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영화리뷰] 피해자 중심의 사법제도 (영화 '모범시민'을 보고)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모범시민'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영화 리뷰 포스팅이라고 해도 영화에 대한 내용은 많이 쓰지 않을 예정이니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더라도 읽으시는데 큰 부담은 없으실겁니다(영화 내용이 조금은 들어갈 수 있지만, 그냥 스윽 읽으시면 영화가 대충 어떤 내용일지는 쉽게 눈치 채실겁니다).

아 그리고 영화는 법 공부를 하는 친형과 봤는데 ,관람 후 형과 이야기를 했더니 리뷰가 좀 더 풍요로워진 것 같습니다.

본 리뷰는 앞서 언급한대로 영화 내용보다는 영화를 통해 제가 받은 '사법제도에 대한 느낌'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럼 영화 리뷰 시작하겠습니다(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이런 상상을 해보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하나 낳고 셋이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강도 두 명이 집에 침입하여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아내와 딸을 죽이고 도망갑니다.

미쳐서 죽어버릴 것 같지만 간신히 버텨내고 범인들을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만이 사형판결을 받고 남은 한 명은 좋은 변호사 덕택에 검찰측과 사법거래(plea bargain)를 하여 겨우 징역 몇 년을 선고받습니다.
더욱 미치겠는 것은 징역 몇 년을 선고받은 바로 그 자가 아내와 딸을 죽인 진범입니다 (강도짓을 하러 들어왔다가 아내와 자식에게 목격되는 바람에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거죠).

여러분은 검찰측에 해당 선고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지만 검사는 피고인 두 명 모두에 대해 사형을 구형할 경우 패소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말이야 패소할 경우 피해자에게 훨씬 큰 손해라는 것이지만, 결국 자신의 승소율을 위해서 행한 안일한 조치일 뿐이죠.

영화 모범시민의 전반부 내용입니다.
아내와 딸을 잃은 피해자 클라이드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피해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미국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 극도의 분노감을 갖게 되고, 결국 자신을 괴롭게 한 모든 이들에 대한 복수를 계획합니다.

물론 그는 복수를 위해 필요한 범위 이상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킵니다.
같은 감옥 안에 있었던 죄수는 죄인이긴 하지만, 클라이드 자신에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고 또한 본인의 사건을 담당한 판사나 검사들 역시 잘못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죽을 정도의 잘못은 아니었죠.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영화는 그의 분노가 얼마나 컸었는지 잘 나타내지만 어쨌든 그 역시 ‘무고한’ 자들을 죽임으로서 점차 자신의 분노에 대한 정당성을 잃어갑니다. (이제 영화 내용은 얼추 아시겠죠? 좀 뻔한...)

클라이드는 자신의 ‘반항’ 을 통하여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철저하게 드러냅니다.

10년 동안 와신상담하며 철저한 계획을 세워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클라이드를 보면서 저는 야릇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겨우 몇 년의 징역 생활을 마치고 나와 타락한 삶을 살고 있던 원수를 납치하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겪게 하는 클라이드를 보며 원수에 대한 연민보다는 정의감이 승리한 듯한 통쾌함을 느꼈죠.
또한 감옥 안에 있는 클라이드를 상대하며 자가당착에 빠져 힘겨워하는 검사를 보며 배배 꼬인 정의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실 모범시민이었던 클라이드가 역설적 ‘모범시민’이 된 이유는 따지고 보면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방만한 국가의 잘못이 크다고 보여집니다.

국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피해자에 대한 직무를 유기하였습니다.

첫 째, 스포츠형 법정 싸움에서 오직 승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고인과 무리한 사법거래를 했다는 점.
둘 째, 피해자가 원했던 결과든 원하지 않았던 결과든 어쨌든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 피해자에 대한 관리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국가가 분노한 클라이드에 대한 사후적인 관리를 했더라면(예컨대 판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이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해준다던지 하는), 영화에서와 같은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본 영화는 여러 가지 논점을 제시합니다.

먼저 우리는 사법 절차에서 '당연히 가장 중요한 주체로서 기능해야만 하나, 실제로는 철저하게 배제되는(배제되다 못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는) 피해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법제도와 같은 '피고인 중심의 국가 대행적인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피해자가 사법적 응징의 가장 중요한 주체였습니다.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에게 고문을 가하게 함으로써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복수를 수 있게 하거나, 그보다는 조금 정제된 형태로서 국가가 직접 가해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처벌을 가함으로써 피해자의 상실감을 보상해주는 데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죠.
물론 이러한 처벌 방식은 현재의 사법제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로서 가해자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그가 갖게 되는 인권이 침해되며, 또한 방식이 너무 소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문제시 된 피고인 중심의 스포츠형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과거 사법제도의 정신에서 어느정도의 영감은 얻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거 사법제도의 피해자 중심적인 정신과 현대 사법제도의 조화를 위해서 어떤 과정들이 진행되고 있을까요?
현대 사법제도의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장점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방안이 시도는 되고 있을까요?
전공자에게 여러 자료를 받아 읽어보고, 설명을 들어보니 몇 가지 방법이 실현되고 있더군요.

