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내 삶을 결정한다고? 명상과 의식, 그리고 결정권자.
탕수육을 시킬까, 피자를 시킬까? 오늘은 치킨, 너로 간다!
휴일이라 하루 종일 이불을 끼고 살았다. 계속 누워있는데 배는 왜 더 빨리 고플까? 점심을 잘 먹은 것 같은데, 오후 4시가 되니 출출하다. 요즘 애용하는 배달음식 어플을 켜고, 뭘 먹을까 고민한다. 탕수육? 아니야 피자가 나을까. 잠시 고민하다 치킨으로 정하고 검지 손가락만 움직여 카드 결제를 끝냈다. 근데 잠깐, 여기서 내가 생각 한 후 메뉴를 고른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생각하기 몇 초 전에 두뇌는 '치킨을 시켜'라고 나에게 명령 내렸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출처: 구글
존 해인즈(John-Dylan Heynes) 박사가 주도한 실험에서, 학생들은 양손에 각기 버튼 하나를 잡고 스스로 결정을 하는 순간 즉시 버튼을 눌렀다. 이 때 자기 공명 영상으로 두뇌 움직임을 촬영했다. 놀랍게도 학생들이 버튼을 누르기 몇 초 전에, 의사 결정을 하는 뇌 부위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두뇌 운동 피질 영역에 '넌 오른쪽 버튼을 눌러야 해'라고 지시하는 메세지가 '이미' 내려왔다는 이야기다. 과학자들은 이 신호를 보고 학생들이 어느쪽 버튼을 누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 존 헤인즈 박사. 이렇게 눈매가 처진 스타일이 좋다. 사진 평에 사심이 가득하다.
내가 버튼 누르기 몇 초 전, 뇌에 신호를 보내주는 그이는 대체 누구일까?
명상에서는 '그이' 를 의식이라 칭한다. 생각과 행동이 있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는 의식이 있다. 존 헤인즈 박사가 한 실험이 맞다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은 없다. 나는 모를지라도 내 두뇌는 알고 있다.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의식이 작동한다면, 그것을 조절할 수 있을까? 명상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무의식 -> 의식 -> 결정 -> 생각 -> 액션 (O)
무의식 -> 의식 -> 생각 -> 결정 -> 액션 (X)
우리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뇌에는 아무런 편견이 없었다. 아기들은 위험한 물건을 구분하지 못하고 입에 가져간다. "안돼"란 말을 아기들이 얼마나 많이 듣는지 세어보면 그 횟수에 깜짝 놀랄 것이다. 순수했던 우리였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 둘 선입견이 생긴다. 나쁘게 볼 건 아니다. 왜냐하면 선입견은 생존하고자 하는 좌뇌, 그리고, 안전을 원하는 두뇌 변연계가 작동한 것이니까. 이 나이 먹고 입으로 맛보고 물건을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생존 활동이 우리의 판단에도 관여하기 시작한다. 도 넘은 참견이 아닐 수 없다.
선입견은 대게 어린 시절 뿌리를 내린다. 부모님이나 친구가 커다랗게 느껴지던 시절,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남들이 좋아하는 껍질을 쓰기 바빴다. 동시에 그 시절의 인식이 내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혔다. 어린시절 받은 사소한 거절과 칭찬이, 지금의 나의 행동에 이어졌다는 걸 인정한다. 생각에 회로가 생긴다. 정해진 방식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무의식이 선택해 버리는 결정이 잦아진다. 고로 내가 탕수육을 먹을지 치킨을 먹을지 결정하는 건 온전한 '내'가 아닐 수 있다.
명상은 생각의 회로를 잠시 멈추고 0점에 머무르고자 한다. 이 지점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상적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지금부터 알아보자.
▲명상자세, 이 모델 예쁘다. 나도 이렇게 생기면 좋겠다. 출처 : 한국 단월드
0점에 이르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 된다. 흔히 말하는 단전호흡이다. 깊고 가는 호흡으로, 머리로 올라온 열을 단전 부위로 내리는 작업이다. 숨에 집중하면 생각이 사라진다. 이때가 의식을 붙잡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찰나로 지나갈 것이다. 훈련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명상을 배운 센터에서는, 의식 붙잡기 훈련을 3년정도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땡땡이를 많이 쳤으니 한 5년 잡아야 하는건가 싶다.
의식을 구지 붙잡을 필요가 있냐고? 있다. 잠들기 전에 떠오르는 수많은 자책으로 힘들어 해 본 사람이라면 의식의 흐름을 내것으로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적어도 무의식이 나를 끌고 다니는 관계는 바꿀 수 있으니까. 치킨도 진짜 '내'가 주체적으로 시켜 먹고 싶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문득 본 광고, 맞다 치킨은 살 안찐다. 내가 찐다. 어쩐지 눈가가 촉촉해진다.
:자기 소개:
재미와 의미를 소중히 하는 사람이다. 관심이 사람의 내면으로 향할 때가 많아, 5년 전 본격적으로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명상 체험은 한국 단월드에서 얻었고, 명상 관련 책을 즐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