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찻 집 주인의 덧
부지당(不知堂)의 차(茶)이야기 7
시간이 되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주인장을 보며 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승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을 너도 할 것이냐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잔뜩 모아놓고 갑자기 판을 깬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잠간만, 주인장. 앉아보시오. 아무래도 이 강의는 더 생각해 보고 시작해야 되겠어요.”
“무슨 말씀인교?”
찻집 주인은 나의 뚱딴지 같은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강의장에 사람들까지 모아 놓고 갑자기 자빠지겠다는 소리를 하는 날 보고 미친놈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명색이 제자라는 놈이 스승의 명예를 망가트리는 짓을 해서는 않되겠다 싶어서 그러는 것이요.”
“그럼 강의를 더 잘 하시면 되는 것 아닝교?”
“강의하는 것 자체가 스승을 욕보이는 짓이 되니까 하는 말이요.”
효당(曉堂)이란 인물을 내가 처음 만났던 때는 1976년 봄이었다. 친구였던 김남주 시인(1946~1996년)과 함께 다솔사에 갔었을 때, 그의 나이는 72세였고, 당시 그는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까지 절에서 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조계종이 그를 타락한 대처승쯤으로 매도할 명분을 얻었고,결국 절에서 쫒아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사실 불교계가 그렇게 대접하면 않될 인물이었다. 게다가 일제 치하에서 천황에게 폭탄을 던졌던 유명한 박열(朴烈)사건의 일원이었고, 만해(萬海) 스님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만당(卍党)의 조식원으로 활동했던 경력만으로도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그는 원효(元曉)의 화쟁(和諍)사상에 근거한 불자(佛子)로 살던 분이었다. 한마디로 원효(元曉)대사의 똘마니로 인생을 살았다. 그같은 학문적 경지(境地)가 내품는 향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배움을 청했다.
“주인장, 효당은 불도를 닦는 스님이었지 다도(茶道)를 가르쳤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헌데 명색이 그의 제자라는 놈이 그를 다도 선생으로 만들어버리는 강의를 해서 되겠소?”
“그라믄 효당 스님이 쓰신 ‘한국의 차도(茶道)는 무엇인교?”
“그건 일본에 유학하고 있을 때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한국에 소개하려고 쓴 책이었어요. 거기서 한국의 차 문화와 역사를 소개했을 뿐이고.”
내 나름 힘들여 설명을 해 보았지만, 씨가 먹히지않았습니다.
“거사님, 솔직히 말해 보이소. 다른 이유가 있습니꺼?”
내가 자신이 없으느까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고판단하고는 더 쎄게 나아갔습니다.
“그라믄 처음부터 못하겠다고 하셔야지요. 그만 됐십니더. 그런 말은 수강생들에게 직접 하이소. 파장을 해도 그리 해야지 나까지 망신당할 깁니더.”
수강료까지 받아 논 상태에서 내가 자빠지면 자신이 더 곤란해진다고 얼굴까지 붉히는 모습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하긴 그와 논쟁을 벌려 해결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알았어요. 올라가 봅시다.”
찻집 주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제법 넓은 마루 방이 나왔고, 그곳에는 열 댓명의 사람들이 앉아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석인 눈빛을 받으며 일단 주인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3~40십대 여성들이었고, 그들 앞에는 다구(茶具)들이 담긴 보따리들이 놓여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다도를 배워보겠다는 열의로 가득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에 폭탄을 던져야하는 내 신세가 처량해 졌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먼저 찻집 주인의 말머리를 기다렸습니다.
"이분이 효당 스님의 마지막 제자였던 봉정 선생님입니더. 마침 거창 '모릿재'에 머물고 계셔서 모시게 되었심더. 소문으로는 효당 스님을 뛰어 넘는 제자라고 하니 기대가 큼니더. 아무쪼록 이번 강의를 통해 다도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바라면서 격려의 의미로 모두 박수로 거사님을 맞이합시더ㅡ!"
박수까지 치게 만들면서 내 허를 찌르고 나오는 그를 보면서 당황하지 않을 없었습니다. 그는 선수를 처서 내 행동에 제동을 걸었고, 강의가 취소되어도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효당 스님을 팔지 않겠다면 너만의 이야기라도 해보라며 등을 떠밀었으니 입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리되자 빨리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예정대로 강의 포기 선언을 하고 나가버릴지 아니면, 모리거사의 도력을 보여줄지를 말입니다.
‘그래,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부딧쳐 보자. 10년 만에 알게된 효당의 차(茶) 맛이 아니라, 20년 만에 겨우 깨닫게 된 띨띨한 모리거사의 차 맛을 이야기해 보자.’
이렇게 난 찻집 주인의 덧에 걸려 거창의 한 찻집에서 茶강사로써 첫 발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골치 아픈 사건은 그 이후 부터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Upvoted ☝ Have a great day!
다도라....요즘 커피숍이 유행이라....어릴땐 궁금하기도 했어요. 왜케 커피숍만 많구 전통찻집은 없을까?? 궁금하지 않나요?? 차에 관심좀 가져볼까나 ㅋㅋ
차에 대한 관심은 즐거운 문화적 충격을
맛보게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