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역사] 폰지 사기와 규제의 시작

in #kr7 years ago

삼성증권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사건만큼 엄중한 것도 없지만, 금융감독원 발표를 제대로 다루는 언론은 거의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을 미국의 엔론 사태에 빗대기도 합니다. 그만큼 심각한 사건이라는 뜻이겠지요.

이 글은 삼성 바이오로직스 사건을 다루기 위한 것은 아니고, 과거 미국에서 벌어진 폰지 사기를 바탕으로 투자 업계에 규제가 시작된 연원을 조카에게 설명해준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금융 산업, 특히 투자 자문업은 복잡하고 고도로 규제된 산업입니다. 업계 많은 이들, 특히 증권 회사들은 규제가 너무 과도하다고 불평하면서, 그 옛날 "규제가 거의 없던 시대"를 그리워합니다.

한편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투자 자문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규제 장애물을 거쳐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투자 자문에 대한 규제가 느슨했던 시절에는 더 간단했을지 모르지만, 더 좋은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찰스 폰지(Charles Ponzi)의 이야기는 오늘날 규제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폰지 사기의 전말

찰스 폰지(Charles Ponzi)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부와 명성을 쫒아 1903년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폰지는 150센티미터가 간신히 넘는 작은 키에 우쭐거리는 모습이었지만, 잘 생긴 얼굴에 날씬하고 말끔하며, 자신감에 넘치는 머리가 잘 돌아갔습니다."



<찰스 폰지>

그는 미국에 와서 20년 동안 과일 행상, 밀수업자, 웨이터 등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기죄와 불법이민 알선죄로 두 차례 교도소 생활을 했습니다. 폰지라는 이름이 투자 사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42살이 되기까지 금융 투자 분야의 금자에도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폰지의 사기는 1920년 만국 우편 연합 반신권에서 차익거래 기회를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국가에서 구입한 반신권은 다른 국가에도 우표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만국 우편 연합 반신환>

1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우표 가격이 미국보다 훨씬 쌌습니다. 따라서 이탈리아에서 반신권을 구입하고, 이를 미국에서 우표로 교환한 다음, 이 우표를 팔아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폰지는 이 계획을 통해, 자신에게 돈을 투자하면, 45일에 50%의 수익을, 90일에 100 %의 수익을 보장한다고 선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계획이 지지부진했지만, 이후 투자자들이 폰지에게 맞긴 돈이 일주일에 거의 1백만 달러(2018년 수준으로 1,250만 달러)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얼마나 빨리 들어왔는지 폰지의 사무실에 발목 높이로 돈 다발이 쌓였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돈을 헤쳐가면서 책상으로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폰지는 그저 새로운 투자자의 투자 자금을 가져다가, 이전 투자자에게 수익이라고 전달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폰지가 끌어 모은 자금으로 수익을 낼만큼 충분한 반신권이 존재하지도 않았음은 물론, 그가 투자 자금을 실제로 투자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거의 없었습니다.

보스톤 우체국이 반신권과 폰지의 자산 및 부채, 그리고 과거 범죄 사실을 조사한 끝에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결국 폰지는 사기죄로 12년 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이탈리아로 추방되었습니다.

추후 브라질에서 이탈리아 항공사의 일자리를 얻었고, 빈곤한 삶을 살았다가, 1949년 브라질의 한 자선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그의 주머니에는 75달러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규제의 필요성

폰지가 교도소에서 풀려나던 그 해, 미국 의회는 1934년 증권 거래법을 통과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증권 거래위원회(SEC)를 출범시켜 연방 증권 관련 법률을 집행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의회가 증권 거래위원회를 만든 이유는 (폰지의 사기 같은) 금융 사기는 국가 수준의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 증권 거래위원회는 출범 5년 만에 투자 자문 업계와 현대 투자 자문사의 전신인 "투자 상담업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증권 거래위원회는 이 조사 결과를 1939년 보고서로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허황된 주장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해가될 뿐만 아니라 선의 투자 자문사에게도 위협이 된다."라고 밝힌 것입니다.

또한 증권 거래위원회는 현행 법률이 투자 자문사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제한, 제약 또는 조건도 부과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증권 거래위원회는 현재 시행 중인 업계의 자율 규제는 효과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미국 의회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1940년 투자 자문업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투자 자문 업계 규제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규제의 사례

증권 거래위원회는 투자 자문업법을 통해 투자 자문 업계에 대한 법률과 규정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증권 거래위원회가 새롭게 만든 규정 중 하나는 투자 자문사가 사업과 관련된 기록을 유지하도록 하는 이른바 "장부와 기록에 관한 규정(Books and Records rule)"이었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투자 자문사는 투자 성과 수치 기록을 공개해 유지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폰지가 활동했던 당시에 이런 규정이 있었다면, 그의 사기 행각은 훨씬 더 빨리 적발되었을 것입니다.

첫째, 폰지가 남긴 유일한 기록은 그가 색인 카드에 써놓은 고객의 이름뿐이었습니다. 때문에 장부와 기록에 관한 규정이 있었다면, 금방 의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둘째, 폰지는 수익이 없었기 때문에 투자 성과 수치 기록을 투자자에게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이 사람에게 돈을 거둬 저 사람에게 준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완벽한 규제 체제란 없습니다. 버니 매도프는 투자 사기로 투자자들에게 약 180억 달러의 피해를 안겼습니다. 폰지 사기에서 찰스 폰지의 행각은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매도프의 사기는 규제 자체 때문에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 당국의 적절한 조사와 해당 규정의 적용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버니 매도프>

즉, 규제가 아무리 많고 정교하더라도, 이 규제를 적용하는 당국이 한 눈을 팔면, 언제라도 폰지나 매도프의 사기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삼성증권이나 삼성 바이오로직스 사건은 과거 당국의 무관심, 어쩌면 방조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삼성 바이오로직스 사건을 보면 오직 이 업체만을 위한 규정 변경이 수 차례 일어났음이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해당 당사자의 철저한 조사도 필요하겠지만, 조사 당국 내부의 겸허한 반성과 개편이 훨씬 더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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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야말로 국정농단이므로 당장 특검해야합니다.

삼바 관련자들 모두 감옥으로...

글 감사합니다. 복받으실꺼예요^^

절 읽었습니다! 폰지사기 말만 많이들었었는데 ...!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 감사합니당!!!

금융이야기는 항상 흥미롭습니다. 예전에 군대생활할때에도 폰지사기 처럼 당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과거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네요.

폰지와 매도프 사기와 규제의 필요성 에 대한 제언 훌륭합니다 유익합니다 샘
정부가 경제 금융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수단으로써 규제와 돈을 사용하지요
규제를 강화하거나 완화하거나 하면서 대의명분을 살리면서 국민경제복지를 실현하지요
하지만 규제를 위한 규제를 하거나 특정사안을 위한 규제완화도 문제가 되지요
행정규제로서 생활안전및 식품에 관한 규제는 세밀하게 강화하되 경제활동에 관한 규제는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큰틀을 잡아나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