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치] 서울의 ‘26번째’ 자치구의 의미:도시난민과 도시정의-뒷 부분
서울의 ‘26번째’ 자치구의 의미:도시난민과 도시정의-뒷 부분
현재 도시에서, 서울에서 벌어지는 것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과정이 아니다. 특히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전쟁과 다름없고 일선 행정은 소유하고 있는 자들을 위한 용병에 불과하다. 이런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국가라는 이상은, 하나의 도시라는 이상은 환상이 된다. 우리는 좀 더 도시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개별화하고 특수한 것들로 만들기 보다는 좀 더 일반적인 현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인 문제설정으로 행정의 용병화와 사적 소유권의 부속물에 불과한 공유지의 진짜 비극을 직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거대한 난민들의 도시, 서울
서울은 난민이 일구는 도시다. 이 도시의 특징은 누군가 빈손으로 내몰리지 않으면 어떤 것도 생산될 수 없다는데 있다. 더 이상은 여분이 것을 만들 수가 없어 빼앗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2000년대 이후 진행된 뉴타운재개발사업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재개발사업의 경제성은 t시점에서의 재산가와 t+시점에서의 재산가 차액으로 만들어진다. 알겠지만 이 사이에 존재하는 차액이라는 것은 ‘가상의 값’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이에 ‘공사비’라는 항목이 있으나 이는 거의 고정값으로 전제된다는 점이다. 한번도 원가가 공개된 적이 없는 공사비는 한 쪽의 호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상한 가격임에도 검증된 바 없다. 그러면 재개발 사업의 원칙은 어떤 것인가. t시점의 재산가를 낮춰야 한다. 이것이 높으면 기대 수익이 낮아진다. t+시점의 재산가는 높아야 한다. 이것이 낮으면 손해 보는 사업이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현상 혹은 태도가 수반되는데, 하나는 ‘현재를 값싸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는 늘 비싸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수익을 위해 현재를 값싸게 만드는 방식은 간단하다. 살고 있는 집의 가치를 0으로 수렴시키면 된다. 현재 소위 감정평가의 기준은 재개발 시와 일반 거래시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다. 이런 기준으로 수십년 동안 가족이 살아왔던 기억의 공간은 곧 허물어 없어질 낡은 시멘트 덩어리가 된다. 또한 함께 지내왔던 이들의 공동체가 소유의 여부에 따라 극적으로 재편된다. 세입자가 ‘비용’으로 구성된다. 정말 노골적인 상황 아닌가. 도시의 공간 중 주거를 구성하는 원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비용’으로 바라보게 만들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반면 미래의 가격은 계속 절상된다. 여기에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행정의 계획이다. 주변에 공원이 만들어지거나 지하철 역이 생기거나 도서관이 생기는 등의 일들이 미래의 기대 수익을 높이는 근거로 등장한다. 최근 몇몇 신도시에서 벌어진 웃지못할 ‘사기 분양’ 소송은 많은 경우 공공계획이 지연되거나 취소된 탓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애초 재개발의 가치가 확정하기 어려운 미래의 일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이 재개발사업이 추구하는 사적 이익의 추구와는 상관이 없는 행정의 일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불만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이런 일들은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각종 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반복하는 일이다. 수십년 동안 철길 옆에서 살았다. 다른 곳에서 집값이 오를 때에도 이 곳만은 떨어졌다. 이들의 소망은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즉 현재의 조건에서 주거환경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공원을 조성했다. 그래서 주거환경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그 주거환경을 누리는 사람은 애초 철길에서 수십년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다. 원래 주거환경의 개선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정작 주거환경이 개선되자 살수 없게 되었고, 철길에서 나는 기차소리 한번도 듣지 않았던 이들이 원래부터 이런 공원이 있었던 것처럼 자리를 차지했다. 공원은 세금으로 지어졌으나 이익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에게 집중되었다. 원래 살던 이들은? 기차길은 없을지 모르나 기존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없는 곳으로 밀려나 다시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몰렸다. 서울은 이런 식으로 매년 수 만명의 난민을 쏟아낸다.