먼저 범죄자 배상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범죄자 배상은 범죄자에 의해 야기된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범죄자로부터 피해자에게 서비스나 금전을 이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범죄자가 국가에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 피해자에게 직접 이를 지급하는 것이죠.


(출처: 법무부 http://www.moj.go.kr/HP/HUM/hum_07/hum_7030/hum_703040/hum_70304010.jsp)

사실 배상은 공식적인 형사사법 시스템보다 먼저 등장한 제도로서 피해자의 보상심리에 더욱 부합합니다.
이러한 배상 제도는 민사소송제도가 거두는 효과와 비슷한 효과를 얻게 되나, 민사소송제도가 갖는 단점, 예컨대 많은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의 선택이나 적절한 변호사를 찾는 방법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변호사의 선임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소송으로 인하여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피해자 보상제도가 있는데, 이는 정부가 피해자에게 범죄로 인한 손실을 되갚는 것을 의미합니다.
범죄자 배상 제도가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갚는 것에 비해 피해자 보상제도는 국가가 피해자에게 갚는 것이죠. 피해자 보상제도 역시 민사소송이 갖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는 장점을 갖는 좋은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 같은 제도들은 경제적인 보상에 관한 제도로서 피해자의 분노를 다스리기에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피해자가 사법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 요구되는데,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새로운 개념의 사법제도인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회복적 사법은 범죄에 영향을 받은 전체 구성원(피해자,피해자 가족, 지역사회, 범죄자 자신)의 종합적인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시작된 새로운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복적 사법의 가장 큰 의의는 기존 형사사법 체계와 달리 피해자의 역할이 문제해결 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기존에는 검사와 같은 법률 적용가가 피해자를 대신해서 범죄피해 회복과 처벌 내용 등을 법원에 요청하고, 1차 피해자는 단지 피해를 신고하거나 국가 기관에 증거를 제출하는 등의 주변인 역할밖에 하지 못했으나, 회복적 사법에서는 직접적인 피해자의 목소리와 감정, 문제해결 욕구 등이 전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결국 범죄피해자의 만족도가 훨씬 더 높아지게 되어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러한 회복적 사법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제도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서 '써클 양형(Circle Sentencing)'이 있는데, 이는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범죄자에게 적합한 처벌 수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관계자들은 모임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부여받게 되며, 사과내용, 배상, 사회봉사, 치료 및 사회복귀 프로그램, 교도소 구금 및 구치소 구금기간 등에 대해 논의 후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형의 '피해자학' 강의자료 및 형의 설명..)

만약 클라이드가 회복적 사법의 써클양형을 통해 가해자들의 구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클라이드와 같은 ‘이중 피해자(가해자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국가로부터 다시 피해를 당한)’는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 피해자가 더 속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피고인 위주의 스포츠형 사법제도의 개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글이 조금 얕네요...역시 제 전공분야가 아닌 곳을 들여다보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법 공부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물론 저 처럼 아주 얕게 살피면 말이죠 ㅠ).

실제로 제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법 체계 안에서 돌아가는지 조금 더 공부해볼 의향이 생겼습니다.

영화 평점은..

솔직히 많이 재미있지는 않고요ㅎㅎ 그냥 테이큰 보세요:) 우리 리암니슨 형님이 더 통쾌합니다.
사법제도의 구멍에 대해 다룬 명화들은 너무나도 많으니, 그런 걸 느끼고 싶으시면 다른 영화들을 보심이..

그냥 킬링타임으로 봤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찾아보고 공부해본 영화 리뷰였습니다:)

다들 즐거운 일요일 밤 보내시고, 월요병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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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치유, 화합은 그걸 표현할 단어가 없을 적 부터 인간사회에사 중요한 덕목이였죠. 이런 추상적인 개념들은 법률에선 그 범위를 책정하는데 논란이 있기때문에 그냥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라고 치부되기 일쑤인데, 저는 이런것도 어느정도는 제도화시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이 회복적 사법일테구요. 법전은 약자를 위해 쓰여진건데, 판례보면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ㅠㅠ

아 궁금한 영화입니다.ㅎ
저도 보고 싶어요.ㅎ

ㅎㅎ댓글 감사합니다.
요새 팔로워 늘리려고 노력중인데, 팔로우해도 될까요?

좋아하는 두 배우가 나오네요.
꼭 봐야겠네요 ^^

ㅎㅎ복잡하지 않은 영화라 괜찮은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