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캠프 엑스레이>를 보면서 느낀 '대화의 힘

in #kr7 years ago

영화 <캠프 엑스레이>를 보면서 느낀 '대화의 힘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빈 라덴을 잡는다는 명목 하에 이라크를 침공한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이슬람인들을 수용소에 가둔다. 이 수용소가 '영화 <캠프 엑스레이>'의 배경이다. 수감된 이슬람인들은 미국 군인들에게 삶의 모든 것을 통제받는다. 수감자들은 먹을 자유도, 씼을 자유도, 잠을 잘 자유도, 그리고 죽을 자유도 박탈당한다. 수감자들은 인간의 권리를 잃어버린 채, 기약 없는 수용소 생활을 해나간다. 희망도 없이.

영화의 이야기는 군인인 '콜'이 수용소에 전입오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콜'은 이 곳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힘들어 한다. 이러는 와중에, '콜'은 수감자 '알리'와 조금씩 말을 터놓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 수록, 콜과 알리의 대화는 조금씩 깊어져간다. 그리고 콜은 깨닫는다. 알리는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이슬람 종교를 갖고 있는 평범한 아랍인임을, 본인과 똑같이 인간의 권리를 누려야 하는 한 인간임을. 그리고...(내용 생략)

수용소에 수감된 이슬람인들을 통제, 관리해야 하는 미국 군인 '콜'. 그리고 인간의 권리를 미국 군인에게 박탈당한 이슬람인 '알리'. '콜'과 '알리'는 상대방을 본인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적'으로 생각한다.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한다. 이 두 사람은 상대방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데도 말이다. '콜'과 '알리'는 서로 간의 적대 관계를 운명인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이 적대 관계는 허구라는 것을.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가슴으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

우리는 본인의 이야기를 타인의 가슴 속에 심으려고 노력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내 가슴에 품으려고 노력할 때, 깨달을 수 있다. 나와 타인의 관계는 사회가 이미 정의 내렸다는 사실을. 영화 드라마의 장면으로, 뉴스의 영상으로, 친구의 속삭임으로.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아주 은밀하게 말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타인의 이미지를 살펴보자.

우리 마음 속에 '북한인'은 '적'의 대상으로, '동남아인'은 '멸시'의 대상으로, '흑인'은 '공포'의 대상으로, '이슬람인'을 '테러리스트'의 대상으로, '백인'은 '사랑'의 대상으로 정의내려있지 않은가? 백인이 길을 물어보면 따뜻한 미소로 길을 설명해주는 우리, 흑인이 길을 물어보면 주눅 들어 영어 한마디 내뱉지 못하는 우리. 동남아인이 길을 물어보면 쿨하게 '길몰라' 하며 떠나는 우리. 이렇게 우리는 이들에게 불합리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이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부당하다. 하지만 괜찮다. 사회가 정의 내린 나와 타인의 관계는 우리가 '대화'라는 행위를 하는 순간, 내 앞에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릴 테니까. 사회가 타인에게 정의내린 이미지에서 벗어나, 타인의 본래 모습을 자각할 수 있을 테니까. 타인이 위협의 대상이 아닌 나와 함께 지구에 뿌리 내리고 있는 동지의 대상임을 깨달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나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더라도, 나와 엇비슷한 욕망을 품고있는 평범한 한 인간임을 깨달을 테니까. 나와 똑같이 존중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다음은 여행중에 한국인인 본인이 이슬람인과, 흑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회가 만든 이들의 허구적인 이미지를 느낀 과정이다.

(1)

배낭여행 3일차 때, 나는 가방을 가슴 속에 품고 벌벌 떨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누가 내 가방을 훔쳐갈까봐. 그러던 와중에 흰옷을 칭칭 감은 이슬람인이 바짝 내 옆에 붙어앉았다. 내 눈으로 미라같은 옷을 입는 사람 처음 봤다. 9.11 테러를 일으킨 빈 라덴, 각종 테러와 납치를 일 삼는 IS가 떠오른다. 나는 침을 삼키면서 곁눈질을 해댄다. 갑자기 미라같은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건낸다. 어설픈 영어로. 나에게 계속 본인 이야기를 해댄다. 나는 납치당하는 상상을 하며 개미 목소리로 yes를 연발한다. 그는 계속 말을 해댄다. 아니 짖는다. 그러다가 나는 웃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록, 그는 내가 생각했던 이슬람인들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는 IS대원이 아닌 시골에서 농사 짓고 사는 이슬람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자녀를 책임져야 하는 한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부모님과 자녀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보는 것이 '다다'라는 사람의 소박한 꿈이었다. 또한, '다다'도 알았을 것이다. LUCKY(나)라는 청년은 전쟁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한국이 아닌, 법과 질서가 안정된(?) 한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2)

게스트하우스 복도에서 흑인을 마주쳤다. 근육빵빵에 탄력적인 몸매, 멋있지 않은 화려한 장신구. 주머니에 칼을 넣어 다니면서 뭘보냐면서 칼을 내 목에 들이댈꺼 같은 흑인. 나는 침을 꿀꺽 삼킨다. 고개를 숙이고 내 방으로 살금살금 건너간다. 숨소리도 참아가면서.

그날 밤, BAR에서 술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멍 때리고 있는데, 아까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주친 흑형이 보였다. 눈을 마주쳤다. 흑형은 큼지막한 흰 이빨을 나에게 보인다. 나를 향해 온다. 나는 심장이 멎는다. 그는 정중하게 묻는다. 옆에 앉아도 괜찮겠냐고. 거절한 용기가 없었다. 나는 썩소와 함께 yes 3번 발사. 나는 말조심을 하며 조금씩 흑형과 말을 나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흑형은 나와 동갑인 브라질 친구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세계를 돌아다니는 용감한 청년이었다. 나와 똑같이 친구가 없어 BAR로 쓸쓸히 술을 마시러 온 친구였다. 나와 똑같이 이쁜 여자 없나 두리번거리는 건강한 남자였다. 그는 나처럼 직업에 대한 꿈이 없는 '윌리엄'이라는 사람이었다. 또한, 윌리엄도 알았을 것이다. '교육 혁명'으로 미래 걱정이 전무한 한국이 아닌, '비정상적인 교육 경쟁'으로 인해 청년 자살률이 1위인 불행한 한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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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렵긴 하죠 처음부터 마음을 터놓기는 힘들다고 봐요... 이런저런 사람들고 만나고 얘기하고 하면서 사람들은 각 개인마다 개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 되더라구요... 그냥 나머지는 특징일 뿐... ^^ 잘 읽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입니다.DQmQDFTyP8LYDjaWFj4LvVmYiwwoDSzZqdPT3AXqcWwgwfr.gif

나이가 들수록 회사를 벗어나서 할 수 있는 일(직업)에 대한 꿈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읽어주셨다니 ㅎㅎㅎ 정말 영광입니다

대화도 편견이 없어야 더 쉽게 시작할수있을텐데말이예요..잘읽고갑니당ㅎㅎ

맞아요 ㅎㅎ 그런데 편견을 없애기가 정말 쉽지 않죠 ㅠ 편견은 경험에서 쌓이니까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벤트 답신겸 보팅해드리러왔습니다 :)

공감이 많이 되어 보팅을 누르지 않을 수 없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스티밋!
힘내세요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