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알렉산드로스 (20)

in #kr6 years ago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알렉산드로스 (20)


알렉산드로스는 지금의 수에즈 운하가 자리한 지역을 통과해
홍해로부터 지중해로 나아갈 계획을 실행에 옮길 심산이었다.

바닷길을 따라 회군에 나섰던 네아르코스의 부대가 이윽고 알렉산드로스의 본대와 합류했다. 네아르코스로부터 흥미로운 모험담을 전해들은 알렉산드로스는 물길을 이용해 귀향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서남쪽으로 크게 돌아 홍해에 진입한 다음,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시나이반도에 상륙했다가 다시 지중해로 나와 항해를 재개할 계획을 세웠다.

지중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였으므로 해로에서 육로로 갈아탔다가, 육로에서 해로로 다시금 환승하는 경로가 당연시되었다. 그는 영토에 관한 한 만족을 모르는 군주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새로이 정복할 땅이 어디인지를 알아보려는 탐험 목적이 짙게 깔려 있는 여정을 선택했다.

왕이 이렇게 여행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의 대제국에는 분열과 혼란의 그림자가 서서히 찾아들었다. 본국인 마케도니아에서는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각자 파벌을 이뤄 영토를 나눠가졌고, 그가 지방에 임명한 총독과 태수들은 가렴주구의 발톱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알렉산드로스는 왕국의 난맥상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비행을 저지른 지방관들을 보이는 대로 족족 처단했는데, 아불레테스의 아들 옥쉬아르테스 같은 경우는 왕 자신이 직접 척살할 정도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불레테스 역시 용서하지 않았다. 왕의 군대에 제때 식량을 공급하지 못한 죄를 물어 감옥에 넣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인들에게 먼저 돈을 지급했다. 페르시아의 역대 제왕들이 해오던 관행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페르시아인들 자신에게도 상당한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오코스 왕은 그 돈이 아까워 스스로 고국을 등졌을 정도였다.

민심의 8할은 여심으로 이뤄짐을 감안하면 알렉산드로스가 취한 조치는 그가 세운 제국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키로스의 무덤이 도굴당했을 때 범인이 마케도니아의 명문가 자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가 가차 없이 중형을 내린 것도 이러한 의도의 연장선이었다.

“내 이름은 키로스, 나는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제국을 안겨주었다. 그러니 내 몸에 덮은 이 미미한 흙을 아까워하지 말라.”

키로스의 무덤에 새겨진 이와 같은 문구를 바라보았을 때 알렉산드로스는 한 개인의 삶의 불확실성과 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역설적으로 그가 세운 대제국은 확실하고 영속적인 생명체로 남아있어야 했다. 그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치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