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사이에서 느끼는 불편함
얼마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셰이프오브워터(Shape of Water)를 보면서 떠올린 영화가 하나 있다. 1년전 쯤에 봤던 히든피겨스(Hidden Figures)라는 영화다.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 영화가 모두 구소련과의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과 인종, 여성, 동성애와 같은 소수자들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걸 금방 떠올렸을 법하다. 게다가 조연급 여배우도 두 영화에 같이 나온다. 옥타비아 스펜서라는 매력적인 배우가 나온다. (찾아보면 실망할지도 ㅎㅎ)
1년 사이에 두 영화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에 올랐다는 것도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에 이런 반골 기질의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또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는 많은 미국의 대중을 절망에 빠뜨렸다. 특히 미국내 지식인들은 매우 참담해하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자격도 없는 천박한 대통령이 자신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저항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런면에서 헐리우드는 대표적인 반골집단이다.
헐리우드는 원래부터 선민의식이 쩌는 곳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곳곳에 정의가 넘치고 사회적 비판이 서늘하다. 최근에 주목받았던 영화는 대개 그런 영화들이다. 아마도 헐리우드 지식인들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국가가 건재함을 그리고 문화적으로나마 건강함을 보여주고 싶은 의지가 작용했을 법하다.
그럼 그들이 정말로 저항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트럼프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저항의식을 상업적으로 매우 잘 이용하는 집단이다. 웨스트윙이나 뉴스룸같은 철저하게 진보적 입장을 가진 드라마가 NBC나 HBO같은 미국의 최대 미디어 자본에서 제작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럼 오프라 윈프리나 메릴스트립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그냥 쇼한거냐고? 그건 아닐거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과는 달리 자본은 그렇게 순수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반골기질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내내 느껴지는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조차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변호인, 1987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영화를 만든건 주체가 CJ같은 거대 자본권력이라는 사실에 대한 불편함은 늘 함께한다.
이런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부조화는 영화같은 곳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텍스트는 선하지만 컨텍스트는 그렇지 않을때 우리는 인지부조화를 느낀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종종 목도되는 흔한 현상들이다. 그렇다보니 시간이 지난 만큼 주변의 한숨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동안 한곳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인지부조화와 마주쳤을 때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자세한 사정은 알수 없지만 우리 버클멤버중 하나가 처한 상황도 이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조금 무뎌지는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대신 그가 지난 삶의 전환기에 가졌었던 열정만은 버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전하고 싶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