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선욱 간호사와 신생아들의 죽음, 우린 모두 공범이다
저는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8년차 간호사입니다. 제가 처음 발령받은 곳은 내과중환자실이었습니다. 내과중환자실은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중에서도 가장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누워있는 곳입니다.
수많은 기계와 수액들이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는 환자들...몸이 뒤틀린 채 계속 경련을 하는 환자도 있고, 말초혈관을 수축시키는 승압제를 고용량으로 쓰면서 말초에 피가 가지 않아 발가락이 나뭇가지처럼 새카맣게 말라비틀어진 환자도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보는 인공호흡기나 각종 인퓨전 펌프, 체외막순환기계 등은 학교에서 한 번도 배우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선배 간호사들이 그런 기계의 사용법을 가르쳐줄 때에는 어떻게 조작하는지도 가르쳐주지만, 내가 잘못 조작하거나 실수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함께 알려줍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 결과는 제가 책임질 수 없는, 감당할 수 없을 엄청난 것들이었습니다.
"너 환자 죽이려고 작정했어?"
내과중환자실에서 일하던 시절 제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너 환자 죽이려고 작정했어?!"였습니다. 맹세코 단 한번도 그런 작정을 하고 출근을 한 적은 없지만, 내가 실수로 환자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순간은 매우 많았습니다.
번은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혈압이 낮은 환자에게 승압제를 주입중이던 주입펌프에 에러가 나서 기계를 바꿀 때, 허겁지겁하다보니 주입펌프를 열기 전에 수액 줄을 잠그는 걸 깜빡했습니다. 단 몇 초에 불과했지만 시간당 3cc씩 매우 극소량으로 들어가던 승압제가 후두둑하고 환자 몸 속으로 들어갔고 순식간에 환자의 혈압이 200까지 치솟았습니다.
불행중 다행이었던 것은 그 환자는 혈압이 불안정하여 동맥 내에 도관을 삽입하여 실시간으로 혈압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환자였기에 혈압이 가파르게 치솟는 것을 보고 재빠르게 약이 들어가던 수액줄을 잠글 수 있었습니다.
알람소리를 듣고 달려온 선배 간호사와 떨리는 가슴으로 모니터를 보고 서있었던 그 몇 분의 시간이 저에겐 숨막히게 긴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심각한 부작용없이 그 환자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 때 그 심장이 죄여 들어오는 듯한 느낌은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중요한 약을 잘못 주는 간호사도 있었고, 수혈용 혈액을 뒤바꿔서 준 간호사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약물이 주입중이던 관을 빼먹는 간호사도 있었죠.
이 모든 사고의 원인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무 바빠서요', '정신이 없어서요', '제가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합니다.
간호사에게 책임 떠넘기는 병원
하지만 병원측이 내놓은 해결책은 '더 조심하라'였습니다. 심각한 투약오류 사고 후에는 신규간호사는 독립 후 6개월간 약을 주기 전에 반드시 옆에 선배간호사에게 확인절차를 거친 후 주라고 하고, 수혈사고 이후에 내놓은 대책으로는 원래 간호사 2명이 수혈 전 코사인을 하던 것을 3명이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저희들은 그 전보다 더 바빠졌습니다. 그 사고를 친 신규간호사는 공공의 적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구요.
신규간호사가 환자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은 신규간호사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일개 간호사의 작은 실수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이 시스템의 문제입니까?
고작 2달간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후에,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중증도 높은 환자들-다른 상급병원에서 치료가 어렵다며 보내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모이는 서울대병원에서 그 중에도 수술조차 시도해볼 수 없는 상태의 가장 중한 환자 생명을 2명씩 책임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환자를 살아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간호사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아무런 인간적인 위로나 다정함을 건넬 수 없습니다. 담당 환자 중 다른 한명이 응급 상황일 때면 나머지 환자가 대변을 봤다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요구를 묵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환자가 느낄 불쾌함보다는 다른 환자의 생사가 더 중요한 문제니까요.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소리라도 지르고 불평이라도 하겠지만, 대부분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억제대에 묶인 손으로 침대난간을 덜그럭거리며 간절하게 부르는 그 외침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기저귀를 갈아주길 원하는 건지, 자세가 불편한 건지, 혹시 너무 춥거나 더운 건 아닌지, 그런 것들을 물어볼 여유조차 없을 때 간호사들은 모니터를 봅니다.
환자의 심박동수, 심전도 리듬, 실시간 혈압, 산소포화도, 호흡수 등...환자의 vital sign이 정상인 걸 확인 후에는 "죄송해요, 저기 다른 환자가 너무 안 좋아서요, 이따가 제가 봐드릴께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의식이 또렷하지 못 한 중환자실 환자들이 그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지 확신이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른 환자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으니까요...
인간성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간호사들
제가 내과중환자실에서 일하던 당시에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앞장섰던,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던 분이 환자로 입원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 동안 극진한 대접은커녕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키지 못 하고 가신 것이,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가끔 몰래 다가가 손을 한 번씩 꽉 잡아드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당시의 저에게는 큰 무력감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처럼 인력이 부족해서 늘 바쁜 중환자실에서는 환자도 간호사도 인간성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가끔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이면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며 '저기 치어서 내일 출근 안 했으면 좋겠다.' '어디 부러져서 병가나 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무의식중에 떠올라서 스스로도 놀라곤 했습니다.