[한국의 국유지 현황]
(문화도시연구소 정기황 선생이 작성한 '경의공유지의현황'에서 재인용)
이런 현상은 현재의 공공재 혹은 공유지가 기존의 개인적 소유권과 다른 어떤 독립적인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개인적 소유권 위에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 기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일선 행정은 행정 기계가 아니라 최소한의 행정 재량을 지니고 있고 대개 이 재량권은 특수한 경향성을 갖는다. 우리가 빈번히 발견할 수 있는 행정 재량의 경향은 개인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노점에 대한 태도다. 거리에서 무엇을 판다는 것은 근대 국가의 역사를 넘어설 정도로 매우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다. 특히 가게라는 유형의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거리에서의 판매는 누구나 최소한의 경제행위를 통해서 자립과 자족을 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런데 대개의 구청은 이런 노점에 대해 ‘보행자의 편의’나 ‘인근 가게의 불만’을 근거로 불법화한다. 하지만 앞서 봤듯이 이미 보행자의 편의라는 것은 행정 스스로에 의해 너무나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노점을 하게되는 사회 경제적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단속의 주체인 행정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즉 사회 구성원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의, 그로부터 파생된 행정의 무능력이 거리에서 무언가를 파는 노점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면 행정은 노점을 바라볼 때 ‘시민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무능력’과 동시에 ‘불가피하게 가로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책임’을 견주어야 한다. 하지만 행정은 의도적으로 노점을 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외면한다.
여기에 더해 인근 가게의 불만이라는 요소는 더욱 심각하다. 자본주의의 정신은 개인의 사적 경제행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기본적인 정신으로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점포형 가게에서 구매를 하든 노점형 가게에서 구매를 하든 국가가 개입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행정에서 지적하는 위생문제나 제품의 안전성 문제는 엄밀하게 보면 노점에 국한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행정은 사적 경제 영역에 개입한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결국 ‘점포의 유무’다. 구체적인 물리적 환경의 소유 여부가 특정 개인의 경제활동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재개발 사업이나 노점의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구조를 곰곰이 들여다 보면 이상한 모순이 있다. 재개발 사업에서 현재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용’에 불과한 현재 거주자들의 보상 기준이나, 공원을 만들고 도로를 만드는 도시계획의 과정이나, 노점을 몰아내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행정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행정행위의 이익은 배타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귀속된다. 이 과정에서 재개발사업의 건설사들이, 소유자들이, 상가건물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무슨 노력을 했나. 거의 없다. 사실상 불로소득인 셈인데, 이를 행정이 행정자원을 바탕으로 만들어 준다. 근면성실을 경제적 부의 원천으로 삼는 자본주의의 교리에 비춰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개발지역의 이주자들은 불쌍한 약자가 아니다. 약자는 타고난 힘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지만 서울에서의 약자는 애초 공정하고 공평해야 하는 행정에 의해 발생한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행해졌듯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주는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서울은 거대한 난민의 도시다. 아니 난민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이들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박탈함으로서 가진 이들의 경제적 부와 권리를 배타적으로 강화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화려한 시민권의 시대를 맞이하지만 누군가는 역설적으로 기존에 있던 권리마저 빼앗기고 축출된다.
난민과 권리없음을 넘어서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이 거처하고 있는 곳에 ‘26번째 자치구’가 세워진 배경은, 더 이상 행정이 촘촘이 작동하는 서울의 어느 곳에서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이들’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결과다. 행정을 통해서 자치와 자립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에 수십년 동안 삶을 통해서 증명했던 삶의 가치가 ‘불법’으로 축출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없다. 그저 행정에 의해 불법자가 되어버린 이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난민이 되었다. 없어지라는 서울의 말을 듣지 않으려면 따로 경계선을 긋고 캠프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곳의 선언은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모든 권리를 잃은 체 버려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럼에도 권리없는 이들로 지워지기 보다는 모임으로서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당연히 난민들의 싸움은 통합이라는 압력에 놓인다. 그래도 함께 공존해야 하지 않냐는 상식적인 주장에 놓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권리가 복원되지 않으면 안된다.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로 사회에 통합되어야지 숲에 잡목을 감추듯 그렇게 가려놓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아무런 권리없이 모여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합법과 규칙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지 못했듯 그것 역시도 우리에게 어떤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소리칠 수 밖에 없다.
