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저 곳은 늙은이들이 살 나라가 못 된다, 서로 껴안고 있는
젊은이들, 나무속의 새들
―저 죽어 가는 세대들―은 노래 부르며,
연어―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물고기, 짐승, 혹은 조류(鳥類)는 온 여름 내내 찬미한다.
온갖 배고 태어나고 죽는 것들을.
관능의 음악에 흘리어, 모두가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
2
늙은이는 다만 하나의 하찮은 물건,
막대기에 걸린 다 헐어진 옷, 만일
영혼이 손뼉 치며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죽어야 할 옷의 조각조각을 위해
더욱더 소리 높이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또한 거기엔 영혼의 장려한 기념비를 공부하는
노래 학교만이 있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항해해 왔다.
-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중에서...
주변에서 늙음을, 늙어감을 한탄하는 소리가
부쩍 요란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한탄이 육신의 늙음에만 연유한 것 일까.
늙음의 한탄은
오히려 이만큼 했으면 됐지 라는
교활한 감탄이다.
'엔도 슈샤쿠'는 그의 인생론<회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듦이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귀에는 바로 들리지 않는 것,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기우는 것 같다.
나만의 작풍을 갖게 된 것은 오십이 넘어서였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나
사소한 추억조차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꽤 잘 살았다.’라고 감히 말한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별했던 너의 얍삽한 기억 속에
너는 꽤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있냐.
감히!!!
차라리 비잔티움으로 떠나라.
철딱서니 없는 그 못된 심통으로
상상하란 말이다.