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육군특별지원병제도 시행과 육군소년비행병학교 조선인 입교(1)
오늘 제가 포스팅할 주제는 일제강점기 육군특별지원병제도 시행과 육군소년비행병학교 조선인 입교입니다. 모두 세편으로 나누어 포스팅 됩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의 연구성과와 미발굴 자료를 토대로 육군특별지원병제도 속에서 육군소년비행병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육군소년비행병학교에 입교한 조선인에 대한 내외적 분석을 통해 식민지 조선 소년들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된 조선인 입교자들의 자료는 대한민국 공군의 창군과정을 연구하는 기초자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 후에 조선인 병역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의 조선인 병력동원에 대한 논의는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난 뒤부터였습니다. 당시 조선군에서는 조선인 병역문제에 대해 조선 방위에 중요하고 조선 통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신중하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항은 극비리에 추진되었는데요. 왜냐하면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가 미약하다고 판단해 만일 조선인 병력동원 문제가 일반화될 경우, 조선 전체의 저항에 부딪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33년 제국의회에서 조선 내 사단의 증설을 주장하면서 외부로 표면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논의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일제는 조선인 지원병제도에 관해 조선총독부, 육군성, 척무성 등의 긴밀한 협조와 준비를 거쳐서 1938년 2월 2일 「칙령 제95호 육군특별지원병령」을 제정해서 공포하기에 이릅니다. 같은 시기 동 시행세칙과 훈련소 관제 등 관련 법령이 마련되어 1938년 4월 3일부로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즉 일제의 조선인 동원은 대륙과 해양에서 그들이 벌일 전쟁계획에 맞추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38년부터 1943년까지의 육군특별지원병 지원자와 훈련소 입소자, 그리고 일본군에 입대한 인원현황은 위의 표와 같습니다. 이를 분석해 보면 1940년부터 지원자뿐만 아니라 훈련소 입소자, 일본군 입대자 수가 크게 증가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선총독부를 포함한 일제 권력계층에서의 강제력이 동원되었고, 지원자나 그 가족에 대해서는 사회적 우대나 경제적 혜택이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의 어린 학생들이 지원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입니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이 당시 청소년들을 군대로 내모는 동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원자들의 지원동기를 살펴보면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경우는 약 35%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관청의 종용과 회유에 의한 지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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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보 잘보았습니다...3편까지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