도시난민이라는 문제설정은 이런 조건을 드러내는 개념적 장치임과 동시에 그것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도시의 가지지 못한 자들을 표현하는 사실적인 말이다. 특히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 어쩌다가 생기는 시혜적인 동정이 아니라 빼앗긴 것들을 되찾아 가는 것으로서 싸움은 분명 만들어진 싸움이다. 아현포차의 이모들은 하루를 벌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데도, 마포구청은 불법으로 밀어버렸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불법자인 아현포차 이모들이 그렇게 사라져 죽는 것일까. 좋게 봐도 마포구청의 태도는 ‘내 알바 아니다’는 것 같다. 보행로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거리에서 치워진 노점상들은 어떻게 하루를 한달을 살아가야 할까. 이에 대한 태도 역시도 ‘내 알바 아니다’는 것 같다. 서울시의 다양한 도시계획을 통해서 어딘지도 모르게 흩어진 사람들의 처지 역시 ‘내 알바 아니다’는 것 같다. 이런 내 알바 아니다라는 태도의 행정은 스스로 가지지 못한 자들을 배제했다. 우리가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밀어낸 것이고 경계가 없는 곳으로 몰아낸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죽어나 생존하는 것의 양자 사이에 놓여 있고, 그 방식은 그들의 ‘합법성’ 위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도시 난민이 처한 상황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이 사태를 ‘전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스스로 속했던 국가 공동체를 떠날 수 밖에 없듯이 여기에 모인 이들 역시 살기 위해 스스로 속했던 각종의 공동체를 떠났다. 그래서 난민이다. 우리는 경의선 공유지의 26번째 자치구를 아름답고 신비롭게 만들 생각이 없이다. 난민들이 모인 캠프는 늘 위태롭고 비상시기다. 그것을 날 것으로 드러냄으로서 이 도시가 우리에게 벌이고 있는 전쟁을 드러낼 것이다. 어떤 권리의 회복없이 저 공동체로 스며든다는 것은, 마치 2등 시민임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차별을 약속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을 뻔뻔하게도 인간에게 요구할 수 없지는 않은가. 역사적으로 인간에서 열등한 지위를 강요한 사례는 노예제와 전쟁의 승리를 통한 식민지 밖에 없다.
21세기 서울에서 도시난민이라는 문제를 꺼내는 이유, 그리고 그들이 캠프로서 모여 있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는 상식으로는 있어야 할 것들을 현실에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흐름의 정해진 결과는 없다. 다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최소한의 공존을 포기하지 않는 길을, 어쩌면 실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최대한 늘려서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것들을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게 만드는 싸움을 할 뿐이다. [끝]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네요. 리스팀 해놓고 나중에 또 정독하겠습니다.
도시 개발 비용은 정부가 부담하는데 그 혜택은 고스란이 부동산 소유자한테 돌아간다는게 문제네요. 이게 문제인지 대다수의 사람은 인식 못하는 것도 심각하고요.
댓글 달아주신 내용에 동의합니다. 개발 결정은 정부가, 진행은 사기업 혹은 조합이, 쫓겨나는 것은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자인데 이득은 부동산 소유자에게 전부 돌아갑니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사유지란 이유로 단지 내 도로의 통행을 막아버리기도 하고, 사고가 났을 때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것으로 판결이 나는 경우도 생기구요..
이것을 '이익의 사유화, 손해의 사회화'라는 말으로 표현하시더라구요 ㅎㅎ
도시권 강연회 들으면서 국유지 비율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놀란 이야기를 주변에 해도 땅 소유들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별로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구요..
그건 그렇고 역시 요약본좀... ㅠㅠㅠㅠㅠㅠ
글도 많고 해서 보팅파워가 모자랍니다 ㅋㅋㅋㅋ
@홍보해
요약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니까, 그냥 요약본을 작성하면 되는 건가요? ㅎㅎㅎ 제가 요약해서 드리면 되나요? 요즘 너무 헤매고 있습니다. ^^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뭐 꾸준히 글 올리시는 것이 최고죠.
앞이나 뒤에 요약문이 있는 편이 보기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목차라거나...
아니면 글은 계속 올리시고 요약 포스팅 같은거 올리시면 그걸 제가 공유하는 수도 있구요 ㅎㅎ
그리고 프로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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