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선행 미수

in #kr2 years ago

오늘의 선행(?) 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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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회복 가운데 가장 반가운 것 중 하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뜨거운 탕에 가서 몸 지지고 때 벗기는 즐거움을 다시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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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차 몰고 (근처에 있던 두 곳의 사우나가 모두 폐업을.....,ㅜㅜ 한 군데는 영 맘에 안들고) 목욕탕 갔다 왔다. 그런데 한 열 두엇 먹은 소년이 좀 시끄러운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게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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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꽤 정성스럽게 할아버지를 챙겼는데 할아버지의 행동거지는 다분히 어린애스러웠고 바가지를 엎으며 소리를 내거나 간간히 소리도 질러 주변의 눈총을 샀다. 아이는 연신 미안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난처해하긴 했지만 사과하는 품이 꽤 익숙해 보였다. 그런 일이 꽤 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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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한증막에 들어가고 아이는 밖에 있기에 슬쩍 사정을 물었다. "할아버지 좀 편찮으시니?" 아이는 어설프게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치매끼가 좀 있으세요. 빨리 목욕하고 나갈게요."
"아냐. 아냐 그런 거 아니고...... 착하네. 할아버지 잘 모시네."
"저희 집에 샤워할 데가 없어서 목욕탕에 꼭 와야 되거든요. 할아버지가 좋으셔서 저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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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묻지는 않았지만 조손 가정 느낌이었다. 할아버지는 한증막에서 나온 후 또 수선스럽게 손자에게 뭐라고 외쳐 댔다. 듣자 하니 때밀이를 하자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돈 없어요. 손자는 울상이 됐고 할아버지는 반드시 때밀이를 해야 한다고 우겼다. 손자가 아까 등 밀어 드리지 않았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언성이 높아지면서 손자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탈의실로 나갔는데 밖에서도 할아버지는 때밀이해 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게 유리문 밖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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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는 대충 수건으로 할아버지 몸을 닦으며 어서 목욕탕을 벗어날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다가 때밀이 아저씨를 찾았다. 가끔은 내 마음에도 오지랖의 천사가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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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저기 저 꼬마하고 할아버지 말이에요."
"네."
"제가 돈 드릴 테니까 할아버지 때 좀 밀어 주세요. 근데 제가 그랬다고 하면 좀 민망하니까 아저씨가 가셔서 아저씨가 할아버지 밀어드리는 걸로 말씀해 주시구요."
"아니 선생님이 애한테 말씀하시지...."
"걍 좀 그래요. 사장님이 인심 쓰는 척 좀 해 주세요.. 제 옷장번호구요. 카운터에 내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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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아저씨 싱긋 웃고 한다는 소리.
"그럼 어떤 걸로 할까요? 기본은 1만 8천원인데...... 후면마사지 하면 2만3천원. 샴푸까지 하면 2만 5천원..... 이왕 하시는 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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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오. 이 아저씨 보소. 그냥 기본만 하면 되지 뭘 물어보셔. 그런데 또 여기서 "그냥 기본만" 소리가 나오질 않아서 등 좀 주물러 주세요 그럼 2만 3천원했다가 몇 마디 더 섞다보니 걍 샴푸까지 2만5천원짜리를 하라 결론짓게 됐다. 때밀이 아저씨는 나는 듯이 달려나가 쩌렁쩌렁 다 들리도록 "오늘 기분이다! 내가 해 줄게! 할아버지 들어와요!"를 부르짖었다. 나는 뭔가, 그리고 웬지 좋은 일하려다가 덤터기 쓴 느낌으로 탕 안에 들어앉아서 눈 감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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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카운터 아주머니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계산을 하려니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싱긋 웃는다.
"그냥 가시래요. 얘기 다 들었어요."
"예? 아니 제가 계산은 한다고....."
"때밀이 사장님이 그냥 가시래요. 그 할아버지 5만원짜리 전신마사지 해 드릴 거래요. 좋은 일하게 해 줘서 고맙대요. 그냥 가시라고 했어요."
."아니 그래도 이러면 안되죠. 2만5천원은 제가 할게요." 하며 완강히 카드를 내미니 아주머니 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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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밀이는 카드 안돼요."
"그럼 계좌 이체하면 되죠. 사장님 계좌 번호 아시잖아요"
"그냥 가세요. 뭐 서로 다 기분 좋으면 되는 거지. 일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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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계좌번호를 가르쳐 줄 기세가 아니었고 옷 다 입고 나온 터에 다시 들어가서 승강이하기도 뭐해서 그냥 선행(?)을 포기하고 목욕탕을 나서야 했다. 선행을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할아버지는 개운하고 시원한 신음을 내면서 만족스럽게 돌아갈 수는 있으시겠지. 그래 다 기분 좋으면 되는 거다. 일요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