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허기자님 명예회복 하셔야죠!" 한통의 전화가 인생을 바꾸다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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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15일 마약일기

2평짜리 공간. 손과 발을 길게 주욱 뻗으면 손고 발끝이 벽에 닿곤 한다. 정부가 지은 공공 임대아파트의 인간에 대한 배려는 딱 여기까지다. 임대료 싼 아파트이니까 2평 짜리 방도 감사하게 여기라는 건가.
최저임금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다운 삶을 위해 보장받아야 할 최소 생활공간이란 개념을 만들 순 없는 걸까. 나는 이 좁은 공간에 30년째 몸을 맡기며 살고 있다. 웅크려 자는 건 몸에 배었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어느덧 편안해진다. 그나마 지금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웅크릴 수 있는 2평의 공간이라도 소중하다. 감옥이 아닌게 어딘가.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목격하지 않고 숨어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방에 가만이 누워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사전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는 내가 요즘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테다. 자신을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오랫동안 역할 해온 분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서 외래교수를 겸하고 있다.

“허 기자님. 명예회복 하셔야죠! 한순간 실수하신 거죠?”

그는 대뜸 이런 이야기부터 꺼냈다. 내가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내가 왜? 마약을 하고 해고된 사람에게 왜 이런 얘기를 하지?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명료해지는 듯 했다.

“허 기자님. 제가 20년간 이 잘못된 마약 정책을 바꾸려 했는데 안바뀌어요. 어떻게 이렇게 그대로입니까? 만납시다. 당장.”

자신의 이름을 윤현준이라고 소개한 교수. 그는 대뜸 이런 이야기부터 했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마약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허 기자님. 일단 지금 겪고 계신 일을 기록부터 하세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세상에 알리세요. 개인의 불행을 우리 사회에 알리세요. 제가 사람들을 다 연결해줄게요.”

윤 교수는 자신이 지금 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인데, 내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봤다고 한다. 귀국하자마자 연락하는 거라고 했다. 그는 “사회적 사형”이라는 단어를 썼다. 내가 사형당한 느낌으로 지내는 걸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윤 교수를 당장 만나봐야겠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내가 10년을 기자로 일하며 인권보도상도 수차례 받았건만, 모르는 분야가 이렇게나 많았다니.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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