정치신문은 이재명의 행태를 간결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필자가 생각하는 바와 매우 유사하다.
소위 노동자들과 진보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은 내란세력 2기로 진입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은 공화정을 훼손하고 파괴하고 있다. 이런 노선과 행동에 동참하는 자들도 모두 공화정 파괴의 공동정범이라고 할 것이다. 진보적인 입장에 있는 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재명이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 이유없다고 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