신규 간호사 시절,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런 생각들이 너무 무서워서 저는 1호선 지하철을 탈 때면 플랫폼에서 열차가 들어올 때, 괜히 멀찍이 안쪽에 들어와서 서곤 했습니다.
지난 2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산병원의 박선욱 간호사도 저처럼 내과중환자실에 처음 발령을 받았습니다. 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서울대병원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환자를 2명만 담당했다는 점이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박선욱 간호사는 환자를 3명씩 봐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내과중환자실에에서 근무했던 2011년보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쓰는 ventilator, CRRT, ECMO 등의 기계 사용빈도가 2~300%씩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가 그곳에서 견뎌야 했던 것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단순히 수치화하긴 힘들겠지만 담당환자수만 따져봤을 때 적어도 저보다 1.5배 이상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1년 미만 신규 간호사의 사직율 35%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4년간 힘들게 공부해서 꿈꾸던 간호사가 되었는데 왜 그들은 1년도 채 못 버티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사직을 한 것일까요?
대부분 대답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다만 고 박선욱간호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사직 대신 죽음으로써 그곳에서 도망친 것뿐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병원의 인력부족 문제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
인력부족 문제가 간호사들만의 문제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환자입니다. 인력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의료인들의 관심과 손길은 언제나 가장 위중한 환자에게만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상대적으로 중증도가 낮은 환자들은 더 많이 기다려야 하고, 더 오래 방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응급센터에서도 Level 1(레벨원:가장 중증도가 높은 환자) 콜이 울리면 무전기를 통해 "치직-치지직-레벨원 소생실 입실합니다." "EICU(응급중환자실), 레벨원입니다.""응급실 5구역, 레벨원입니다." ...이런 다급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리고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모두 레벨원 환자에게 달려갑니다. 레벨원 환자가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의사들을 빨아들이면 다른 환자들의 "중요하지만 덜 중요한", "심정지환자보다 덜 심각한" 문제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떤 환자의, 그 어떤 증상도 심장이 멎은 환자보다 우선일 순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응급상황에도 나머지 중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인력이 있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사정은 응급센터뿐만 아니라 어느 병동이나 똑같습니다. 아무리 위중한 환자라도 자신보다 더 중증인 환자가 있으면 그 사람보다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진이 충분하다면 제일 위중한 환자 외에도 두번째, 세번째로 중한 환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가며 돌봐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 합니다. 한 사람의 의사 혹은 간호사가 동시에 돌볼 수 있는 환자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호인력 확보수준에 따라 환자의 사망률이 최대 40%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인력문제 개선해야"
지난 7년간, 저는 이런 현실을 알고도 침묵해 왔습니다. 저 역시 그런 시스템 속에서 환자들에게 크고 작은 위해를 가한 공범이었으니까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들의 죽음에는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문직으로서의 대접만 바랄 게 아니라 전문직으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앞으로 40명이 될지, 400명이 될지 모를 또 다른 비극적인 죽음을 지금 이곳에서부터라도 막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아주 크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한 사람의 간호사로서 죽은 아기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그 아기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가지고 누리는 것들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져보지 못 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조금 더 빨리 이런 목소리를 내지 못 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정말 미안합니다.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들의 죽음, 밀양세종병원 화재참사의 환자와 의료진들의 죽음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인력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나날이 높아져 가는 중증도와 업무강도로 인해 더 많이 사직하고, 숙련도는 떨어질 것이며,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환자들을 위한다면 이제 침묵을 깨고,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 기사 : 최원영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간호사
-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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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수가를 현실적으로 고치고, 재원을 마련해서 병원의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고, 그래서 간호사들을 더 채용하고.. 한국에서는 간호사 1인당 맡아야 할 병상 수가 너무나 많죠...
그게.. 젤 후려치기 좋은 파트가 간호파트입니다.
그래서 병원쪽에서 잘 개선을 안해주죠. 간호사가 힘들다고 나가도 금방 구할수있다라고 생각하니깐요. 간호대 졸업생들도 많구요. 그리고 간호사는 돈을 많이 줘야하니깐 조무사를 쓰는 작은 병원들도 많습니다. 환자들은 다 똑같은줄알지만.. 간호사인 저희가 볼땐 위험한일들이 너무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간호사를 대표한다는 간호협회가 발벗고 나서서 정책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보이질 않고 있구요. 회장도 간선제로 뽑고 자기들끼리 다해먹고 있는데요. 뭘... 기대도 안합니다.
휴..
응원해요
원영쌤 글일거라 예상은 했었는데...맞군요.
아.. 답답합니다. ㅠㅠ
바꾸려면 한두가지로 끝나는것도 아니고..
아마 제가 죽을때쯤이면 조금 바뀌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간호사들중 최고 관리자 분들이 생각이 굳어.. 예전엔 이보다 더했어란 맘 가짐이 대부분이라....
쓰려면 정말 한도 끝도 없네요. ㅠㅠ
병원이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곳이 되면서 노동에 대한 보상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나오듯 그러한 결과의 최대 피해자는 환자, 즉 우리 모두일 수밖에 없죠.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싼 병원비? 폭리에 눈이 먼 병원장?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