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꺼리고 사람을 기다리는 섬

in #maggeolri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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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철도를 타니 멀게만 느껴졌던 바다 건너 영종도, 운서역에 금방 닿았다. 이른 아침이지만 전철은 한산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갯벌 바다는 신기했다. 역에 내리자 빗방울이 살살 떨어져,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삼목선착장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다.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배는 영종도(삼목선착장)와 신도, 장봉도를 오간다. 십분 가량 배를 타면 신도에 도착한다. 신도, 시도, 모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고 셋을 다 합쳐도 자그마한 섬이라 당일 여행으로 무리가 없다. 섬 내에서는 버스나 도보여행이 가능하고,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수기해변과 드라마 촬영지, 모도 조각공원을 많이 찾는다. 같은 배를 타고 신도를 지나 30분을 가면 장봉도에 도착한다. 장봉도는 능선으로 연결된 트레킹 코스가 잘 되어있고, 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배 안에는 등산복 차림의 여행자가 많다. 인천시 옹진군 북도면에는 이렇게 4개의 유인도(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와 10개의 무인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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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선착장에 내려 주위를 둘러본다. 배가 떠나갔고 함께 내린 사람들도 몇 없다. 조용하고 바람이 조금 차갑다. 낯선 곳에서 마음껏 두리번거리는 느낌이 좋다. 버스 한 대가 기다리고 서 있다. 몇 정거장 지나 버스는 시도에 들어섰다. ‘북도 양조장, 막걸리 판매’라는 입간판을 보고는 서둘러 버스 벨을 눌렀다.

 

 

정육점과 슈퍼, 양조장이 나란하다. 오래된 가옥 두 채 가운데 나무 대문이 중심을 잡고 있다. 나무 대문 안쪽에 오랜 세월의 흔적이 있는 양조장이 자리하고 있다. 북도면에서 유일하게 허가받은 ‘북도양조장‘이다. 제조실과 발효실로 이루어진 이곳은 개방되지 않아서 구멍가게 한쪽에 난 창문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현대적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발효는 항아리에서 진행된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함께해온 항아리가 막걸리 맛의 비결이다. 정겨움 그 자체인 슈퍼는 작은 구멍가게이자 또한, 정육점이다. 웬만한 식료품과 편의용품들은 다 갖춰있다. 여행하기에 앞서 무겁게 도시에서 사오기보다는 현지 가게를 이용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 파라솔이 마련되어 있는데 출출한 여행자들에게 막걸리와 사발 라면이 인기다. 슈퍼를 지키고 있는 여든넷의 할머니는 사십여 년을 이 섬에 살면서 술을 빚었다. 이름 하여 ‘도촌막걸리’. 지금은 아들이 물려받아 17년째 양조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거르는 첫술은 예나 지금이나 할머니가 맛을 본다. “남을 줄라카믄 내가 먼저 먹어봐야 하는 거여. 그리고 맛도 알아야 돼. 할머니는 다 먹어 보면 아니까. 울 아들이 딱 거르면, 어머니 잡숴보라고 냉장고에 딱 갖다 여 놓는 거여.” 양조장에 찾아온 손님에게 할머니가 내준 막걸리는 청량하고, 적당히 달달하다. 도촌막걸리 한 병을 할머니,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또 다른 여행자와 함께 어울려 비웠다. 낯선 이들이 막걸리 앞에선 서로 자연스럽다. 타지에서 이 막걸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자전거 여행자다. 맨몸으로 홀가분하게 와 동네 유일의 이 구멍가게에 들러 요깃거리를 사고 막걸리 몇 병을 앞에 두고 즐기다 술이 깨면 유유히 왔던 길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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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밀려 막걸리 수요가 크게 줄면서 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 북도양조장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경영난을 겪었다. 해결책으로 정육점과 슈퍼를 함께 운영하여 지금까지 양조장을 지키고 있다. ⓒ김연지

 

그러나 이 날은 날씨 탓인지 할머니의 기분 탓인지 섬이 다소 쓸쓸하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줄고, 섬 주민들도 하나둘씩 떠났다고 한다.

“쌀 스무 가마를 주고 막걸리 만드는 걸 배웠어. 그땐 한 되, 두 되, 달라는 대로 퍼주던 때니까. 옛날엔 사람이 많았지. 나도 매일 막걸리를 빚었어. 잘 되던 때니까 인부도 있었고, 지게로 지어 막걸리를 팔러 가기도 했지. 이제는 사람이 없어. 술 찾는 사람도 별로 없어.”

사라져가는 인기척이 아득하기만 한 노인에게는 외지인이 헤아릴 수 없는 먹먹함이 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만난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마을을 지나고, 바닷길을 걸어 모도로 향한다. 그 길 끝에 배미꾸미해변, 모도 조각공원이 있다. 붉어지는 하늘과 바다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곳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조각 작품을 감상한다. 마지막 배 시간을 놓치면 곤란하다. 섬이라는 장소에서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하루만의 휴가는 더 귀하다. 서둘러 선착장으로 향한다.

어둠이 번진다. 저녁 배는 여행자를 싣고 육지로 떠간다. 손에는 도촌막걸리 한 봉지가 들려 있다. 할머니의 세월이, 섬의 시간이 담긴 막걸리다.

 


북도양조장
주소 인천시 옹진군 북도면 시도리 399
전화번호 032-752-4020
글 오승현|사진 김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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